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알려지지 않은 교회사] 韓國(한국) 最初(최초)의 방지거 3會員(회원) 吳基先(오기선) 神父(신부)
月報(월보)까지 發刊(발간)
29年前(년전) 4百餘(백여) 會員(회원)으로 시작
日帝(일제)때는 反戰思想團體(반전사상단체)로 監視(감시)받고
발행일1966-02-06 [제505호, 4면]
지금으로부터 29년전인 1937년 서울 혜화동본당 신부였던 오기선 신부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방지거 제3회 회원이 되었다.
우리의 신앙은 마치 물과 같은 것이어서 그릇에 담기에 따라서 여러 모양을 나타낸다. 큰 그릇에 담긴 신앙, 작은 그릇에 담긴 신앙, 작은 그릇에 만족하는 신앙도 있다. 그러나 보다 큰 것을 보다 더 알찬 것을 바라는 신앙도 있다. 누구든지 현재의 자기 신앙의 열의에 만족하는 사람은 전진할 가망이 없는 사람이다. 죽는 순간까지 엄하게 자신에게 채찍질을 한 성인들을 우리는 본다.
방지거 3회란 13세기의 위대한 성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방지거)를 본받는데 있다. 방지거회에는 세가족이 있는데 「미노테스」(소형제회) 「까푸치니」 「꼰벤뚜알」이다.
현재 한국에는 「미노레스」와 「꼰벤뚜알」만이 있다.
방지거 3회에는 교황을 비롯하여 주교 성직자 모두 입회할 수 있지만 특히 재속수도회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일반 신자들이 세속생활을 하면서 자기성화 나아가서 복음전파의 십자군이 되는데 도움을 주는 수도단체이다.
29년전 오기선 신부가 처음으로 방지거 3회 회원이 되면서 생각한 것은 당시 일제의 심한 압박 밑에서 괴로움을 받고 있는 한국의 특히 지성인들을 3회에 입회시킴으로 그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지성인들로 구성된 단체로 또한 지성인들을 상대한 전교에 힘써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가닥의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1937년에 내한한 가나다 관구의 데귀에 신부와 벨로스 신부는 1939년 12월 15일에 드디어 대전에 세운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낙성식을 보게되었으며 오신부의 뜻을 좋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1937년 9월 28일에 입회한 오신부는 1년후인 1938년 허워식을 하였으며 적극 일을 추진시켜서 혜화동에 방지거 3회 형제회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처음에 40여명이 입회하였으며 대주교님을 비롯한 장면씨 부부, 박병래씨 부부, 한창우씨 부부, 유홍렬씨 부부, 김재완씨 부부, 조중국(납치되었음)씨 부부, 장기빈씨 부부, 장발씨 부부 등이었으며 전국적으로 4백여명의 회원을 가지게 되었다.
1932년에 서품되어 5년되던 해인 오신부, 천주님의 사업을 위한 의욕은 난관에 굽히는 일 없이 무서웁게 타오를 뿐이었다.
본당일을 맡아보는 한편 3회원의 지도를 해나갔다. 당시 서울교구장이었던 원주교님이 지정해주신 성분도성당(지금의 혜화동성당)에서 매달 첫주일 하오 3시에 정기적인 회합을 가졌으며 지방회원을 비롯한 자세한 지도는 월보(月報)를 통해서 하고 있었는데 한글타자기로 오신부님이 직접 찍어서 4백부를 만들었는데 김재완씨의 희생적인 협조가 컸다는 것, 월보 첫머리에는 언제나 평화 · 행복이란 글귀로 시작했는데 한번은 월보가 전남 광주에서 말썽이 생겼다고 한다. 제2차대전이 한참일 때 그만 오신부는 반전논자(反戰論者)로 낙인을 찍히우고 서울로 체포하러 왔으나 그때 오신부는 신의주에 있을때였다. 다행히 서울 중부서의 종교담당 형사가 오신부를 잘 알고 있었던 형사인데 잘 타일러서 체포하러왔던 형사를 돌려보내게 되었음을 얼만후에야 오신부는 알게되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가톨릭신부들을 감시하던 그들은 방지거 3회 단체운영을 물론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여러모로 트집을 잡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우울증에 걸린 한국의 당시 지성인들이 활발하게 가톨릭의 투사가 되어서 대중 속에 뚫고 들어가서 일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1937년에 내한했던 데귀에, 벨로스 두 신부도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일하면서도 당시의 실정이 그랬듯이 일본 관구장의 지시를 일일이 받아야 했었다.
작년 내한한 총장대리 아뽈리나리스 신부는 한국의 방지거 3가족회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일하게 되었다. 오늘날엔 전국에 2천여명의 회원을 가진 3회이며 나날이 어려워지는 세속생활에서 방지거 3회원들이 주보성인의 교훈을 생활화 하고 이웃과 겨레에 전파시키길 오신부는 소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