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소집한 고(故) 요안 23세 교황은 1960년 성신강림절에 공의회에 대한 그의 「비젼」을 표명하여 이는 교회와 세계를 위해 「새로운」 성신강림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공의회가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하여 줄 것이고 또한 이를 통해 「천주의 백성」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안에 더욱 더 사랑과 진리로써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였다. 그리하여 교황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문전에는 「에페소」 서한의 다음 말씀 즉 『오직 우리는 진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안에로 사랑으로 말미암아 만사에 있어 성장하여야 하느니라』(에페소 4장 15절)를 써붙여야한다고 말하였다.
이같은 공의회는 이미 시작돼있고 요안 23세 교황이 확신한 그대로 세계교회는 과연 「새로운 성신강림」을 맞이하고 있다. 이것은 본지(本紙)가 연재하고 있는 각국 교회의 쇄신의 양상을 봄으로써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교회,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한국교회역시 「새로운 성신강림」을 맞이하고 있으며 공의회가 제시한 현신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설문(設問)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의미의 긍정적인 답을 한국교회안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국어사용 미사를 비롯한 전례개혁, 교리문답, 성서번역 등의 과업이-비록 아직은 준비단계에 불과할지라도-진행중에 있고 특히 「에꾸메니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타 교파와의 관계에 있어 예상외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조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한국교회 내에서도 공의회 이래 이 공의회를 통한 변화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교회가 공의회를 통해 「새로운 성신강림」을 맞이했다고 장담하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부족함을 절감치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다른 나라 교회에서 볼수 있는 뚜렷한 쇄신의 기운을 우리나라 교회 안에서는 아직 볼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더 그것은 전체교회의 움직임은 물론 그 지체인 각 교구, 본당, 「액숀」 단체의 움직임도 정신적으로 공의회전이나 지금이나 하등의 질적 변화를 보이지 않고 너무나도 구태의연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것으로, 또한 본질적인 문제로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한국교회에는 상하(上下)를 불문코 여전히 교회의식(敎會意識)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조직으로서의 「액숀」단체가 있고 본당이 있고 교구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은 불행히도 개인주의, 개체주의로 지배되고 있다. 언제든지 나의 구령, 나의 본당, 나의 교구가 앞서고 그런 관념이 또한 전체를 좌우하고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찾아보기가 극히 힘들다. 심지어는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가 천주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제헌하고 우리가 받는다』는 원리로서 분명히 공동체적으로 거행되고 표현돼야할 전례에 있어까지-오늘날의 전례개혁이 모국어 사용등으로 이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그 본질인 「우리」라는 의식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환언하면 전례개혁의 기본정신이요, 오늘날의 교회가 공의회를 통해 가장 강조하는 교회의식 즉 「보편적사제직」에 대한 각성이 전제돼있지 않다. 따라서 한국교회에 대하여는 공의회를 통한 여하한 변화도 질적인 것이 아니고 형식과 규정의 변화에 불과하다. 어제까지 「라띤」말로 했던것을 오늘부터는 한국말로 하게되었다는 식으로 하나의 형식이 다른 형식으로 대치된것에 불과하다. 전례에 있어 이러할진데 사목을 비롯하여 모든 교회활동에 있어 공의회에서 밝힌 「천주의 백성」으로서의 교회관이라든가 「주교공동성리」원리가 반영되리라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교회의 교회의식(敎會意識)의 결핍은 다시 깊이 그 영성(靈性)의 빈곤에 연유되고 있다. 도대체 그것을 함양할 신학적 뒷받침이 여기 우리안에서는 전무(全無)하다. 그 결함을 10분지 1이라도 보충해 보려고 계획중이던 성직자들을 위한 신학 잡지도 그런 안이었다는 말을 들은지 이미 1년이 넘는데도 유산이 되었는지 그이상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이같이하여 오늘날 세계 다른곳에서는 각국 교회가 새로운 각성으로 공의회가 제시한 길에 들어서 벅차게 쇄신에 매진하고 있는데도 한국교회만은 현재에 대한 각성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여전히 그 정신적 공백기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리를 가르치고 영세와 기타 성사를 준다는 극히 기본적인 구원의 활동이 없다면 한국교회란 하나의 인간적 종교단체이지 성신이 임재(臨在)하고 성신이 진리와 사랑으로써 그리스도안에 생활케하며 성장시켜가는 교회라고는 도저히 볼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빈곤하고 영적이로 병들어있다.
누구인가가 말한대로 천주성신이 안계신다면 이교회는 오래전에 쇠퇴되고 망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정신적 빈곤과 그 병상은 심각한 것이다. 어디서보다도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에 의한 쇄신이 요구되는 곳이 우리의 한국교회이다. 어디서보다도 성신의 빛과 그의 「카리스마」(특은)가 요구되는 곳이 한국교회이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열렬히 우리는 천주성신께 기구해야한다. 성신께서 우리를 진리로써 인도해주시고 우리를 당신 사랑으로 불태워 주시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이 나라안에 보내진 「천주의 백성」-교회-다웁게 새롭게 하여 주시옵도록 우리는 간절히 빌어야 한다. 『성신이여 임하소서! 믿는자들의 마음을 충만케하시며 저들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강림축일 「알렐루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