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國(조국) 언제나 나의 祖國(조국) - 南美行(남미행) 가톨릭移民國(이민국) 航海記(항해기) ④
꿈같은 夜景(야경)도 낮이면 드러나는 中國人(중국인) 陋街(루가)
발행일1966-02-13 [제506호, 4면]
【11월 22일】 대표진(딴장 김갑인 총무 이선우 오유광 이정수)은 「홍콩」주재 총영사와 관원들을 예방하려 외출하고 다른 사람들은 가족동반하여 거리구경을 나갔다.
단장과 총무는 총영사 진필식 부영사 홍순영 영사 강석총 김영곤 제씨를 만나 단체 관광을 의논했으나 경비가 맞지않아 포기하였다.
밤풍경과는 달리 거리는 매우 좁고 중국인 거리는 더럽기 한이 없었다. 엊저녁 우리가 불꽃속에 싸여있었던 것 같은 이유는 원래 「홍콩」 한쪽이 대륙의 일단인 「구룡」이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있는게 특징인데 20여층의 건물들이 대개가 1·2층만 점포고 그위는 「아파트」 혹은 「호텔」형식으로 되어있어 으리으리한 「아파트」들은 빨래가 모두 창밖으로 나와있어 구저분하기 짝이없다. 우리들처럼 개개 집을 가지고 사는 것이 훨씬 양반같다.
그러나 원래 부호들은 「캐불카」가 올라 갈 수 있는 산속에 성처럼 하얀 저택을 세워놓고 있어 물까지 끌어올려 살고있으니 그 규모가 상당한 것 같다.
약간의 「쇼핑」을 하고 백화점 구경을 했다. 절반 이하로 에누리하라는 예비지식을 가지고 갔으나 큰 백화점, 일류 상점은 정찰제라고 딱 잡아뗀다.
「홍콩」에 있는 중국인들은 거부스름한 피부에 모두 좀 마른듯 하며 능숙한 영어를 한다. 어떤 단원은 중국대학생을 만났는데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어떻게 기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그들은 작년 「워크 캠프」로 한국에 온 일이 있다고 극진히 대접해 주러다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중국인의 안내를 받아 구경을 잘했다고 하는데 지식층들은 서구식 교육을 받아 양성적이고 순진한 것 같다.
어디서나 사람 사이의 친절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11월 23일】
잔치집 같이 흥청댄다. 오늘은 「구룡」쪽으로 가기로 했다. 이 배 회사인 「에배레트」에서 내어주는 「모터 보오트」를 타고 「구룡」으로 갓다. 어떤 분은 이제 음식점에 갓다가 시켜만 놓고 맛이 이상해서 먹지도 못했다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어느댁은 조그만 음식점으로 갔더니 그 주인이 어찌 무식한지 반자(飯字)를 써놓았더니만 큰 그릇에 그 맛없는 대만 쌀밥을 그득히 퍼다 놓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또 손짓발짓 해가며 반찬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며 겨우 잡채 모양으로 그리고 설명해서 가져다준 것이 돼지 기름살이 드문 드문 섞인 야채 볶음이어서 억지로 먹느라고 땀뺐다는 것이다.
또 곁에있던 한분은 바가지 쓴 이야기를 하여 모두 폭소를 자아냈다. 「메뉴」를 보니까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한국돈으로 4·5백원이 넘는 것이 보통이다.
생각끝에 제일 싼것으로 골랐더니 완두콩과 조그마한 새우를 볶아 메밀국수같은 것에 얹어 내온 것이 자그마치 값이 150원 꼴이다.
또 그릇도 조그만 종지 하나와 접시를 가져다 놓고 중국식 사기 「스픈」과 뼈 젓갈을 놓았는데 그 한요리를 어떻게 먹길래 이렇게 야단스러운가 하고는 공짜데 차나 많이 먹자고 차를 두잔이나 먹고 나오려니까 값이 50%나 더 비싸다.
왜냐고 했더니 차값과 「서비스」값이라나.
한국 곡찹이 간절하다. 「구룡」은 「홍콩」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돈돼 보인다. 「홍콩」처럼 이층 전차는 보이지 않으나 차들은 모두 일방통행으로 질주한다. 고층 건물의 번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어떻게 상품이 탐나는지 모르겠다. 이타리아 상인이 굽실굽실하며 들어오시라고 할땐 정말 어색했다. 「택시」는 기본요금이 50원꼴인데 「홍콩」보다 전반적으로 물건값이 싸다. 저렇게 좋은 것들을 턱특 돈 많이 주고 사 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다.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발 벗고 일하여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