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國(조국) 언제나 나의 祖國(조국) - 南美行(남미행) 가톨릭移民國(이민국) 航海記(항해기) ①
떠나고 나서야 그리움에 목메여
離別(이별)의 고동이 울려펴지자 畢生(필생)의 任務(임무)인듯 … 한 少年(소년)이 제 몸보다 큰 太極旗(태극기) 흔들어
발행일1966-01-23 [제503호, 4면]
『야훼시여… 당신 머므르시고 마련하신 자리에 주시여, 저 당신 손수 정하신 성소에 저들을 심으소서』 (출애급기 15, 모세의 노래 일절)
그 옛날 박해의 땅 애급을 벗어나 「카나안」 복지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희망에 찬 그들은 천주께 평찬한 나그네길을 기원했다.
비록 가난하나 그들을 낳고 길러준 조국, 그를 등지는 운명의 출항이 박두했을 때 그들은 새삼 절실한 그리움에 목놓아 울었다고 했다.
이글은 지난 11월 17일(뽄보 496호 참조) 가톨릭 이민단 제1진 53세대 311명이 고국을 떠나 목적지 남미의 「파라나큐아」항에 도착(1월 12일 도착예정)하기까지, 낯설고 불안하나 한편 추억많은 긴 항해의 가지가지 사연을 엮어보낸 것이다. 그들은 조국에 있는 친지 · 동폳르에게 아직은 막막하나 꿈 많은 그들의 앞날에 축복을 보내줄 것과 모든 이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분투하여 장차의 이민에 길잡이가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11월 17일】 오후 8시40분 우리들을 태운 배 「짜짜랭카」호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갑판으로 뛰어올라갔다. 부두와 갑판은 울음의 도가니로 화하고, 『언제 다시 돌아올 것인가』 저마다 기막힌 사연을 지닌채 목놓아 울었다. 흐느낌 속에 「아리랑」 「애국가」가 울려온다. 제일 갑판에서 한 소년이 묵묵히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제 몸을 휘감아도 남을 커다란 태극기다. 마치 그것이 그의 필생의 임무인듯 소년은 그렇게 진지하게 온 정력을 바쳐 힘차게 흔드는 것이다. 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조국의 하늘 아래 그 누가 어떻게 냄담히 견딜 수 있을건가? 더구나 개중엔 부모를 이별하는 사람 자식을 떼어놓은 사람 부인을 남겨두고 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신체검사에 불합격하여 가족중 한사람을 떨어뜨리고 가는 어떤 가족들의 애통은 차마 옆에서 볼 수 없을 정도다.
언제 만나리란 기약도 없는 이별이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저마다 소리쳐 불렀으나 무섭게 까라앉은 습기찬 검은 대기속으로 산산히 흩어져 사라질 분 멀리 희미해진 부두엔 아직도 검으스레한 흩어질 줄 모르는 전송의 무더기가 까물거릴 뿐이다.
사람의 한없이 어리석음이여, 잃고 나서야 더욱 그 가치는 절실해지고 떠나고 나서야 그리움에 목메이는 것을, 살처나고 시달려 여윈 조국이나 끝까지 우리를 품어온 우리의 어머니 나라여, 그러나 우리는 배반하는 것이 아니다.
먼동이 터오는 내일을 어머니와 기약코자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부디 안녕히…
배에는 중국인 전용 욕실, 일본인 전용 욕실이 있되 한국인 전용 욕실은 없다.
히 배는 화란배인데도 선원의 70%가 중국인이고 그 다음이 일본사람(간호원도 일본사람)이고 고급직무는 서양사람들이 담당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두명인데 한분은 주방에서 일하고 한분은 이번 기회에 새로 고용된듯한데 소제부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중국말이 제일 많이 통용되고 다음에 일본말 그리고 서투른 영어가 더러 통하는데 1·2등선객도 주로 외국인이다. 영어가 주로 통용되는 것 같다. 중국어나 일본어를 알면 의사소통에 별 지장이 없으나 갑판에서는 젊은층끼리 영어를 통용한다.
모두들 중국어 일본어로 말하려고 애쓸때 한 외국인이 한국어로 얘기해주는 바람에 띌듯이 기뻤다. 그는 「홍콩」에서 내린다고 하는데 공(孔) 야고버 수사라고 한다.
장래 어느날엔가 우리 민족도 세계적으로 뻗어나 가는 곳마다 우리 후손들에게 좋은 선입관으로 대하고 훌륭한 「서비스」를 받는 국민이 되기를 염원한다.
오후부터는 날씨가 음산해지기 시작, 파도는 높고 비바람이 치며 사위는 잿빛 안개로 둘러친다. 차차 배멀미를 하여 눕는 사람이 많아졌다.
갑판에서 내려오니 보지못했던 잡지들이 눈에 띄었다. 이 배의 2·3등 사무장이 보내준 것이라 한다. 그밖에 어린이 자전거 장기 바둑도 분배 받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