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시즘은 本質的(본질적)으로 無神論的(무신론적)인가………
宗敎理念(종교이념)-絶對的(절대적) 未來(미래) 믿는 크리스티아니즘 未來(미래)에 目的(목적)을 둔 맑스 主義(주의)
第(제)1次(차) 對話(대화)가 發掘(발굴)한 새 事實(사실)
【KP 本社綜合】 그리스도교 신학과 현대문명의 제문제와의 관계를 깊이 연구하기위해 설립된 독일 「바오로회」는 지난 5월 1일부터 3일까지만 3일간 오스트리아 「살쯔불글」에서 「그리스도교와 맑시즘」이란 주제하에 가톨릭·프로테스탄을 망라한 저명한 신학자들과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들간의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 그리스도교와 「맑스」주의의 대화는 과거 수년간 이태리 및 불란서 사상계에 있었던 산발적인 접촉을 더 구체화시킨 것이라고 볼수있으며 주최측의 의도로서는 소련을 제외한 철의 장막내의 모든 국가로부터의 공산주의이론가들을 초빙함으로 본격적인 단계로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주최측의 의도는 유고슬라비아와 불가리아를 제외한 동(東) 구라파대표들의 모두가 개회직전에 참석을 거부함으로 실현을 보지못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서구(西歐) 세계내의 과거대화의 연장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모임은 결코 의미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그리스도교와 「맑시즘」의 장차의 더 깊은 대화를 위해 하나의 발판은 충분히 될수 있는 것이었다. 양편다 지적수준이 높은 학자들로써 대표되어있었으며 예수회회원이고 저명한 신학자인칼·라너신부, 역시 동회소속으로 「맑시즘」에 정통한 구스타브·A·벨터 신부 장·Y·칼베스 신부를 비롯하여 요안네스·멜쯔 신부 「베르린」의 신학자 말셀·레딩 교수 등이 그리스도교 측을 대변하였고 상대방인 「맑스」주의자들로서는 불란서의 저명한 공산주의 이론가 로제·가로디 교수, 이태리공산당원인 루치오·롬발디-라디체 교수 등이었다.
이 「심포지움」에서 해명돼야할 첫 문제 「맑시즘」은 과연 그 이론에 있어 본질적으로 무신론적이나 혹은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베르린」의 신학자, 말셀·레딩은 자기는 「맑시즘」을 유물적 역사법칙으로 보며 따라서 「맑시즘」의 본질이 반드시 무신론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 견해에는 「살쯔불그」 출신인 젊은 과학도 바인갈트너 박사도 동조했으며 그는 「맑스」주의가 그 대변인들에 의해 강조되는 바와같이 하나의 과학이고 결코 속화된 신이 아닐진데 무신론적일수는 없다. 왜냐하면 순수과학은 그 바탕에 있어 신(神)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하여 참석한 「맑스」주의자들은 강력히 반박하면서 도대체 「맑시즘」이 종교를 부정함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따라서 무신론적이냐 유신론적이냐와 같이 부정된 상대자 즉 종교에 대립되어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불란서의 이름난 「맑스」 주의자 가로디 교수는 이점을 강조하고 「맑스」주의적 무신론은 17세기 18세기의 무신론동향과는 달리 신(神)의 부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을 긍정함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가로디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맑스」주의적 무신론은 전인간상(全人間像)에서 나온 것이니 만큼 그의 장래에 있어서의 완성된 인간은 인간이 그 역사안에 얻은 모든 종교적가치까지도 긍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참석한 대부분의 「맑스」 학도들은 인간의 종교의식을 긍정하는 견해를 표명하였는데 이같은 현대 「맑스」주의자들의 태도는 맑스자신이나 엥겔스·레닌 등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가로디 교수는 「맑스」주의 「휴메니즘」이 인간을 내적으로 빈곤하게 만들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답하여 「맑시즘」은 종교적인것까지 포함한 인간의 여하한 본질적 차원도 포기하지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세계는 「맑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블로흐가 동경한 신(神) 없는 신국(神國)을 이 지상에 이룩하는 것이다.
끝내 일치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라너 및 멜쯔 신부가 전개한 「미래의 신학」은 이번 「심포지움」 동안 「맑스」주의자들과의 흥미있는 접촉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래」라는 것은 「맑스」주의적 무신론이 인정하는 유일한 초월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라너 신부는 그리스도교를 정의하여 이는 『절대적인 미래의 종교이다』고 하였다. 따라서 현세적 가변적인 미래와는 구별되는 것이며 인간이 스스로 목적으로 정하고 계획하고 만들어내는 미래는 하나의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으로 거부한다고 말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살쯔불그」에서는 현재 사회가 다원적(多元的)인 것임을, 환언하면 어떤 규범이던 획일적이요. 또한 궁극적인 절대규범으로는 인정돼있지않는 다원적 사회임을 솔직히 긍정하는 편이었다. 불란서계통은 이론적인 이유에서 이태리계통은 보다 더 경험과 실천의 이유에서 이같은 현실을 정하였으며 이태리공산당 소속인 롬발디·라디체 교수는 사회주의적 다원론(多元論)을 전개시켰다.
그리하여 아직은 「맑스」주의가 본질적으로 무신론적임을 인정치않을 수 없다할지라도 적어도 실천생활에 있어 종교적 현실을 긍정하는 태도변경이 아니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하나의 술책에 불과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체의 사회적 일원주의(一元主義)를 배격하였다.
이 「심포지움」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요. 또한 진정한 공명을 불러일으킨 것은 수명의 지도적 「맑스」주의 철학가들이- 문화유산의 가치평가에서- 그리스도교적 정신의 깊이를 이해하는 말을 하였을 때다. 그들의 이같은 논평에 언급된 그리스도교는 변증법적 역사관의 유물주의 교과서에서와 같이 시대에 뒤떨어진, 시들고 썩어가는 묵은 세대의 잔재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이 외치는 인간을 억압하는 무엇도 아니었다. 그들의 그리스도교 정신에 대한 이해는 그가 심정에까지 이르고 있었으며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화를 비로소 가능케 할수있는 그런 깊이에까지 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불란서 공대산주의 이론가 가로디 교수는 『우리의 대화는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상대방의 깊이를 이해하는데서 가능한 것이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현시점에 있어서의 「맑시즘」과 그리스도교의 대화는 어느 한편이 상대방을 설복시키고 그의 신념을 버리게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서로가 다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추상적 이론을 떠나 보다 더 현실의 인류세계의 문제를 위해 어떻게 협동할 수 있는가 모색해보는데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불란서 예수회회원이며 「맑스」주의에 정통한 장·Y·칼베즈 신부가 말하였듯이 「맑스」 주의자들이 그들의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인간생명까지 박탈해가면서까지 이를 강행하려고 든다면 그리스도교인으로서 그들과 협조할 가능성은 전무한 것이다. 「맑스」주의가, 특히 철의 장막뒤의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이념과는 다른 여하한 종교도 사상도 용납지않는 정책을 포기할 것인가? 여기에 대하여는 아무도 뚜렷한 전망을 가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