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8) 自我의 價値 ④
발행일1965-05-30 [제472호, 4면]
「미스터」배의 부친과 만날 시간은 아직 한시간 가량 남았으므로 우리는 조그마한 다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다방에서 「미스터」배는 어딘지 초조한 기색이 서리었다.
『「블라우스」의 깃이 좀 비뚤어졌어, 똑바로 해요』
그의 손이, 내 윗가슴켠에 닿을려고 할때 나는 그의 손을 피하는 의미에서 내손으로 얼핏 「블라우스」를 붙잡았다.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 이렇게 「디자인]이 된거야요?』
얼핏보면 대각선이 휘인것 같은데 일부러 주의를 끌기 위한 「디자인」의 「무드」였다.
『아버지는 상당히 고루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미스」양의 집안 내용을 묻거든, 전에는 크게 사업을 했었는데 실패를 했다고 말하세요. 산동리 움막에 산다는 것은 말하지 마세요.』
「미스터」배는 볼상과는 딴판으로 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다방을 나섰는데 약속한 장소는 요즘 새로 지은 Y「호텔」의 식당이라 하였다. Y「호텔」의 건물은 주로 외국손님 상대의 고급 「호텔」로서 나도 그 앞을 지나다가 무슨 건물인가하고 우러러보며 그 「스마트」한 차림이 인상에 남았었다. 걸어서 한 오분 도정이었으므로 우리 걸었는데 「호텔」이 가까와 지자 나도 약간 가슴속에 파동을 느끼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예복 같은 흑색 「유니폼」에 하얀 「와이샤스」에 검정나비 「넥타이」를 맨, 말쑥하게 생긴 「보이」가 정중히 『어서오십시요』를 외우며 맞아들인다.
「미스터」배는 두리번거리더니 바른편 맨구석 「박스」를 눈짓하며 가자고 한다.
거기에는 얼굴이 까마작하고 안경쓴 뚱뚱한 중노인이 혼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미스터」배는 그 앞에 이르자 굽실하고, 나를 소개했다.
『말씀드리던 「미스」양 이야요』
가까이보니 「미스터」배의 아버지는 늙은호박 껍질같이 우굴퉁한 피부를 하고 있었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던 양 벗고서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작은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며 한참 주시한다. 마치 검사 받으러온 무슨 상품이나 감정하는 듯한 눈초리었다.
「미스터」배와 나는 네모난 「테블」의 한 모퉁이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걸상에 앉을때, 긴장도 확 풀리었다. 내가 오면서 예상했던 「미스터」배의 부친의 초상은 세련되고 어딘지 날카로운 말쑥한 신사였었는데, 눈앞에 만나본 인상은 구청이나 동회사무소에서 흔히 보는 늙은 서기 같았다. 「넥타이」도 과히 빛이 안나는 퇴색한 회색에다 「와이샤쓰」도 어딘지 때가 묻어보였다. 양복도 꽤 오래 입은 것이었다. 키는 나보다 작은 양 좌고가 얕고, 배와 허리가 퍼져 몸집은 마치 옹기 항아리를 연상케 했다.
(이 옹기씨가 그렇게 돈이 많은가?)
나는 혼자 속으로 의아해 했다.
옹기씨의 표정은 한동안 굳은 채로 나를 은근히 흘긋 살피었는데, 음식이 날려오고, 맥주 한잔이 들어가자, 딴 사람 같이 누그러지며 다변해 졌다.
『「미스」양은 참 예뻐! 「미스」양 같은 딸이 하나 있었다면 좋겠어! 자식이라고는 이녀석 하나뿐이야…』
옹기씨의 그 말투는 자식을 얕잡아보는 듯했다.
음식 먹는 태도도 자기식욕것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품이 소위 큰 회사의 사장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무엇하지?』
옹기씨는 입가에 미소를 담고 묻는다.
『아버지는 병환으로 놀고 계서요.』
『전에는 무엇허셨어?』
『…조그맣게 장사를 하시다가 실패하셨어요.』
「미스터」배가 눈찌검을 한다.
『지금 사는 곳은 어디야?』
『××동산 동리야요. 조그만 움막 같은 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어요.』
나는 어딘지 텁텁해 보이는 옹기씨에게 감추지 않고 사실대로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전에는 우리집 같은 큰 집에서 살았는데, 사업에 실패한 뒤 임시로 공기 맑은 곳을 찾아, 산동리로 이사한 거래요. 아버지 병이 나으면 곧 집이라도 새로 지을 계획이래요!』
「미스터」배가 엉뚱하게 둘러 붙인다.
옹기씨는 흘긋 자식 한번 쳐다보았을뿐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럼, 「미스」양이 벌어서 사나?』 『네에』
『결혼하면 아버지는 어떻게 허나?』
『그게 걱정이야요』
『………………』
옹기씨는 「글라스」의 맥주를 한모금 마시더니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버지까지 모실수 있는 곳에 결혼을 해야겠군?』 『병드신 아버지를, 모르는척 할수는 없을 거야요?』 『음』, 옹기씨는 굵은 목에 밭게 붙은 턱을 끄덕했다.
『「미스」양은 꼭 서양 사람같이 생겼군? 내가 근시가 되어 잘못 보는지는 모르겠으나 눈도 좀 파르스럼한것 같애?』 『반은 미국사람이야요.』 『아니 그럼 어머니가?』 『제 출생은 좀 복잡한가 봐요.』
나는 자세한 사연을 풀어내기가 귀찮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럼 지금의 아버지는 친아버지 아닌가?』
『저를 갓났을때부터 길렀으니 친아버지나 다름 없어요』
『음………』
옹기씨는 납득이 가는듯이 또한 빈턱을 끄덕거렸다.
「미스터」배는 매우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감추지 않고 풀어놓은 것이 후련했다.
한편으로는 아픈데에 손자국이 닿은 것같이 쩌릿한 느낌도 있었다.
『…「미스」양, 내딸 되지 않겠어?』
옹기씨는 두툼한 입술에고 소박한 미소를 담고 눈을 좁힌다.
『…나도 말하자면 고아나 같았어. 아버지는 내가 나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내가 열살때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야! 친척집을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눈치밥 먹으며 고생 많이 하고 자랐어! 그래서 내가 부모없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내고 있어, 딴데는 돈을 안쓰지만 고아원만은 가끔 옷이나 먹을 것을 보내지! 내가 오늘날 이만큼 성공한 것은 피나게 고생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우리 이녀석은 학비에 걱정이 없도록 대주었건만 공부하나 제대로 못했으니 정신이 틀려먹었어…』 옹기씨의 다감하던 얼굴이 아들에게는 굳은 표정으로 변했다. 『…아이, 아버지는 「미스」양 앞에서 그런 얘기까지 할건 뭐야요. 저한테 전무나 상무 자리만 주어보세요. 잘할테니까?』
『…내가 보긴 아직 멀었다. 돈만 쓰려고 하지, 피나게 돈 벌 궁리를 좀 해 보란 말야! 중역자리는 이르다. 그 회사에서 한 삼년 더 있거라!』 「미스터」배의 얼굴은 삭 변하며 원한에 찬 시선으로 옹기씨를 바라보았다.
옹기씨는 자식을 완전히 무시한 태도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부잣집 딸이라고 반듯이 좋아하지 않아! 「미스」양 한데는 동정이 가…그리고, 솔직한 「미스」양의 말이 맘에 들었어, 난 솔직하지 않은 사람은 싫어?』하며, 옹기씨는 흘긋 그의 아들을 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