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慈愛의 源泉」 「犠牲의 象徵」 이어야 / 鄭勳模(서울大學校音樂大學 敎授)
5월은 성모의 달이고 어머니와 어린이의 달이다. 훈풍과 같은 자애로서 자식과 남편에게 무조건 최대의 희생을 베품에 만족을 가질수있는 것이 어머님이다. 무엇에도 비할수없는 존재이다. 어머니와 같은 사랑과 희생이있다면 이 세상에서 무서울것이없으며 못할일이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비할때없이 불쌍한 것은 어머니가 없는 애들일 것이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을 못받고 메마른 나날을 보내 고있는 애들을 볼때 참으로 불쌓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61년도부터 매년 5월 8일에는 새싹회 주최로 어머니를 표창하는 행사가 생겼다.
그때마다 신문에 굉장한 기사가 기재된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매일을 하루같이 가냘픈 여자로서 자기 자신 배를 저어 자식을 중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킨 어머니라든지 불구의 자식을 업고서 통학을하여 중고등학교까지 졸업을시킨 어머니라든지 모두 똑같이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것의 산 표본이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런 뼈와 살을 깎아가며 피와 땀으로써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을까. 나타나지 않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신문에 보면 불우한 가정을 가진 어머니가 애들을 데리고 집단 자살하는 예도 본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장래가 창창한 어린것들을 희생시키는것 같은 생각도 드나 이면에는 또한 전례에서 보는 어머니들에 지지않는 어머니의 큰 사랑에 인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자기와 같은 불우한 생활을 시키는것보다는 자기의 팔에 안긴채 눈을 감게하는것이 안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이 좀 부족 할 따름일 것이다. 부족하건 족하건 간에 어머니의 사랑을 따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나는 81세된 어머님이계시다. 내 나이 60이 가까웁지만 어머님만 보면 무조건 어린애와 같이 어리광이 나오고 아주 동심이 되고 만다. 제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운 정도이다. 60이면 손자도 몇씩되는 사람이 어린이모양 어리광을 피운다는것은 그만치 미덥고 절대적인 사랑의 결정체인 어머니로 내 머리에 깊이 새겨져 내려왔기때문에 무의식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일 것이다.
또 아래로 8남매와 두 며느리와 사위까지 합치면 11명의 어머니이기도하다. 애들이나 며느리 사위에게 내 온 사랑을 하나같이 나누어주지 못하는 부족한 어머니인 것이 항상 미안하게 생각되며 부족함을 느낀 나머지 자책감을 의식하기도 한다.
천주교를 성모님을 공격하는 교라고까지 한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님이기때문에 우리들은 성모님을 존경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으로 성모님을 의지할수있고 더구나 그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행복과 사랑을 못받는 이들을 볼때 참으로 불쌍하게 생각이 된다. 한 어머님의 완전무결한 절대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우리 형제야말로 강복을 받은 한 형제들이다. 어머님이 없는 가정이야말로 쓸쓸하고 메마름이 비할데없는 가정일 것이다.
한가정에 한어머니의 완전무결한 사랑이 필요하지 여러 어머니가 있어서는 또한 그 가정은 복잡다난한 가정이될 것이다. 한가정이 한어머니로부터 받을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깨끗하고 절대적인 완전무결한 사랑일 것이요. 이러한 가정이야말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축복받은 가정이될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동물 식물 무엇에 있어서나 생명과 활력을 제공할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누구보다도 성모님을 믿을수 있고 완전한 사랑을 받을수 있는 것을 무한한 자랑으로 알고 이런 행복을 받을 수 있는 형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아 『성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
주 너와 한가지로 계시니 여인중에 너 총복을 받으며 네 복중에 나신 예수 또한 총복을 받아 계시도소이다. 천주의 성모마리아는 이제와 우리죽을때에 우리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하고 성모님께 간구하여 어머님의 도움을 빌 것이다. 어머니없는 고아가 되지말고 따뜻하고 완전무결한 참된 사랑을 받을수 있는 한 형제들이 되기를 원하는 바이다.
■ 女性의 價値-참된 어머니와 아내 돼야 古今에 다를 수 없는 哲理 / 安貞愛(서울 豊文女高 교사)
「좋은 職場보다 어린이 한달 키우는데 生命있다」
『여성은 그 먼 옛날부터 어린애를 낳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또는 목적으로 육체와 영혼 이 두가지를 남성에게 바쳐왔읍니다.
이것은 영원한 여성의 십자가처럼 하나의 도덕이요, 의무였습니다. 남성이란 이러한 자연의 애정이 깃든 헌신과 희생을 인정하지 않고 평소에는 여성이 바치는 애정을 충분히 향락하면서도 일단 법률이라든지 또는 계속적인 어떤 속박을 받게되면 비겁할 정도로 아내를 질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입센의 「인형의 집」에 나오는 여주인공 노라의 항변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각을 불러 일으켜 자유평등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었던것은 우리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밤은 너무도 길었읍니다. 수천년의 인습, 숨막히는 봉건, 수백 년의 쇄국, 그것이 한국 사람과 특히 한국여성을 조롱의 새 보다도 더 비좁은 틀속에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인간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내로서의 인격과 개성도 여지없이 짓밟혔으며 더우기 어머니의 애정이나 권리마저 거부당하였던 것입니다.
이 육중한 역사의 중압에 금이 가게된 것은 노라의 풍조때문이라기 보다도 차라리 인간의 본능적 욕구때문이었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만의 노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사람이라네. 남편의 아내되기전에 자녀의 어미되기전에 첫째로 사람이라네, 나는 사람이로세 구속이 이미 그쳤도다 자유의 길이 열렸도다 전부의 힘은 넘치네 아아 소녀들이어 깨어서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여라 새날의 광명이비쳤네』 이것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노라를 노래한 나혜석(羅惠錫) 여사의 시입니다.
빛을 가리우고 사슬에 매었던 수천년래의 한국여성의 애사(哀史)를 뼈저리게 느껴온 우리로서는 이시의 귀절귀절에 박수를 치고 갈채를 내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다만 한군데 「자녀의 어미되기 전에 첫째로 사람이라네」라는 귀절에는 큰 회의를 안 가질 수 없읍니다.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사랑이 원시적인 것이요, 맹목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아니 그 이상의 것을 받은 어느 한국 어머니라 할지라도, 그 아들과 딸을 위하여서는, 자신의 생명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아낌없이 바치려는 것이 상정(常情)이거늘, 인간으로서의 자각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를 두고 집을 뛰쳐나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물론 어머니가 어머니구실을 제대로 하자면 여섯을 한낱 부억데기내지 노리개로 생각하여온 과거의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정치·경제·법률·사회제도는 말끔히 청산되어야할 것입니다.
여성도 대표를 뽑고, 또 대표로 뽑힐 권리가 인정되어야할 것입니다. 여성도 교육을 받고, 문화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보장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성에게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권리와 그일에 대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남성과 같이 확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성도 기업을 경영하고, 장사를 하고 재산을 관리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우기 남편과 같이 가정을 관리하고, 가정의 순결을 보장하고, 친권(親權)을 행사할 권리가 보장 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여성이 여성 구실을 하는, 어머니가 어머니 노릇을 하는 유일한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그런 조건들이 보장되지 않았던 옛날에도, 훌륭한 어머니, 알뜰한 여성은 얼마든지 있었읍니다. 그러한 조건이 보장된 오늘에도 어머니 답지 못한 어머니, 여성답지 못한 여성은 얼마든지 있읍니다.
그러니까 전기한 정치적, 법적 내지 사회적 제조건은 어머니로 하여금 어머니답게 하는 절대 조전이라기보다도 간접적인 보조조건 또는 상대적인 조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로 하여금 어머니 구실을 하게하는 본질적 요소는 무엇이겠읍니까? 그것은 역시 사람의 본바탕 즉 어머니로서의 품성(品性)여하에 달려 있는것이라할 것입니다. 이것을 천품(天稟)이나 본바탕이란 말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과 쌓아올린 교양에 의하여 얼마든지 고칠수 있는 가변적(可變的)인 것입니다.
옛날 한석봉의 어머니는 한낱 16세기의 한국어머니로서, 남편에 기대어 살고,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평범한 부인에 지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 남편이 돌아간 다음에 그는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이를 악물고 고난과 인정을 극복한 굳센 어머니로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한석봉의 서예를 대성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신사임당은 비록 천질이 뛰어난 여성이었지만 시집을 가서는 뭇 아낙네와 같이 규방(閨房)에 묻히는 신세가 되지않을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 너무도 뛰어난 인격과 교양은 절대군주를 방불케하던 그 남편에게 꺾을 수 없는 위신과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남편 이원수가 당시의 사색당쟁에 말려들지않은것도 아내의 숙연한 타이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남녀평등 이전의 일이요 정치적 법률적 제도 이상의 것입니다.
(3)
여성의 가치는 어머니가 되는데 있읍니다. 본능적인 어머니로부터 모성으로 승화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진화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라고 엘렌·케이 여사는 말하였읍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을 이었읍니다. 『모성은 단지 아이를 낳는다는데는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하는 것입니다. 동물은 그 아이를 위하여 서슴치 않고 죽음에 맞설뿐만아니라 그 아이를 위하여 피눈물 나는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예컨대 고양이는 그 새끼에게 물의 무서움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일부러 그 새끼를 물속에 넣었다가 건져 낸다는 것입니다.』
케이 여사는 어미 고양이가 스펜서의 저술을 읽지는 않았지 그것을 읽은 사람의 어머니들을 무색케 할 정도의 순화된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읍니다. 어머니의 생명은 그 아이를 훌륭하게 교육시키는데 있읍니다. 부인의 품성은 고급직장에 수년동안 몰두하는 것 보다, 그 아이를 기르는 1개월 동안에 더 많이 발달된다고 합니다. 모성의 사랑은 상호부조 사회의 최초의 형식이요, 가장 뿌리깊은 근원입니다. 케이 여사는 모성애야말로 문화인의 사회가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진리 정의와 동렬(同列)에 위치하야 할 가장 숭고한 것이라 하였읍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사임당이나 한석봉의 어머니는 진리와 정의를 수호한 근대 여성의 누구에게도 못지않은 훌륭한 문화인이었읍니다.
근대 작가 학스리는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가운데서, 어머니 없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렸읍니다. 부화기에서 까낸 아이들이 『옛날에는 어 어머니라는것이 있었대…』하며 신기한 과거를 회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제 아무리 물질문명의 극치를 이루고, 이른바 행복의 첨단을 걷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가 나무토막이나 쇠붙이와 다를것이 무엇이겠읍니까? 그들의 혈관속에 무슨 정(精), 무슨 다사로움, 무슨 사랑이 흐르고 있겠읍니까?
그들은 피가 흐르는 일편의 물질에 지나지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정과 사랑이 통하는 「벨트」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정과 사랑의 원천은 어머니요, 그것은 옛날 어머니나 지금 어머니나 간에 아무 다름이 없읍니다.
독립된 인격, 높은 지식과 교양을 갖추면서도 곤곤히 샘솟는 모성애를 지닌 사랑가운데서 나는 새어머니 상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한석봉의 어머니나 신사임당의 현대적 재생이요, 현대여성의 신사임당화를 뜻하는 성모계의 「르네상스」이기도할 것입니다.
■ 시초 / 타골(타골 選集 중에서)
『어디서 제가 왔읍니까, 어디서 엄마는 나를 데려왔읍니까?』하고 아기가 어머니에게 물었읍니다.
어머니는 울음 반 웃음 반으로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대답했읍니다.
『아기야, 너는 내 가슴속에 동경처럼 숨어 있었단다.』
너는 내 어릴적 장난의 인형속에 있었단다. 그리고 내가 진흙으로 아침마다 신의 모습을 만들때에 너를 만들었다 부셨다 하였다.
너는 우리집 수호신과 함께 모셨고, 그 신을 모신데서 내 너를 모셨다.
온갖 내 희망과 사랑 속에 내 생명과 내 어머니 생명속에 네가 살아왔다.
우리집을 다스리는 불사의 신령의 무릎위에서 너는 여러해 동안 사랑을 받았다.
처녀가 되어 내 가슴의 꽃잎을 열때에 너는 그 주위에 향기와도 같이 떠돌아다녔다.
너의 다정한 아치(雅致)가 내 젊은 사지에서 꽃피어 마치 해가 뜨기 전 하늘의 놀과도 같았다.
하늘의 첫 아기여, 아침 햇빛과 더불어 쌍동이로다.
너는 누리의 생명의 흐름밑에 떠있다가 마침내는 내가슴의 암초에 걸린 것이었다.
내 네 얼굴을 자세히보니 신비가 나를 휩쓰는 구나. 온갖것에 속한 네가 내 아기가 되었구나.
너를 잃을까 겁내어 내 너를 가슴에 단단히 안는다. 이 연약한 품에 안겨 우주의 보배에 어떤 마술이 유혹을 하여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