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가 提示(제시)한 길로… 刷新(쇄신)되는 敎會(교회)들 ④
젊은 世代(세대) 刷新(쇄신) 앞장
큉 라너著書(저서) 많이 읽혀, 一致活動(일치활동)도 漸進(점진)
緩慢(완만)히 變革(변혁)
필립핀 極東唯一(극동유일)의 그리스도 教國(교국)
教會間(교회간) 有機的(유기적) 關係(관계) 없고 宗敎(종교) 敎育(교육) 疎忽(소홀)
87個(개) 方言(방언), 典禮(전례) 改革(개혁)등에 障害(장해)
발행일1965-05-02 [제469호, 2면]
【NC 特信】 필립핀 군도(群島)에 복음이 전파된것은 1565년 가톨릭전교 신부들에 의해서였다.
그로부터 4세기후인 오늘날(4월 27일~5월 2일까지) 필립핀에서는 교황특사 안또니웃띠 추기경과 많은 내빈 주교들을 맞이하여 성대한 선교 4백주년 기념행사가 거행중이다.
필립핀에 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쇄신의 기운은 완만하고 때로는 혼란을 겸한 진통을 겪고있지만 교회생활의 내적혁신이 진행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필립핀 가톨릭의 완만한 변화가 극적으로 표시된것은 아마 지난 12월 28일 「듀마겟트」의 술반 주교가 「실리만」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아세아 프로테스탄 청년회의에 나아가 연설함으로써 일 것이다. 「실리만」 대학은 여러해동안 필립핀 「프로테스탄티즘」 지성의 중심지로 알려진 곳이다. 지금까지는 가톨릭자으로서 자녀를 이 대학에 보내면 그 부모들은 성사(聖事) 길이 막혔던 것이다.
술반 주교는 그 연설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일치를 호소하여 『우리 서로의 신앙에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차이가 우리의 생활을 보다 더 그리스도교화시키고 아직도 그를 모르는 미신자들에게 그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공통된 목적 수행을 위해 우리가 서로 뭉치는데 방해돼서는 안될 것이다』고 말하였다.
필립핀은 극동(極東)에 있어 유일한 그리스도교국(國)이다. 그러나 각교회간 관계는 긴밀하지 않았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비록 2천7백만 총인구중 83%가 가톨릭이긴 하지만 평균 종교 교육수준이 높지않은데 있을 것이다. 작년도에 이곳 주교단은 공립학교 아동들의 70%가 전혀 종교교육을 받고있지않으며 그 나머지도 조금밖에 받고 있지 않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신자들의 종교교육이 부족한 이유에서 「마닐라」의 산토스 추기경은 타교파와의 대화를 아직 장려하지않고 있으며 적어도 신자대중에 관한한 그런 접촉은 아직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추기경의 신중한 태도는 전례개혁에 있어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어느 기회에 『나는 전례개혁에 관하여 신부들과 평신도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혼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열광적일 필요는 없으며, 다른 나라에서 전례개혁이 시행됐다해서 우리도 그것을 지금 당장 따라야 할것은 아니다. 전례개혁은 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같은 교회지도층의 경계하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필립핀 교회의 현대화는 전진하고 있다. 몇몇 외국 전교회소속 주교들은 이미 공의회 이전부터 본방어(本邦語)에 의한 미사봉헌을 허락했었다.
현재까지 주교의 허락하에 이 나라의 87방언(方言) 중 10종의 방언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주교들 중에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영어미사를 그대로 도입한 이들도 있다. 「마닐라」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신부들은 영어창미사를 비롯하여 「타갈로그」 「비꼴라노」 「세부노」 「일로까노」의 방언 미사허락을 받았다.
동회 아푸앙 신부는 새전례에 대한 신부들의 반응을 말하면서 『노인들 중에는 보수적 관념에서 이에 반대하고 혹은 신중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신부들은 능동적이요 직접적인 전례개혁을 바란다』고 밝혔다.
타교파와의 접촉대화도 전진하고 있다.
주교 허락하에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그것없이 감행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두개의 위원회가 이 목적을 위해 주교들에 의해 공적으로 설정돼있는데 그 하나는 상부기구로서 프로테스탄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있고 다른 하나는 YMCA와 보다 더 우호적으로 협동하기위해서다. 그밖에 국립대학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 학생들간에는 그들 자체의 회합이 계획돼있고 어떤 신학생들은 프로테스탄 신학생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스도교학교 수사회경영 「덜라·살」 대학에는 연(年) 2회 「디알로그」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동대학 「멤버」와 프로테스탄 지도자들 사이의 대화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프로테스탄의 「실리만」대학 신학부 부장교수 폴·T·로비 목사는 이같은 교회일치운동의 발전에 대한 소감을 표명하여 『과거 60년 동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간의 적대관계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교회일치의 염원이 진지함을 잘 증명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은 양교회사이의 장벽이 무너졌다고 볼수 없으며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전면적 돌파구가 트여져 있진 않다』고 부언하였다.
필립핀 가톨릭교회에 이런 전면적 돌파구가 트여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래서부터, 환언하면 구미(歐美)에 유학한 젊은 사제들과 평신자들에 의해서일 것이다.
당시 미국가톨릭서점에서 공의회 및 현대가톨릭신학사상관계서적이 많이 판매된다고하며 그중에서도 한스·큉·이브·꽁갈, 테이야드·더·샬뎅, 칼·라너 같은 신학자들의 저서가 많은 가톨릭지성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다한다.
미국에서 신학교수로 있던 예수회 아레발로 신부는 젊은 세대가 필립핀 교회의 쇄신운동을 영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념은 저지(沮止) 할수 없다. 우리 평신자들과 신학교를 갓 나온 젊은 신부들은 쇄신을 열정적으로 희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평신자들의 쇄신동향은 그리스도교가족운동, 「오뿌스·데이」 기타평복수도회, 신용조합운동, SELA(동남아사회·경제연구회) 및 평신도 묵상회운동이 현저한 발전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수 있다.
극히 최근에 시작된 평신도피정 「쿨실로」 운동은 이미 8개교구에 번져가고 있으며 「카체레스」의 알벨토 보좌대주교는 예상보다도 더 많은 피정지망자들이 있다고 말하였다.
「오뿌스·데이」 역시 비교적 쉽게 전파되었다. 이 운동의 책임자인 서반아 출신 요세·더·리베라씨는 『이곳 신자들은 퍽 협조적이다. 씨만 뿌리면 곧 성장할것같은 현상이다』고 칭찬하였다.
가톨릭신문 「라디오」 「텔레비」 등은 필립핀에서는 「붐」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바티깐」 방송의 동남아 지역 중계방송국도 계획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같은 사업이 많이 있어야 된다는 인식도가 여기선 매우 강하다. 잡지들이 지방 방언(方言)으로 번역되어 아주 외딴시골에까지 보내지고 있다. 한 신부는 그 이유를 설명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손이 뻗기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한다』고 말하였다.
필립핀 사람들은 공산주의자 「훅」의 일당들과 싸웠을때 좌약적혁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미 맛을 보았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혼란이 재연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이은 사실로 인해서 또한 선교 4백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에 필리핀 주교들은 외국전교회 설립을 서둘렀을 것이다. 그 자체를 위해서도 사제수가 부족한 교회로서 이같이 신부들을 외국전교에 파견하려는 것은 대담한 계획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대담하고 동시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은 필립핀 교회의 특징같이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