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5) 自我의 價値 ①
발행일1965-05-02 [제469호, 4면]
그 후 「미스터」 차는 다시 나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나 총무과장 진씨만은 전과 다름없이 싹싹하며 친절했다.
여느 때의 그는 누그러운 성격으로 보이지만 일에 대해서만 매우 꼼꼼하였고 덜렁거리며 일에 마디를 여미지 못하는 「미스터」 꼬마는 곧잘 면박을 당했다.
한번은 그가 나에게 부탁한 급한 「타이프」 원고가 다른 서류에 쓸려간 일이 있었다.
간수를 허술히 한 나에게는 말이 없고, 원고가 끼어간 것도 모르고 그냥 가져간 사람만 나무랐다. 여자에게는 관대한가했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미스」신이라고 올드·미스」가 있는데 자리를 자주 뜬다고 눈총을 주기도 했다.
아직도 그가 오해하고 있을까봐 진호라는 약속한 사람이 현재 군대에 가 있다는 얘기를 거듭했더니 진씨는 별로 얼굴빛을 변하지 않았다.
그 후도 영화표가 두장 있다고 하면서 같이 구경가자고 하기도하고 농구나, 야구구경을 가자고했다. 과외공부에 지장이 없는한 거절은 안했다.
「미스터」차는 퇴근 때면 은근히 나를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따라 나왔었는데, 지금은 다만 그의 책상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아쉬운 시선으로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무심코 고개를 들다가 응시하고 있던 그 시선에 몇 번이고 나는 부딪쳤다.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눈을 껌벅거리며 그는 다시 책상위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미스」양은 몸이 몇 개쯤 있어야겠어』
하루는 「미스터」 꼬마가 빈정거리며 말한다.
『왜요?』
『미혼남성의 시선이 「미스」양에게로 쏠리고 있거던!』
이 「오피스」에 온뒤 나는 자신의 가치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전날의 나는 마치 구격에 합격못한 실격(失格)한 상품같이 뒷골목길을 헤매었었다.
따라서 나 자신을 비하(卑下)하는 패배감과 반발심만이 치밀었었다.
일그러진 눈으로 세계상을 보려고 하였고, 자신의 갈길을 밝은 곳에서 찾지를 못했다.
그때로부터 현재에 이른 변화는 무엇이 갖다준것일까? 하루는 퇴근 시간에 직장을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진실한 애정!)
나는 그 한마디 속에 해답을 발견한 듯했다.
진호의 진실이, 일그러진 내 가슴에서 진실을 불러일으켰고, 뒷골목에서 햇빛을 향하여 나설 힘을 준 것이었다.
『진호씨의 진실을 내 가슴에 깊이 간직해야지.』
이렇게 스스로 다짐하니 따스한 것이 가슴에 부풀어 올랐다.
바람이 휘몰고 있던 가슴속의 빈 구석들이 조용히 차진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오피스」에서도 나의 과거를 들추어내려는 입과 눈은 있었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미스」신과 마주쳤는데 입을 비죽거리며 이런 말을 한다.
『「미스」양은 총무과장하고 그렇게 같이 다녀도 괜찮아?』
『농구 구경 간거 잘못이야요?』
『약속한 사람이 안다면 기분이 덜 좋을거 아니야?』
『약혼한 남성 이외의 사람과는 같이 다니지도 못하나요?』
나는 떳떳한 표정으로 「콤팩트」를 딥다두들겨 대고있는 「미스」신의 얼굴을 의연히 쏘아 보았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언니 같은 노파심으로 말했을뿐이야! 대개의 남자는 그런것을 싫어하거던』 「미스」신은 화제를 돌려 내가 입은 국산 뽀뿔린 「원피스」를 둘여다 보았다.
『「칼라」가 멋있어 외제겠지? 얼마 주었어? 어디서 했지?』
『싸구린데 뭐!』
『거짓말?』
「미스」신은 곧이 안들었다.
나중에야 알고 놀란 표정으로 한참 들여다 보았다. 회갈색으로 큼직하게 바둑판 무늬로된 「칼라」이며 「디자인」은 목깃이 길게 트였다. 시장에서 감을 사다가 「디자인]을 일러주고 맞춰입은 것인데 「미스」신도 일주일후에는 그대로 해입고 나섰다. 키가 작은 「미스」신에게는 큰 바둑판무늬와 기름한 목깃이 한층 키를 작게 보이게 했다.
얼굴 살색이 희지못한 그 얼굴에 회갈색의 거뭇한 색깔은 얼굴을 한층 침침하게 하였을 뿐이었다.
『「미스」양이 멋지게 보이니까 「올드미스」께서 흉내를 내셨는데 「스타일」되려 엉망이야!』
「미스터」 꼬마가 이렇게 말하자 딴 여사무원들은 허리를 잡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미스」신은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므로 그얘기를 들은 모양이라, 「미스터」 꼬마를 노려보았다.
다음날부터 「미스」신은 딴 「슷츠」를 입고 나왔다.
『그야, 퇴기하고 우리 한국 사람하고 체격이 다른것 당연하지 뭐야… 「미스」양은 000가 버린 고아란 말도있어…』
「미스」신은 그후 이런 소리를 지껄이고 다녔다. 살며시 덮였던 마음의 상처를 송곳 끝으로 쑤신것 같이 아찔했다.
그러나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는 있다는 생각에 모르는척하고 자기 할일만 했다.
그 후 남성들의 나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을 예상했는데 총무과장은 여전히 친절했고 「미스터」차의 시선은 여전히 내 모습을 쫓고 있었다.
「미스터」 빈대떡은 그의 버릇인 측면에서 자기의 세도와 자랑을 시위하기에 바빴다.
나 들으라고 일부러 며칠후면 갈 자기 아버지 회사에 대해서 크게 이야기를 하였다.
『비서겸 「타이피스트」를 한명 채용하고 싶은데 적당한 사람이 없구먼, 영어 발음도 좋고 체격이 늘씬해야 외국 사람을 상대하기에 좋거던! 월급은 이 회사의 다섯곱절은 낼데야!』 나는 못들은척 했다.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갈대와 같이 바람따라 흔들리던 내가 이처럼 굳어진것이 나자신 이상했다.
그러던 하루 「미스터」 꼬마가 오더니 『「미스」양, 명동서 구두닦이 했었어?』 하고 묻는다.
『…거짓말이지? 「미스」신이 어서 듣고와서 퍼뜨리고 있는데, 중상하지 말라고 내 핀잔을 주었어… 「미스」양 가서 항의 해…』
『구두닦이 했다면 어때요… 나는 생활을 위해서 한때 구두닦이 했어요…』
표정을 흐트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사실인가?』
꼬마씨는 얼굴 전체가 눈이된다.
『네에…』
나는 간단히 대답하고 자기 일에 열중했다. 나의 과거의 실마리들이 어디서 어떻게 캐나왔는지 그 후도 수시로 흘러나왔다.
「양키」와 어떻구 저떻구 덤을 달아서 소문이 내귀에까지 들어왔다.
사안의 수소문의 연락원은 언제나 꼬마씨였다.
「미스」신은 자기가 퍼뜨린 소문도 모르는 척 하고 나한테 되 묻는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침묵과 평정(平靜)으로 나는 응했다. 그렇게 노력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절로 그만한 여유가 생겼다. 그러한 과거의 내가 마치 먼데의 딴 사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미스」신의 인기는 조금도 안 올라갔다.
「미스」신은 열심히 얼굴을 가꾸고 몸치장을 하고 남성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으나 총각사원들의 시선은 거의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극장표 한장이라도 나에게 갖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