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錄(록) (14) 20세기의 성녀
죽음으로 산 교훈 남긴 고렛띠 성녀
잠자듯 누웠으나 가시지 않는 미소 짓고
성당 제대에는 은혜 받은 감사편지 가득
발행일1966-01-23 [제503호, 3면]
나와 이 알렉산델 신부는(현재 미국에 계심) 백신부(디오니우스=현재 천안본당 주임)가 운전하는 차에 앉고 「로마」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로마」 에 계신 백신부와 김영환(분도) 신부가 특별안내를 자청해준 날이었다.
『「로마」까지 왔다가 20세기 성녀의 유적을 못봐서야 되우?』
백신부님 말씀에 흥겹게 부르던 「오솔레미오」의 제창을 중단했다.
나는 조용히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행적에 대한 예비지식을 얻기로 했다.
어느 뉴적을 보러가든지 역사적인 배경이라던가 전설이라던가 행적에 대한 예비지식 없이 보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마리아 고레띠 성녀 전기가 출판되어 있었다는데도 나는 읽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백신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농촌에서 살던 열두살 먹은 소녀였죠』
『아니, 열두살 먹은 어린 소녀가 20세기에 박해를 받아 순교한 것도 아니겠고 무슨 굉장한 행적을 남겨놨나요』
나는 이때 무식한 사람이 흔히 품게되는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백신부는 이렇게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마리아 집에 지오반니란 사람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살게되었다. 농장일을 마리아네와 같이 돌 볼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지오반니의 아들 알렉산델이 추잡한 뜻을 품고 고레띠에게 덤벼들었다.
『어머니!』하고 소릴 질렀지만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내 말을 안들으면 재미없어!』하고 알렉산델은 고레띠를 꼭껴안았다.
어린 마리아로서는 미친듯이 달려드는 알렉산델의 억센 힘을 견딜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안간힘을 다하여 반항을 하였다.
그때 알렉산델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버려!』하고 위협하는 것이었다.
순결을 죽음 앞에서도 지킬 결심을 한 마리아는 마침내 열네군데의 칼침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채로 쓸어졌다.
숨이 끊어지기 까지 그는 달려온 어머니와 신부님께 『알렉산델을 위해 기구해달라』고 당부했고 그 사람이 죄중에 죽지 않도록 패달라면서 숨지고 말았다.-
백신부가 몰고가던 차가 조그마한 마을에서 속도를 줄이는 것이었다.
『자, 내리슈, 바로 이 집이 고레띠 성녀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이오』
조그마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경당 같은 소규모의 성당이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피 묻은 곳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우리는 잠시 1902년 7월 2일에 있었던 행적을 추상하면서 묵상할 기회를 가졌다.
백신부는 우리를 다시 차에 태우고 「악세레타」를 밝고 있었다.
약30분 후에 도착한 곳은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기념 성당이었다.
1950년 6월 24일에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녀품에 올려진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유해가 유리관 속에 그대로 모셔져 있었다. 흰꽃 「베일」을 씌운채로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잠자듯 누워있는 성녀의 표정 속에는 신비로운 미소까지 스며있는 듯이 느껴졌다.
『아니, 마리아 성녀가 세상을 떠난지 60여년이나 지났는데 살이 썩지 않고 이렇게 보존될 수 있나요?』
나는 궁금거리를 물을 수 밖에 없었다.
특수 방부제를 써가지고 했을거라면서 어쨌든 틀림없는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시체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이 성당제대 양녘에는 세계 각국에서 이 마리아 고레띠 성녀께 기구하여 특별한 은혤르 받은 사람듥로부터 온 성상, 글월 편지 등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순결을 헌신짝 같이 생각하기 쉬운 20세기 현대인의 거울같은 존재였다.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마리아 고레띠는 성녀가 되었고, 이 성녀에게 흉칙한 마음을 갖고 칼부림을 한 알렉산델은 마침내 성녀의 마지막 유언에 감동 되어 지금도 모 수도회의 문직이로 근엄한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