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韓國敎會(한국교회)의 成長(성장)은 日本(일본)보다 빠른가?
第(제)2次(차) 戰後(전후)의 精神的(정신적) 不安(불안) 돌보지 못해
迫害(박해)·6.25 등 難局(난국)같이 겪어
韓國(한국)-急速度(급속도), 日本(일본)-緩慢的(완만적)(成長率(성장율))
【NC 本社綜合】 한국민족의 역사와 성격은 극동에 있어 그인국인 일본의 가톨릭교회가 극히 완만히 성장하고 있는데 반해 왜 이 나라에 개종자수가 비약적으로 높아가는지를 설명해 준다.
「가톨리시즘」이 일본에 도래한 것은 17세기의 일이며 초창기에 번성했으나 이내 일어난 박해로 인해 거의 소멸되었었다. 19세기에 외국선교사들이 다시 들어갔으나 그 발전은 대단히 느렸다. 근년에 와서도 교회는 제2차 대전의 패배에서 결과된 일본의 정신적 공백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 일본 사람들의 사상과 정서에 맞는 소위 신흥종교가 부흥하기 때문이기도하고 다른 한편은 경제성장과 번영이 낳은 물질주의 생활태도에 기인하는 것이다.
「도쿄」의 한 일본인 본당신부는 또 하나의 이유로서 교회가 교리교수에 있어서나 전례에 있어 그 자체를 매력있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부언하여 그는 『현대에 와서 일본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교의 첫인상은 불행히도 서구 철학자들의 무신론적 서적을 통해서 부여됐으며 이것은 일본의 지성인들을 지배해 왔다』고 하였다.
이어 그는 『우리는 오늘날 새롭게 생활한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일본에서 조성해야 한다』고 한 후 『2차 대전 이래 한국에 있어 개종자의 수가 놀랄만큼 많은 것은 그곳의 교회가 성당, 학교, 기타시설 및 선교사가 훨씬 더 많은 일본 보다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조성하는데 더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고 설명하였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가톨릭교회가 지난 20년간 「제2의 봄」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여 다년간 일본에서 전교하고 또한 이 보다 더 오래 한국에서 활동한 아일랜드 출신 골롬반선교회 프로테릭·한슨 신부는 『한국의 과거 및 현재의 역사와 한국인의 성격이 이를 설명한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먼저 역사적으로 보아서 한국에 있어 역시 교회는 일본에서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과거에 있어서 선교사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외세의 침입자들로 간주되었는데 반하여 2차 대전 이후에는 난경(難境)에 있어 필요한 벗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한국을 위해서는 2차 대전 종결은 일본인들에 대해서와 같이 패배(敗北)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일본인들의 지배에서의 해방의 기쁨을 가져온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일본의 경우와 같이 정신적 공백기를 조성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 분위기 속에 새로운 정신세계로의 문을 열게 하였다.
「가톨리시즘」은 한국인들의 생각에는 초대 주한(駐韓) 교황사절이었고 6.25사변시 이북공산군에게 납치되어 「죽음의 행진」 중에 순교한 미국출신 파트릭·번 주교와, 그같은 형극의 길을 살아남아 전쟁후 다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춘천교구장 토마스·퀸란 주교 및 다른 선교사들의 모습과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또 NCWC(가톨릭구제회)는 큰 곤경에 빠져있는 한국인들을 도우기 위해 거대한 구제사업을 수행해왔다. 교회는 병원·진료소·학교 등을 세웠고 이것을 운영하는 신부·수녀·수사들도 결코 적지는 않았다.
이같이 그리스도교는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서양의 정복자를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국인에게 해방을 준자 또한 후에는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침략전에 있어서 그것을 방어해주는 자와 관련돼 있다.
북한공산 침략위험을 막기 위해 일반적인 빈곤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군사력을 유지 하는데 요구되는 정신 훈련과 공통된 회생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이미 충실과 희생위에 세워진 「가톨리시즘」에 대한 호의적인 경향을 마련해 주고 있다.
한국인의 성격이 이같이 충실과 희생을 숭상하는 특징은 1902년까지 계속된 가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1802년에 불과 1만명이었던 신자수가 1910년에 7만3천1백57명으로 상승한 것으로도 잘 증명되고 있다.
더 놀라운일은 1945년 이래의 개종자증가이다. 1957~1961년까지 4년간 신자수는 28만5천9백58명에서 48만7천9백58명으로 20만2천명이 증가했다.
일본의 인구는 한국의 4배가되나 이같은 기간에 불과 5만9천명만이 증가하였다.
성소율(聖所率)은 일본만큼 높지는않으나 현저히 상승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일본에서는 점차로 줄어든다. 오늘날 한국에서 일하는 6백95명의 사제들 중 3백62명이 한국인이요. 3백33명이 외국인이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다른나라서 이미 선교한 경험이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은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 힘든 포교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다른데서와 같이 전력을 다하여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종자수 증가에 관한한 다른 곳에서와 같은 위로를 받지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일하는 이들은 결코 불평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은 간접적인 사도적 활동이 일본에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창가학회(創價學會)를 제외하고는 도처에서 교회에 대한 선의가 드러나고 있음을 봄으로 기쁘게 선교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더 많은 개종지를 내고있으나 냉담자수도 역시 많다. 이것은 한국에서 일하는 일부 신부들에 의하면 주로 소수의 「밀가루신자」 때문이라고 한다…
NC통신이 얻은 종합적 결론은 한국에서 더 빠르고 일본에 있어 완만하기는 하나-두 나라의 가톨릭교회가 전진하고 있다는데는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이 양국에 있어 가톨릭교회는 혹독한 박해를 겪었다.
그러나 교회는 굳건히 서있었고 무수한 순교자를 내었다. 이같은 순교자들의 피에서 어느날 무르익은 결실의 추수철이 올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브라이슨 神父 記(NC 特派員 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