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6) 自我의 價値 ②
발행일1965-05-09 [제470호, 4면]
며칠후 퇴근 시간이 가까운 무렵인데 「타이프」 찍은것을 들고 사장실로 가려고 복도로 나오니 복도 한 모퉁이에서 꼬마씨가 「미스터」 빈대떡에게 백원짜리 몇장을 세어서 주고 있었다.
『이렇게하면 모두 이천원 꾸어갔어요.』
꼬마의 말이 사장실로 들어가는 내귀에 들렸다.
「미스터」빈대떡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면구스런듯이 얼핏 돈을 호주머니에 감췄었다.
그때는 예사로 여겼는데, 사장실에서 나오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의아스러웠다. 「미스터」빈대떡은 큰부자의 자식이라면서 꼬마씨한테서 돈을 꾸고 있으니 무슨까닭일까.
남의 일을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기에 그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점심 휴식 시간에 급히 의논할일이 있다면서 꼬마가 나를 조용한 복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다른게 아니고 「마스터」배는 곧 자기 『아버지회사를 물려받을 사람인건 알지요?』
『그 사람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장이되는지 임금님이되는지 저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관계가 있지요. 「미스터」배는 「미스」양을 비서로 삼고 싶어하고 있으니깐!』
『나는 이 회사 사장님에 대한 의리상 딴데는 안가요?』
『고리타분하게 의리 찾을 세상인가? 한푼이라도 더 주는데 가야지 「미스」양네집은 가난하니 돈 많이주는데 가야해』 『얼마나주는 거야요?』
호기심에 물어보았다.
『여기 월급의 오배는 줄거야 그러면 삼만원 돈이야, 삼만원의 월급이면 큰회사의 국장급 월급이야…』
『삼만원은 작아요, 삼십만원 준다면 가지요…』
나는 농담으로 말했는데 「미스터」꼬마는 정색하고 듣고 있었다.
『너무 많은데, 그렇지만 말해보지…』
쫄쫄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잔걸음을 치는 「미스터」꼬마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나는 욕이나 먹을것을 예상하고 혼자 픽 웃었다.
그날 저녁 퇴근하려고 「타이프」 앞을 챙기고 있자니 「미스터」꼬마가 가까이 오더니 종이쪽지를 하나 보인다.
『OK』
라고 써 있었다.
『뭐가 「오케이」야요?』
나는 낮의 일은 생각지도 않았었다.
『낮에 말하던것 말야요. 삼십만원도 내겠다는거야!』
『호호호… 그럼 나 부자되게…호호!』
나는 물론 곧이듣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라니 거기에 대해서 의논하겠다고 하니 요아래 다방으로와요. 우린 먼저 가 있을 테니까! 꼭?』
늘 나의 거동을 은근히 살피고 있는 「미스」신이 저편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내 앞으로 슬금 슬금 왔다.
『무슨 얘기야?』
『아무것도 아니유』
「미스터」꼬마는 나에게 꼭 오라는 눈짓을 하고 나가버렸다.
「미스」신은 「타이프」 위에 놓인 쪽지를 집어보더니
『「오케이」라는 이게 뭘 의미하지?』
하고 묻는다.
『몰라! 무슨 소린지』 나는 상대하지 않고 「타이프」 기계위에 「카바」를 씌우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다방은 회사에서 백「미터」 쯤 떨어진 네거리에서 조금 더가면 막다른 골목에 있는데 네거리에 꼬마씨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스터」배가 기다리고 있어요』
『호호호호…』
나는 길가는 사람이 쳐다볼 만큼 크게 웃었다.
『괜히 사람 병신만들려구?』
나는 그냥 지나칠 생각인데 꼬마씨는 못가게 앞을 가로 막았다.
『말대로 한다는데 왜 가는거야?』
『아니 풋내기 비서에게 월급을 삼십만원씩 줄사람이 어디있어요. 나도 농담으로 한말이야요…』
『본인은 그렇게하겠다고 하는데 뭘 그래?』
이때 내 기분은 잠시 이상했다. 돈의 매력은 역시 컸다. 잠시나마 내 몸의 혈액이 속급히 머리 쪽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고 금방 나는 저쪽에서 나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거라고 추축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미스」신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저만큼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미스」신, 마침 잘 왔어요. 차 사준다니, 같이 얻어 먹읍시다』
꼬마씨는 딴 표정이 되고 「미스」신은 그나마 좋다고 다가왔다.
『괜찮지요?』
「미스터」꼬마는 조금 난처한 듯한 표정이었으나 이윽고 좋다고 하며 다방으로 들어섰다.
「미스터」빈대떡은 맨 구석 빈자리에 혼자 앉아있는데, 「미스」신은 그걸 보자, 눈까풀이 위로 올라갔다.
「박스」에 넷이 앉아서 차를 마실동안 「미스터」배는 극히 예사로운 얼굴로 「스포츠」 얘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꼬마씨는 연상 맞장구를 치고, 「미스」신은 흥미를 느끼는 표정을 우정짓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데, 나는 흥미가 없어서 앞에 걸린 국민학교 아이들 낙서한듯한 추상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꼬마씨는 할말이 있다면서 「미스」신을 데리고 저편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둘이가 되자 「미스터」배는 품없이 넓적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입을 열었다.
『월급 삼십만원대라고 하셨나요?』
『농담이야요, 호훗…』 『내지요. 내요.』
「미스터」빈대떡은 정색하고 있었다.
『그렇게 줄 사람도 없거니와 받지도 않아요….』
『나한테 올 재산의 절반이라도 줄 용의가 있어. 그런데 그까짓 삼십만원씩 못주겠소?』
『…………』
「미스터」배의 눈동자는 확실히 청혼을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나같은 여자에게 그렇게 인심을 쓰려고 하시죠?』
나는 시침을 때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비서가 필요한 것도 아니야요. 필요한 것은 결혼상대지요』
『…어여쁘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나같은 여자를 지목하세요…』
「미스」양이 맘에 드니깐 헐수있어요.』
『「미스터」배는 그렇게 말하지만 아마 부모의 맘에 들기는 어려울 거야요!』
『아니, 맘에 들어요, 아버지는 언젠가 우리회사에 한번 오셨다가 「미스」양을 본일이 있는데 「미스」양이라면 좋다고 그랬으니 이미 아버지의 승락은 난거나 같아요…』
『아버지가 나를 보셨다구요』
『내가 「미스」양 얘기를 아버지한테 한번 했더니, 살짝 보러오셨어요.』
『저의 외모만 보셨군요. 내가 산동리 움막같은데서 사는건 모르시죠?』
『그건 아직 모르지만, 그게 험이 아니야요. 우리 아버지 좀 괴상한 성미야요. 부잣집 딸이라고 반드시 좋아하지 않아요. 유명한 집 딸도 바라지 않아요. 면군데 그런데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반대하셨거든요. 아버지 눈에 들기란 좀처럼 어려운데 「미스」양이 눈에 들었어요!』
농으로 흘려버릴 작정으로 가볍게 응대하다 보니 이야기는 진실성을 띄우기 시작하였으니 나는 난처해졌다. 내머리 속에서는 진호의 얼굴이 오락가락 했다.
『오늘저녁이라도 회사로 아버지를 뵈려갑시다…』
운명이 갑자기 내 앞에서 소용돌이를 치는 듯 했다.
『나갑시다』
「미스터」배는 일어나고 나는 마치 지남철에 끌리는 쇠가되어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다방 골목을 나서자 군복입은 진호가 서 있었다.
나는 죄인과 같이 얼굴이 붉어졌다.
진호는 후방에 연락병으로 왔다가 회사에 들렸더니 막 나갔다고 하길래 가는길이라하며 「미스터」배의 존재는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고 아직 해가있으니 가까운 남산길이나 올라가 보자고하면서 앞선다. 한편에서는 「미스터」배의 시선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주춤하다가 진호를 따랐다.
남산 팔각정까지 올라가는 긴 시간동안 나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혀 진호를 곧장 바라보지를 못했다.
진호는 눈 아래의 전망을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는데 나에게는 미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