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國(조국) 언제나 나의 祖國(조국) - 南美行(남미행) 가톨릭移民國(이민국) 航海記(항해기) ③
변덕 심한 바다의 表情(표정) 속에 우리는 외톨박이
航海(항해)부터가 苦鬪(고투) · 試鍊(시련)의 連續(연속)
김치 등 食性(식성) 맞게 調理(조리)코자 自進(자진) 婦女奉仕班(부녀봉사반)도 組織(조직)
배 안에서 첫 主日(주일)을 맞고 不夜城(불랴성) 香港(향항) 夜景(야경)에 황홀
발행일1966-02-06 [제505호, 4면]
【11월 20일】 물, 하늘 그리고 우리를 실은 이 배, 온통 세상은 이 세가지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가도 가도 부질없이 움직이는 바다 그 위로 굼쩍않는 하늘, 파도는 거세다.
또 바다는 가다금 회색빛으로 우중충하게 흐려 불길한 인상마저 준다. 다시 뽀얗게 개였다가 컴컴하게 흐린다. 동그란 선창밖으로 수평선이 쑥 올라왔다간 다시 쑥 내려간다. 아랫층에서 배멀미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이젠 최후의 수단으로 서인지 갑판으로 올라와 파도와 씨름한다. 난간을 놓기만 하면 아이구! 소리치며 쓸어질듯 비틀거린다.
넘어지지 않고 몸의 균형을 바로 잡으려면 「지그자그」형으로 요령껏 왔다갔다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오히려 즐겁기만 하다. 『어지러워, 어지러워』하면서도 곧잘 뛰어논다. 갑판은 아이들 빼놓고는 대부분이 시무룩하다. 억지로 배멀미를 참느라고 애쓰는 사람도 보인다. 갑판의 한쪽에 앉았노라면 반대쪽 수평선이 또 하늘만큼 치솟았다가 땅으로 말려들듯 사라진다. 오늘은 대부분 밥맛을 잃어 남는게 태반이다. 게다가 숙주나물 같은 것은 도무지 간이 되어 있질 않고 기름만 잔뜩 넣어 속이 매슥껍다. 김치도 얄궃게 버무린 생것이라 더구나 이런날엔 입에 당길리가 없다.
생각다 못해 주부들은 부녀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저녁7시, 2층 식당에서 53세대의 주부 및 그대리로 나온 사람들은 조일행씨 부인을 회장으로 선출하고 두가지를 의논했다. 첫째는 청소문제, 둘째는 식사문제였는데 청소문제에 있어서는 「디저트」로 주는 과실들을 식탁에서 먹도록 지도하라는 것이다.
먹으면서 다니거나 갑판 이곳 저곳에 껍질이나 속 등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만부득할 경우라도 휴지나 껍질은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그리고 각자 자기 침소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식사 전후 중국선원을 돕자는 것이다. 식사문제에 있어서는 아침 일찍 누구나 자발적으로 요리를 돕는데 찬거리들을 다듬고 깎고 씻는 일과, 도라지 나물 등 한국 고유의 반찬들은 간맞추는거나 조리하는 것을 직접 가르쳐주자는 것, 아울러 김치는 몇명씩 「구릅」이 되어 간을 맞추어서 한국식 김치, 깍두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 등이다. 중국선원들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뜨거운 차와 과자를 내어왔다. 그동안 배멀미로 시달리던 사람도 거의 회복하고 각 침소는 다시 즐거운 이야기와 웃음소리로 화기에 넘친다.
【11월 21일】 처음 맞이하는 주일 가톨릭신자와 프로테스탄 신자들의 예배가 각각 있었다. 날씨는 괘청, 「찌짜랑카」호는 순풍에 유리판 같은 바다 위를 흘러간다.
저녁 7시30분, 드디어 「홍콩」에 도착하였다. 울긋 불긋한 불빛이 해안선을 따라 한없이 뻗쳐있는데 한참만에 다시보니 좌우가 다 불꽃 바다를 이루며 우리배를 휩싸고 있어 어느쪽으로 해서 이 불야성 속에 들어오게 됐는지 도무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배마다 돛꼭대기로부터 전등을 달아 배의 앞뒤쪽으로 금출 내리듯 드리우고, 이것은 다시 배전을 따라 장식하고 잇는데 부드러운 곡선으로 된 삼각형의 보석으로 그려진 배는 샛까만 밤바다를 배경으로 왕관처럼 빛난다.
넓적하고 하얗고 창을 다 열어잿긴 2층배들이 부지런히 왔다갓다 하는데 심지어 「보오트」같이 조그만 배도 불꽃들을 머리에 달고 있다.
모두들 넑을 잃고 바라다 보았다. 언제들 저렇게 잘 차려놓고 살고들 있는가. 하이든의 수상음악이라도 들릴듯한 이곳 배들은 인어공주를 맞아 으리으리한 향연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밤이라 남자 어른들에 한해서 외출이 허용되었다.
도적이 많고 깡패가 많다고 하여 청년들은 입구 입구에 지켜서 있고 어머니들은 「트렁크」들을 단속했다. 대림대가 둘중 하나가 고장나 대림질 할 사람이 줄로 늘어섰다.
이 배는 전압수가 높아 보통 다리미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모두들 내일의 외출을 기대하여 가슴이 부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