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錄(록) (15) 맥주와 예술의 도시
맥주 본고장서 맥주에 싫증
90만 시민, 백만명 손님 치르고도 조용하기만
성체대회 개최한 서독 「뮨헨」시
발행일1966-01-30 [제504호, 7면]
맥주를 숭늉 마시듯 한다는 독일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가 한국에서 숭늉 마시는 이상으로 맥주를 마시는 나라같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우리가 냉수 마시듯이 맥주를 즐긴다.
내사 처음으로 독일땅에 발을 디디어 놓은 곳은 독일 남쪽에 자리잡은 늙은도시 「뮨헨」이다.
98만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독일에서는 세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조용하고도 예술의 향취가 풍겨지는 인상적인 도시였다.
때마침 「국제성체대회」가 개최되는 때여서 도시는 온통 「축제」기분으로 들떠있는 때였다.
그런데도 도무지 소란한 면이 없다. 더구나 외부손님이 「뮨헨」 인구수만큼 늘어나 있는 때였으나 질서정연한 속에서 「성체」의 외부손님이 「뮨헨」인구수만큼 늘어나 있는 때였으니까 질서정연한 속에서 「성체대회」의 각종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체대회는 물론 정부행사가 아니었지만 시가의 주요 건물에는 교황기가 드리워져 았었고 전차 타는 데나 버스 타는 데는 안내란 완장을 단 젊은이들이 외국손님을 일일이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완장에는 자기가 할줄 아는 외국어 이름을 적어놓고 있었는데 대개 3 · 4개 국어를 할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98만명 인구의 「뮨헨」 도시에 백만명 가까운 손님들이 모여들었으니 이 사람들을 도시 어디서 재우고 먹일 셈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우선 「프레스센타」를 찾아갓다.
『한국서 온 신문사 특파원입니다. 「호텔」이 대부분 만원같은데 무슨 뾰죽한 수가 없겠읍니까?』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침식할 곳을 구해야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도와 드리죠』
의외로 「프레스센타」의 직원의 말은 간단했다.
그는 나에게 어떤 회의 장소나 회장에나 무상으로 출입할 수 있는 통감증과 기념 「메달」과 10여종의 기사자료가 될 「팜프렡」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소 저 「호텔」은 이미 두어달 전에 만원이 되었읍니다. 그러니 원하신다면 개인집으로 가실 수 있는데 여기에 주소가 있읍니다.』
나는 지정해준 개인집에 하숙하기로 하였다.
「호텔」생활 보다는 회려 독일인들의 일상생활을 엿보는데 무척 다행스러운 기회를 얻은 것 같기만 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길거리에 나왔다.
찌는 듯한 8월의 더위가 갈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처럼 시원한 냉수가 없다.
『여기서는 냉수를 먹을 수가 없읍니다. 냉수 대신 저렇게 시원한 맥주를 마신답니다.』
유학생 송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여학생, 할머니, 신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앞길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우리도 냉맥주로 갈증을 풀었다.
그렇게도 맥주마시기를 즐기던 나였지만 이틀도 못가 싫증이 나고 한국에서의 차디찬 샘물 생각이 나기만 했다.
성체대회 참석차 오셨던 유봉구 신부님(현재 수원교구)도 맥주를 싫어하지 않는 분으로 소문이 난 분인데 그만 맥주의 본고장에 와서 맥주보다 냉수만 찾게끔 되었다.
『신부님 오늘 최 안드레아 신부님의 국제강연이 있다는데 가십시다.』
유 신부님은 대답대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아 글쎄, 하도 갈증이 나길래…』
『그래서 맥주를 너무 무리하게 드셨나요?』
『맥주? 맥주로 성이 차야지?』
『그래서요?』
『그래서 그만 에라모르겠다 하고 수돗물을 틀고 냉수를 한 서너 「컵」 마셨지.』
『네? 아니 석회질이 많은 그 후더분한 물을요?』
『응, 그런데 좀 시원한가 싶더니 한두시간쯤 지나니 배가 끓더니 그만 설사가 시작되는군…』
마침내 유봉구 신부님은 독일에 와서 맥주를 기피하시다가 복통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예술의 도시 맥주의 도시」인 「뮨헨」에 와서 예술을 이해못하고도 살수는 있지만 맥주를 이해 않고는 살 수 없는 곳이다.
제2차대전때 40「퍼센트」가 깨진 도시라서 「피아코테크」(회화관) 미술관, 대성당, 시청 청사 등의 예술작품에 속하는 건축들이 피해를 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대부분 보수도 되고 새로 짓기도 해서 상처입은 흔적이 도무지 안보이는 정연하고 품위있는 도시같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