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國(조국) 언제나 나의 祖國(조국) - 南美行(남미행) 가톨릭移民國(이민국) 航海記(항해기) ②
배안에서 비로소 父情(부정)에 젖는 꼬마들 즐겁기만
隣人愛(인인애) 저절로 우러나고
航海(항해) 2日(일)째 벌써 陸地(육지) 그리워
발행일1966-01-30 [제504호, 8면]
【11월 18일】 앞으로 45일을 이 배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침소는 비좁아 다소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밖의 욕실 세탁실 등 모든 설비는 사람의 주의가 저렇게 조직적이요 세밀할 수 있을까 하리만큼 완전하다. 6시 전후해서 모두들 기상하였다. 세면소는 왁자지걸 해지고 성급한 이들이 「샤워」를 하는 통에 뿌연 증기가 선공을 얼룩지었다. 한 중국인이 어린이 「실로폰」을 들고 『딩동 뎅동…』 재미있게 박자를 맞추어 두드리고 지나간다. 장난인줄 알았더니 밥먹으라는 소리란다. 때마다 커단 어른이 장난감을 신중하게 치면서 엄숙하게 거동하시는 양은 절로 웃음이 난다. 식사는 세번에 「티타임」이 「모닝커피」까지 4번 또 실과가 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우리들의 가족생활이다. 직장생활에 바빴던 아버지 혹은 늦게 들어오던 오빠- 이렇게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안기란 힘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아기들의 시중을 들어주시며 밥을 먹여주시는 정경이란 얼마나 흐뭇한 것일까? 이층침대가 위험할세라 사다리를 고정시킨다. 판대기를 대어주신다. 며칠에 한번 얼굴을 대할까 말까하며 게다가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께서 이처럼 자상하고 다정할 줄이야- 오빠 · 언니 모두가 동생들을 거느리고 전에없이 자애로운 사람이 된다. 집집이 서로 돕는다.
무엇이 없다고 한 사람이 말하면 서로 가져다 쓰라고 권한다. 담을 높이 쌓고 옆집에 누가 이사를 오든 길흉사를 만나든 아랑곳 없이 인사 모르고 지내던 우리네 이웃간이 언제 이렇게 화목하고 정답게 되었을까? 오랫만에 참으로 오랫만에 우리들의사회가 부드럽고 풍만한 계절을 맞았는가 싶다. 이는 모국의 품을 벗어나 머나먼 잧선 타국으로 향하는 어쩔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이 비로소 이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하나의 인간가족임을 깨닫게 하는지도 모른다.
자치회에 뒤이어 곧 반편성이 있었다.
같이 있는 구역별로 5개반이 형성되고 반장에는 이차원 김중균 이원근 정웅모 강성환 제씨가 선출되었다. 오후엔 식구수대로 「스립퍼」(일본식 조리), 이 배 회사의 글자가 박힌 「빽」, 그리고 침대에 깔 돗자리를 문배받았다. 우리뿐 아니라 선내에 있는 다른 한국인(볼리비아 · 파라과이 · 산투수 · 리오로 초청이민 「케이스」로 가는)까지 합쳐 370명분의 선물이 선박당국에서 나왔다. 저녁후 7시에는 이층 「홀」에서 영화상영을 하였다. 「벽안의 나비부인」이라는 것.
【11월 19일】 집을 떠난지 며칠인고?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모두들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3등 선실은 더구나 배밑이고 사람은 많아서 유난히 더위를 느끼게 되는가 보다. 창이라곤 직경 30「센치」 정도의 동그란 것 뿐인데 창이라기 보다 구멍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적도를 지나가야 한다는데 앞으로 어찌 견딜까 걱정이다. 모두들 갑판으로 나갓다. 바다는 연록색으로 빛나고 뱃전에 부딪쳐 흰포말을 이루고 부서지는 물결도 장관이려니와 배 꼬리로 소리치며 흩어지는 물살들은 파랗게 언 빙판같이 매끄럽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리는 물이라기 보다는 탄력있고 윤기있어 차라리 약간 응고된 반고체 같이 보인다. 떨어지면 살짝 받쳐줄 수 있는 청포덩이 같아.
문득 멀리 돛단배가 보인다. 한척 두척이 나타난다. 대양을 가로질러온 단 하루만에 벌써 고적감을 느꼈단 말인가. 모두들 기뻐서 함성을 질렀다. 조금있다 보니 또 한척이 나타난다. 얼마후 다섯척이 되고 그것이 고깃배임을 알자 우리들의 기쁨은 극도에 달했다. 곧 「뉴스」가 들려온다.
「오끼나와」에 10시 착륙. 미군사기지라서 그런지 벌써 「젯트기」가 날고 군함이 보인다. 특히 젊은이들은 호기심이 대단하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접한다는 것은 「스릴」있는 일인 모양. 부두가 보이고 종선이 나타나 배로 끌어 둑에 대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까무잡잡하고 짝달막한 일본인을 보고는 모두들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