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市 NC】 「바티깐」의 주간지 「옷세르 바또레 젤라 도미니까」지는 교종 바오로 6세가 월남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기도(企圖)에 참여한 것은 전 인류가 품고있는 공통된 소망의 표현이라고 논평했다. 동 주간지는 전쟁을 계속 할만한 정당한 이유를 서로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교종의 성명서가 미국의 정책을 은근히 단죄한 것이라고 해석하려는 공산주의자들, 특히 이태리의 공산주의자들에게 혹평을 가했다. 또한 「바티깐」이 일간지 「옷세르 바또레 로마노」의 편집차장 알렉산드리니씨는 사설을 통해 월남에 대한 호전적(好戰的) 정책을 다루고 논평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 드러난 교종의 노력은 당신을 모르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공동의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반응을 보인 것이며 육체적 도덕적 역량의 감소가 극도에 다달은 그들은 평화를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없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전쟁이 종결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인간양심의 부르짖음이다. 정치인들은 여러가지 이유들을 내세우고 있는데 우리가 시야를 약간 넓혀보면 그 이유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 그것은 세력의균형,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영역, 만민의 자유를 위한다는 최고의 명분(名分) 등이라 하겠다. 그러나 인간을 살육하는 이유를 이미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수억수만명이나 되며 그들의 심안(心眼)에서는 그런 이유가 이미 설명될 수가 없고 더우기 정당화되는 일은 더욱더 있을 수 없다.
교종의 노력이 지향(指向)하는 바는 책임감이 수반되는 자유이다.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자유를 존중하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의 뜻은 몇몇 지도자들의 의되에 짓밟히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그들이 함께 조성해놓은 사태를 숙명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요즘 운위(云謂)되고 있는 자유가 그 말의 본뜻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표명해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되기에 앞서 교종 비오 12세는 『평화로 말미암아 상실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세계를 향해 외쳤으며 그의 평화호소가 당대에서는 수포(水泡)로 돌아갔으나 훗날의 역사는 그 호소의 위대성을 증명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사태는 아직 그러한 비극적인 시기에는 봉착되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은 다분히 잠재해 있으니 만약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역사에 의해 비오 12세의 말씀이 무섭게 확증된 바를 우리는 상기(想起)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인류의 자연적 소망을 위하여 다소의 현명한 계산과 계획을 뒤에 업고 자유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실로 이러한 현싯점에서 볼 때 바오로 6세의 외침과 활동은 전인류의 공통된 소망을 정확하게 표명하고 있으며 당파와 그리고 서로가 버티는 입장들을 초월함으로써 그의 부르짖음은 모든 논리를 벗어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새롭게 하고 있으니 그것은 인간개개인 사이와 또한 민족과 민족간에 유일한 교량(橋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