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人間(인간)] 生活(생활)한 말씀과 信仰(신앙)과 自發性(자발성)
발행일1966-02-13 [제506호, 4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겨자씨 하나를 그 밭에 심음과 같으니 이는 과연 모든 씨 중에 제일 작은 것이로되 자라면 모든 나물 중에 제일 크고 또한 나무같이 되어 온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두 13,31-32)
우리는 우주 역사상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개의 크나큰 혁명이 있었음을 알고있읍니다.
하나는 사람들을 우상숭배에서 천주님의 법을 지키는데로 이끌었고 또 하나는 천주님의 법에서 복음으로 이끌었읍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모든 이를 동요없는 천국으로 이끄는 그 길입니다. 이 두 혁명에 있어 공통하는 점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바꿔버리고 뒤집어 엎지 않았다는 그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강제를 당하지 않고 납득해서 따르게 되기 위함이었읍니다. 강압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자발적인 것은 오래 지속할 뿐더러 더 힘있는 보증을 갖는 법입니다. 강압의 힘은 타인의 강제에서 오지만 자발적인 힘은 내 자신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강제는 폭군의 것이지만 자발심은 천주님의 힘과 내 자신의 힘이 합치는 것입니다. 천주님께서는 아무리 훌륭한 혁명이라고 강압적으로 우리에게 닥치게 마련하시지 않고 다만 우리가 원해서 받아들이도록 조처하십니다. 어디까지나 교육자와 의사로서 우리에게 임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사정이 점차적으로 개선되도록 마련하십니다.
구약은 우상숭배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켜 아버지신 천주님을 그들에게 알리고 있읍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걸어야 하는 길을 명하고 있읍니다. 종교인으로서 알아야 하는 초보적인 지식과 실천해야 하는 윤리를 말하고 있읍니다. 천주님께 대해서도 성부만을 확실히 말하고 있을 뿐 성자에 대해서는 그저 얼마간 암시할 따름입니다. 신약이 성자를 확정적으로 제시했고 성신께 대해서도 언급했읍니다.
성신께서는 이제 우리 각자의 마음 속 깊이 생활하시며 우리의 모든 착한 행동의 원천으로 계시지만! 이렇게 점차적으로 계시하시며 사람의 생활을 고상하게 이끌으시는 것은 참으로 천주님의 자비심의 소치입니다.
성부께서 천주시라는 사실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데 성자가 천주시라는 것을 말했더라면 듣는 사람들의 정신에 혼란을 야기했었으리라는 것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성자께서 천주시란 사실이 아직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지 않았을 즈음에 성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거운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읍니다. 아직도 어린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음식을 내놓거나 눈이 지나치게 약한 사람에게 강한 광선을 비춤으로 역효과를 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구령에 필요한 진리도 보는 사람의 눈에 점차적으로 빛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나 여러분은 이제라도 이따금씩 또 계단적으로 마음 속에 울리는 천주님의 부드러운 호소를 귀담아 듣고 응분의 실천을 충분히 함으로 여러분 자신의 신앙생활을 굳세게 이끌어 여러분의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이 좋은 균형을 이루도록 애쓰셔야 하겠읍니다.
겨자씨 비유의 결론처럼 말씀하시는 「누룩」의 구실도 신자생활의 이런 균형 없이는 실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주님의 은혜에 순종하는 것만이 신자로서의 가장 숭고한 길이며 따라서 천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천주님의 은혜에 불충하고 태만하다면 우리는 그만큼 천주님께 셈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