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錄(록) (16) 독일서의 수술
외국서 우리말 칭찬듣고
예방주사 덕택에 외국병원들 순례
발행일1966-02-13 [제506호, 3면]
『여권과 「달라」만 있으면 여행할 수 있다.』
과연 그렇다.
그러나 나는 두가지 조건이 더 갖추어야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외국어 - 영어든 불어든 간에 외국말을 능난하게 할줄아는, 외국말의 밑천이 필요했고 그다음은 앓지않을 건강의 자신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영어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독일어나 이딸리아 말은 더더군다나 깜깜하다.
거기에다가 마침내 병원신세까지 지게되었으니 「여권과 달라」만으로는 만족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들게된 것인지 모른다.
세계 언어학계에서 이름난 비교언어학교수 에카르트 박사를 만나는 날 몹시 나는 고열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고있었다.
우리말을 능난하게 말하는 이 에카르트 박사는 『한국의 한글이 세계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된 표음글자이고 가장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입니다. 헌데 한국의 완고한 선비들은 너무 쉬운글이라ㅣ고 해서 오히려 한글을 업신여기고 잘 쓰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하고 아쉬워했다.
나는 이같은 한국의 자랑거리를 「뮨헨」에 와서 외국인한테 듣고 「한글 전용」이 안되는 까닭도 지적받았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흐뭇하게 들으면서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왼쪽팔이 쑤셔들어온다.
한국에서 해외여행 떠날 때 예방주사 맞은 자리가 시뻘겋게 붓고 아파들어오는 것이었다.
한글의 우수성을 말해주는 바람에 아픔을 참고 그와의 모처럼의 기회를 아끼고 있었다.
에카르트 박사와 헤진뒤 나는 가톨릭에서 경영하는 종합병원으로 찾아갔다.
나를 안내해준 유학생 송창진씨(현재 한국은행 근무)는 외사의 말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통역해준다.
『진찰한 의사말씀이 그냥 치료는 힘들겠다는군요.』
나는 이말을 듣고 곧 의시가 말한 독일어가 『수술해야겠소』란 듯인 것을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수술을 꼭 해야만 된답니까?』
『그렇다는군뇨.』
『난생 처음 당해보는 수술을 하필이면 난생처름 해보는 외국여행중 하게될게 뭐람』
나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의사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대답만 기다린다.
『그럼 여행 「프로그람」을 변경시키고 입원실에 들어눕고 있어야 하나요?』
의사는 숙소에 가서 며칠만 쉬면서 치료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술 하기로 결심했다.
수술에 필요한 수속을 필했다.
『이 여행자의 경제능력이 어떻죠』하고 송씨한테 묻는다. 그는 『여비 정도 밖에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고 말한다.
마침내 무료 「서비스」의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나는 마치 대수술이나 하듯 큰 수술실로 인도되었다. 겁이 덜컥났다.
생사람을 꽁꽁 침대에 매놓는다. 두 팔과 두 다리도 꼼짝 못하도록 붙잡아 놓는다. 수술실의 각종 특수전등이 환히 켜진다.
갑자기 느껴졌다. 엄살 많은 나는 몇차례나 『수술이 아프지 않느냐』를 다짐하고 내몸을 의사에게 맡겼다. 마취 주사를 놓는 듯하더니 그만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고국의 하늘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명동을 헤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와 송씨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꽁꽁 묶였던 밧줄도 내몸에서 풀려져 있었고 왼쪽팔은 붕대에 감겨 있었다.
『아니, 수술 다 끝난거요?』
『네, 기분이 어떠슈』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었으나 머리는 아직 무거운듯 했다.
『맥주고장에 와서 이젠 맥주는 못마시게 됐군』
수술후에는 의례히 술을 못마시게 하는 의학상식을 아는체 뇌까리며 쓸쓸히 웃었다.
『수술 후의 첫 마디가 그래 맥주이야깁니까』 송씨도 웃었다.
나를 지키고 있던 독일의사가 무슨 이야기냐고 묻더니 『아니 왜 맥주를 못마셔요』하고 복음 같은 소릴 한다.
수술후에 맥주를 못마신다는 이야기가 의아스럽다는 눈치였다.
『수술 후에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안하는 독일 의사의 말이 그저 고맙게만 들리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 팔의 치료를 한국에 돌아올때까지 계속하는 우울한 여행자가 되고 말았다. 덕택으로 각국병원의 환자에게 대한 태도나 시료 풍속도 볼 수 있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