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아게서 죽으신 그리스도는 구원사(救援史)를 세상 끝날까지 지속시키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며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혼과 육신을 비교하여 볼 때 물론 인간에게 있어선 영혼이 우위(優位)이며 이것 때문에 다른 동물과 구별될 뿐 아니라 만물의 영장(靈長)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지능과 의지는 이 영혼의 작용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둘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통해서만 갈라지게 되어있으므로 인간에 있어서 이 둘을 따로따로 떼어 관찰함은 별 의미가 없을 경우가 많다. 육신만으로의 무의식행동(無意識行動)을 무가치하게 보듯이 영혼만을 가리켜 인간이라 하지도 않는다. 영혼은 육신을 통해서만 시간과 공산의 세계안에 진리를 차지하여 비로소 인간이라는 주체(主體)를 구성한다. 그러기에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는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사회와 무관(無關)하여 존재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교회는 사회전체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하여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거기에 적응하는 사회정의(社會定義)를 내리는 것은 마땅히 되어져야 할 일이었고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어져 왔다.
레오 13세의 「레눔 노바룸(RERUM NOVARUM)과 비오 11세의 「과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 그리고 전 교황 요안 23세의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지상의 평화」(PACEMIN TERRIS)는 그 대표적 예라 하겠다. 그리고 이번 공의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안건(案件)의 하나로 저개발국의 개발문제가 교부들에 의하여 진지하게 토의되고 성청내에 「세계 빈곤 극복 사무국」을 설치하자는 제안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이론들이 그에 알맞는 실천을 동ㅂ나하지 않을 때 아무런 가치가 없음은 자명하다.
지난해에 우리는 「가톨릭시보」의 지면을 빌어 「일반인의 가톨릭교회관」을 읽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한국의 천주교회가 많이 발전하는데 어찌하여 사회의 부패와 빈곤이 그에 비례하여 줄어지지 않는가?』
『가톨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그들의 견해는 우리에게 있어서 거의 치명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역대교황의 훌륭한 회칙(回勅)을 예로 들어가며 떳떳하게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그보다 우리는 이미 이 사회에 교회의 사회정의를 구현(具現)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우리의 소극적이었던 행동을 솔직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 발표된 신부님들의 글에도 나타나 있었다.
물론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만족」이라는 최악의 경우에 비하여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왜 우리는 남의 공격에 머리를 숙여 긍정할 수 밖에 없었으며 왜 미리 그들의 입을 막지 못했던가. 그리고 우리에겐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조차 뚜렷하지 못한게 아닐까. 하기야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구호기관이 없지는 아니하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가 외국 원조 기관의 힘으로 운영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JOC(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투사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중에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담당하는 특수 임무로 그릇되게 생각되어 오는지 오래다.
신부님들이 사회 · 경제촉진회(社會 · 經濟促進會)를 결성했다 한다. 커다란 자극이 되리라 생각하며 훌륭한 고과를 기대한다. 지난번 본지에 연재했던 PISA회 한국대표 신부님들의 논설문(論說文)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으로 읽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부님들의 힘만으로도 너무 벅찬게 현실이다.
상처가 새로운 치료를 받을 때 비로소 아물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도 과거의 무관심을 벗어버리는 새로운 현실참여가 필요하다.
교황 성하는 UN을 방문하시고 세계의 평화와 빈곤 타파를 위한 「빵증산」을 외치셨다.
그뿐 아니라 지난 크리스마스때에는 특별 「메시지」를 통하여 평화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시면서 월남전선의 휴전을 요구하시기까지 하였다.
교황 성하의 발언은 곧 교회의 발언이다.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천주의 백성」인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까 바로 우리 자신이 세계를 향하여 평화와 빈곤타파를 외친 셈이 된다. 그우리가 평화를 외면하고 빈곤 타파를 위한 적극적인 현실참여에 무관심하다면 그처럼 우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솔선수범하여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현실에 참여하며 사회악과 싸와야 한다.
그리고 빈곤한 우리 사회에 식량증산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임무일뿐 아니라 가톨릭인의 사명이기도 하다. 이 임무수행을 위하여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면 어떠한 방법이라도 강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 주어진 여건 안에서라도 그를 의식적으로 자발적으로 이용함이 필요하다. 그 결과로서 우리의 식탁 위에 더욱 풍성한 빵이 오르게 될 때 천주님의 축복이 그 위에 내려질 것이다.
김영교(대전교구 금사리본당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