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錄(록) (13) 로마의 기도
수계만은 잘하는 우리들과 대도적
생활한 신앙속의 이태리인
발행일1966-01-16 [제502호, 3면]
이탈리아는 두말할 것 없이 가톨릭나라이다.
그러니까 교회의 공식 축일인 파공 첨례날이면 관청이며 회사며 은행이며가 모두 쉰다.
가톨릭의 본산지 다운데가 있다. 아무리 동양사람이라 하더라도 가톨릭신자는 이탈리아 어느 낯선 마을을 가더라도 우리나라 동회나 면사무소 수효만큼은 성당이 있어 외롭지 않다.
아무리 생소한 곳을 가더라도 성당 안의 건축구조나 미사형식이나 강복식 등이 똑같고. 그리고 신자들이 하는 경건한 태도도 비슷해 흐믓하다.
그런데 몇가지 한국과 비교되는 것이 있다. 신자들의 경건한 표정 속에서 이탈리아 교우들의 생활화된 신앙표정이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성단 안에서 성호를 긋는 속도와 장궤절 하는 속도가 몹시 빠른 것 같다.
빠른 정도가 아니라 숫제 성호를 그을때 이마에 손을 갖다 대는 사람이 별로 눈에 안띌 정도다. 그리고 장궤절을 하는데 오른쪽 무릎이 마루에 닿는 표준형이 별로 없다.
물론 진짜배기들이 많기는 하지만. 대축일이 되면 이탈리아 전역은 축제의 성당 종소리로 휘감겨진다.
성당문 앞에서 색다른 인종인 나에게 인사를 하는 할머니도 있다.
『봉죠르노 시뇨레』(안녕하십니까)
한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를 만나 나도 사치스럽게 이탈리아 말로 인사를 해본다.
『코메스타』(어떠세요?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인사말)
『스토 베네』(네 좋습니다)
몇번 다닌 성당마당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만나지게 된다.
보통 주일미사 때인데도 큰 성당 안에는 미사 참례하러 온 교우들로 빡빠가다.
영성체하러 나갈 미사 부분이 되었다.
맨 뒤에 자리잡은 방순경 여사와 나는 이탈리아 교우들이 반수정도 성체를 영한다음에 나갈 셈으로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하고 있었다.
천여명으로 헤아려지는 교우들이 있었으니 신뷤이 교우들에게 성체를 영해주기 시작한 후 한 5분정도나 지난 다음에 나가면 알맞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묵상의 눈을 뜬 방여사는 신경통이 다리를 무릅쓰고 다름박질 하다시피 제대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20여명 밖에 영성체자가 없었다. 나도 허겁저겁 제대 앞으로 나갔다. 성체주는 시간은 2·3분 정도에 불과했다.
『천여명 교우에 성체 영하는 사람이 너무 적군요』
방여사는 이외의 사실에 좀 놀라는 기색이었다.
『역시 한국 교우가 세계적으로 수계범절엔 표준이고 모범적인 것 같죠』
나는 이탈리아 사람의 외관만 보고 약간 우쭐됐다.
성악가 신상우씨도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새벽미사 참례를 가보면 정말 놀랄정도로 사람이 별로 없어요. 한국에선 그래도 어지간하잔하요.』
우리는 엉뚱하게 교우들의 신앙표정만 보고 신심생활을 측정하면서 국위를 선양하러 들었다.
『이 흔한 「로마」의 성직자를 신부님 수효가 부족한 한국에 보내줬으면…』
『아니 그것보다 「로마」의 신학생들을 한국의 신학교에 유학시켜 좀 전교지방의 교우들의 신심생활 속에서 격려를 받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임없는 한담에 꽃이 피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활밑바닥에는 그리스도정신이 굵직하게 흐르고 있는 것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공산당원도 어지간히 많다. 공산당청사를 마련하고 신부님을 청해 축성을 한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산당원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식이 생기면 영세를 시킬 줄 아는 좀 색다른 빨갱인 것이다.
나라의 종교가 가톨릭이기 때문에 온국민중엔 별별 사람이 다 있을 수 있다.
전교 잘되는 한국, 성당도 잘나가고 찰고도 잘 받고 성사도 잘 받는 한국교우가 과연 신심생활에 있어 이탈리아 사람들의 그리스도적인 생활보다 자랑할만한 것이 될는지 우리끼리 몰래 생각해보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