[집 잃은 개] (16) 「춥다, 얘야 옷 입어라」②
발행일1966-01-01 [제501호, 4면]
『「떼르느레」까지 10킬로』라는 글을 이정표(里程標)에서 처음 읽었을 때에 마르끄가 얼마나 몹시 놀랐는지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눈치챌 정도였다.
『그렇다. 「떼르느레」, 우리가 가는데가 바로 거기다.』
쁘로뱅씨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르끄는 이 사실을 여러날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떼르느레」…두고봐라, 거기선 운동을 한단 말이다…』
하고 말하는 판사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리고 그의 여자보좌관이 전화로
『여보세요, 「떼르느레」지요? …열네살 먹은 소년에게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셔야겠는데요…』
하는 말과 서기(書記)가
『…포르죠 마르끄는 선언합니다. 나는 「떼르느레」에 가는 것을 수락합니다…』
하고 떠금거리며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떼르느레」는 상상의 지명이 되었었고, 아름다운 조개껍질처럼 속이 빈 이름이 되었었다… 그랬던 것이 그 이정표에 다른 어떤 지명이나 다름없는 글자로 얌전히 쓰여진 『「떼르느레」까지 10킬로』라는 글씨는 벼란간 …얼마나한 충격을 주는 것이었는가!
그 판사는 약은 사람이었다. 판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 같은 인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마르끄는 그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했었다 …물론이지! 편지를 보내면 그 분홍 빛 일건서류의 부피가 불어날 것이다. 그 표지에는 선생글씨 같은 글씨로 「포르죠 마르끄」라고 쓰여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이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어른들과 이야기 하고 있으면 그들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이쪽에서 말한 것을 가지고 서류를 만든다.
언제나 서류를 만든다! 판사도 다른 어른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어른들의 우두머리 -순경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눈으로 똑바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어른은 그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견디어내지 못하거나 그럴만한 시간이 없거나 했다! 마르끄로 마하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보따리였다. 독자는 아마 우체국 안쪽에 들어가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딴 생각을 하면서 밀차에서 자동차로 넘겨 주고, 자동차에서 기차로 넘겨주는 행낭(行囊)들, 자아, 간다~
그러나 무장한 헌병 두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영화에서 본것 때문에 그렇게 되기를 약간 바라기도 했던-
「물룅」역 「플래트폼」에서 조금 전에 만난 사람은 콧수염이 시꺼멓고 눈썹은 콧수염보다도 더 숱하고 늘 꺼진 담배를 물고 있는 그 쁘로뱅씨 뿐이었다.
『잘 있었나, 젊은 친구!』
구내식당에서 맥주를 한컵 마신 탓으로 그의 콧수염에는 밀물빠진 모래사장에 남는 것 같은 거품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도 너같이 마르끄라고 하는 아들이 집에 있단다!』
둘이서 털털이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쁘로뱅씨가 한 말이라고는 이것뿌닝었다. 그런 다음 그는 구리로 만든 낡은 라이타로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었는데, 담배는 빤짝빤짝하더니 이내 도로꺼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는 한마디 말도없었다.
길은 벌써 저녁해가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약간 지나치게 희게 보이는 집들과 약간 지나치게 신비스러운 정원곁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도시가 끝났었다. 마르끄는 두려움과 놀라움이 섞인 눈으로 저 밭들과 가축들과 엄청나게 큰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어린이는 일찌기 본 일이 없는 풍경이었다. 나무야 물론 「까리애르」에도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마르고 꺼칠하고 보도(步道)의 함정에 갇혀있는 나무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무들이 살아있었고 모두 서로 모양이 달랐다! 이 나무들은 호흡을 하고 있었다 -무지하게 큰 갈색 허파!- 그리고 그 나무들이 자리를 옮겨 앉을 마음만 있었다면…
『유리창을 열겠으면 열어, 이 사람아!』
체면이 서지 않는데 화가 난 마르끄가 그런 허락을 청하려고 하던 바로 그 순간에 쁘로뱅씨는 길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채 불이 꺼진 권연이 달라붙어 있는 입술로 그것을 내려 주었던 것이다.
마르끄는 유리창을 내렸다. 시월의 티없는 시원한 기운과 함께 촉촉히 젖은 땅 냄새와 가슴에 아득히 파고드는 농가의 가축냄새, 그리고 늦가을이라 생기어 보이는 수풀 사이로 들려오는 점잖은 종소리가 그리고 들어왔다 …그것은 부풀어 올라오는 차고 검은 물과 같은 것이었다. 마르끄는 그 속에 잠겨버렸다. 가로등도 없고 불을 밝힌 창도 없는 가운데 밤이 내려 앉았다.
사람은 없어도 만상(萬相)이 움직여 소리가 나고 위엄을 느끼게 하는 밤에 마르끄는 연약한 진입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영리한 바람이 앞들을 헤치는 것 같았다. 나무가지 끝이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깃이 부드러운 새 한마리가 흰 생길을 건너 밤의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무겁게 날아갔다. 마르끄는 이를 악물었다.
『추우면…』하고 쁘로뱅씨가 말을 꺼냈다.
아니다, 공포였다! 그는 무서웠던 것이다. 도시에서 나오본 일이 없는 이 소년은 가을의 물웅덩이 밑에서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경치가 좋지, 무엇보다도 아주 조용하고…』
담배를 문 남자가 다시 중얼거렸다.
천만에! 그것은 바닷속보다도 더 비극적이고, 여러가지가 우굴거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이었다! 조용하다구? -죽은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텅빈 동굴(洞窟)과 침묵의 폭포 앞에 드리운 고요한 정면…
『아저씨 「떼르느레」에는 다른 애들도 많이 있어요? 밤에는 창문을 잘 닫나요?
「떼르느레」에는 물것이 없지요? 뭣보담두 물것은 딱 질색이야요!」』
마르끄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콧수염을 기른 그 사람을 갑자기 믿고싶은 생각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아버지도 입귀에 담배를 몇시간 물고 있어 담배가 천천히 검게 되었었다.
저와 같이 마르끄라고 하는 소년이라 … -그렇다. 그는 쁘로뱅씨를 믿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도 조용한 것 때문에 약간 미워하면서도, 그렇게까지 눈이 어두워서 가을인지 밤이 되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때문에 조금 경멸은 하면서도 말이다 …어떻든 그와는 이야기가 통할 수 있었다. 그의 자동차에 실려서 넘어가는 보따리가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그 사람과는 이야기가 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떼르느레」 …어떤 공구에 세워진 표지판(標識板)에 쓰여진 이 이름을 보고 소년은 마치 「포르죠 마르끄」라는 이름을 신문의 굵직한 표제에서 읽기나 한 것처럼 다시 한번 펄쩍 놀랐다. 불이 비치는 유리창, 거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이제 다시 사람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쁘로뱅씨는 왼쪽으로 비스듬히 꺾어 똑바로 서쪽으로 향했고, 마르끄는 둘레에 있는 숲의 짙은 어둠 속을 더 잘 살펴보려고 몸을 차창 밖으로 내밀었다.
『뭘 찾는거야, 얘야?』
『담이요』
서기가 한마디마다 힘을 주는 투로 말한 것처럼 「연금(軟禁)교육생 기숙사」라는 것은 둑 보다도 더 두껍고 그 위에는 가시철망을 친 담이 있어야 할터이었다! 가령 「쾨니히스베르그의 죄수들」이라는 영화에는 마르끄가 기억하기에는…
『다 왔다』
하고 쁘로뱅씨가 말했다. (활짝 열린 창살문, 잎들의 붉은 금빛, 물결이 어우러져 넘나드는 낮은 담이었다.)
『어, 표지가 망가졌군!』
쁘로뱅씨는 차에서 내렸다.
『와서 도와주렴!』
그래서 마르끄는 그가 있는 창살문 기둥 가까이로 갔다. 「떼르느레」라고 새긴 돌 위에는 다 쪼개진 나무로 된 표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소년소녀보호 지방협회(地方協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