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NC】 이곳서 발간되는 한 예수회 정기간행물이 교종 바오로 6세의 소련, 중공 및 월맹지도자에게 보낸 「메시지」를 『정상적인 외교활동을 능가하는 대담한 「제스추어」』라고 규정했다. 성청과의 외교관계를 맺고있지 않으며 회답을 받을 가능성이 확실치도 않은 이들 나라에 교종은 거부될 가능성이 짙은데도 불구하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치빌다 가똘릭까」가 강조했다. 동 간행물은 『바오로 6세는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견해로는 세계평화는 가장 중대한 문제이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모험이 다 정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적 외교 방식을 제쳐놓고 그는 그리스도신자들에게 복음의 증인으로써 용감한 신부름군임을 보여 주었고 오직 복음적 유약성(柔弱性)이 가공할 세속 세력과 증오와 이기심을 굴복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바티깐 NC】 UN을 통한 월남전쟁의 중립국 협상에 관한 교종 바오로 6세의 제의를 지지하면서 「바티깐」 주간지 「옷세르바또레 델라도미니까」는 사설로써 베트남을 양단시킨 1954년 「즈네브」협정 「유엔」위원회에 의해 제의된 다른 협상안을 배척했다. 「옷세르바또레 로마노」의 논설위원이기도 한 알렉산드리니씨는 동 사설에서 1월 29일의 교종의 이태리 가톨릭신문기자 회견석상에서의 이 평화제의는 『이 수난기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인민들과 국가들을 구분하고 베트남전쟁은 평화를 갈망하는 인민들에 의해서가 아니고 『오직 두려움에서 공개적 전쟁을 억제하는데 불과한 강대국가들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했다.
동 분쟁 당사국가수뇌들에 호소한 교종의 호소는 『오직 사랑에 의한 것이지 정치적 편견에 의한 것이 아니다.』고 하고 『그러나 교종은 이 협상제의에 회답을 받았건 안받았건 그는 그의 노력을 중상하지 않았다.』고 알렉산드리니씨는 말했다. 이어 동씨는 1954년에 설정된 월남휴전 중립국 감시위원회에는 월남전 성격에 비추어 참된 의미의 중립적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국가가 가입해있으므로 공정한 협상의 중재자가 되기 힘든다고 말하고 교종의 평화호소는 동서 양진영중 어느 한편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중립국에 전달됐고 이들 중립국가들은 그들이 속하는 「유엔」의 지원아래 동서진영에 상관없이 진정한 평화수립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