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가 책으로 망친 영혼(靈魂)이었다가 책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 나였다. 그것은 천주께서 당신의 교회에 관한 책이 내 눈에 띄이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의 문을 두드렸더니 사실, 그 안에는 책이 무진장이었다. 그 가운데 겨우 내 실력이 닿는 몇권의 책이 나의 병약한 영혼에게 보약(補藥)이 되었다. 가난한 내 방에서 들고 나가는 한권의 책이 나의 친구에게도 약(藥)이 되고 있다.
나쁜 책보다 더 나쁜 것은 없고, 좋은 책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따라서 좋은 책의 저술(著述)과 출판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점에 가면 이전에 나를 망친 종류의 책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런 책은 참으로 읽음직하게 장정(裝幀)되어있다.
비싸도 사가는 젊은이들을 볼 때 딱하다. 그러나 출판자유의 사회에서 그것을 막을 수가 있나? 다행히 경쟁의 자유가 있으니 우리는 양서로써 악서를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양서는 그 내용만을 들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지 인쇄 삽화(揷畵) 특히 첫눈에 반하게 하는 장정까지 모조리 종합해서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을 죽이고 살리는 출판물이라는 무기의 위력이 포교의 일선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즈음에 그전과(戰果)를 올리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 교회의 출판사가 내가 알기에는 지방에 2개소 수도에 4개소가 있어(아마 더 있을는지도 모른다)각기 독특한 전통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포교를 위한 서적의 출판에는 각사에 공통한 것이 있을 것이다. 우선 출판물의 상대자들과 그들이 처하는 싯점이 동일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보기에 따라서는 달리 생각되는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동일한 공동(共同)의 적과 대치하여 공방전(攻防戰)이 계속되는 마당에서 연합군의 부대들 사이에 정보(情報)의 교환도 없고, 연락도 끊어지고, 명령계통도 없을때, 어떻게 될 것인가?)내가 오직 답답해야 이런 뻔한 소리를 할까보냐!) 내가 보건데 우리교회의 출판사들 사이에는 그러한 합동참모회의(合同參謀會議)가 단 한번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만 것이다.
뜻 깊은 금년부터는 이랬으면 어떠할까?
우선 일년에 한번 적어도 한 2·3일간 각 사의 책임자들이, 이런데 관심있는 이들을 참관인으로 초청하여 자유로운 회합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결의기관이 아니라 정보교환을 주로 하는 것이다. 각 사는 과거 일년간의 업적을 소개하는 동시에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검토하고 비판과 조언(助言)을 서로 청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일은 교회 내부는 물론이요, 외부 사회의 독서 실태와 과거 1년간의 출판개황(槪況)을 세밀히 검토하는 일이다. 적정(敵情)의 종합분석판단이다!
이런 저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각 사는 의외의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어떠한 종류의 양서를 내야 바로 그 문제의 악서와 대항할 수 있겠다는 작전계획이 설 것이다. 특히 각 사는 차년도 계획에 서로 중복을 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할 수 있다면 전국의 출판계를 항상 관찰하는 이를테면 사상관측소(思想觀測所)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러한 기구(機構)가 있으면 이제까지 모르고 지나오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출판될 서적 선택에 있어 주관에 빠짐을 면할 것이다.
또 원고료도 각 사 사이에 대차(大差)가 없어야 할 것이다. (현재는 대차가 있다!) 각 사 사이의 정당한 경쟁은 매우 유익하지만은 무용한 경쟁을 조절하기 위해서도 1년에 한번 우선 하루만이라도 모여 보면 어떠할까?
만일 그러한 일이 안될 경우라도 금년부터 각 사가 반드시 실행해야할 것은 일간(日刊)에의 광고다. 아뭏든 가톨릭문화를 교회안에 가두지 말자. 우리 출판물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시키자. 작년에(아마 우리 교회출판계서는 처음으로) 일간에 그 광고를 실린 대조사(大潮社)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金益鎭(문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