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錄(록) (17) 로마의 이발사
기껏해야 10분에 세수 기름도 없고
빙빙 손님 돌리며 이발하는 구라파
발행일1966-02-20 [제507호, 3면]
콧수염을 단 「로마의 이발사」는 한가하기만 했다.
한국 사람들처럼 이발소를 부지런하게 이용하지 않는 구라파 사람들의 생리가 있다. 그래도 이태리 남자나 독일 남자나 할 것 없이 구미각국의 남자들은 머리가 텁수룩하거나 때나 먼지가 뽀얗게 낀 사람이 별로 눈에 안띈다.
이발소 출입은 자주 안하는데 얼굴의 수염은 언제나 말끔하다.
이발료가 비싼 탓도 있겠지만 의례히 얼굴 면도는 집에서 자작하는 생활풍속이 있다.
이발소에는 한달반 혹은 두달에 한번 정도로 가는듯 했다.
한산한 이발소에 들어가니 두 사람의 이발사가 환자를 기다리는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반겨준다.
머리를 감아주는 시동도 없다.
아무말 안하고 머리를 내 맡기면 의례히 머리만 가위질하고 머리밑 면도만 해준다.
미국서도 그러했지만 이발시간은 약10분정도다.
얼굴면도는 해달라고 해야만 해준다. 머리 감는 것도 해달라고 원해야 해준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한국식으로 골고루 다 했다가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1천원 돈은 지불해야 한다.
밑도리를 (調髮)하는 이발사는 가위를 손가락에 끼고 사각사각 머리를 다듬어 들어간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로마의 이발사」를 번갈아 감상하고 있던 나는 그의 돌연한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앉고있는 회전의자를 빙돌려 거울을 등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니 이사람이 손님을 이렇게 뱅뱅 돌리고 어떻걸 셈인가?』
나는 이들의 이발풍속을 의아롭게 생각하면서 눈치만을 보았다.
그랬더니 이 「로마」의 이발사는 발하나 움직이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뒤밑머리 오른쪽을 다듬고 난 다음 왼쪽을 다듬기 위해 이발사는 손님의 왼쪽으로 발을 옮겨서 깍아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의자를 빙글빙글 볼려 깎아주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거울없는 쪽을 향해 앉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발 움직이는 시간만큼 시간을 아끼자는 심사인듯 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이발기술은 자랑할만하다. 이발료가 국제가격보다(미국에서도 「팊」까지 합해서 머리 뒤를 다듬고 머리밑만 면도해주는데 보통 2「달라」니까 우리돈으로 5백40원꼴이 된다) 훨씬 싼것도 특색이다.
이발시간도 한시간 이상이나 한국에선 걸린다. 그러나 모두 바쁘기만한 선진국에서는 도대체 한가롭게 한시간 이상을 이발소에서 소비할 여유들이 없다.
이상하게도 실업자가 많은 나라일수록 이발시간이 긴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바쁜 사람을 위해서 뒤밑다듬기만 하는 이발소가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난다.
『머리도 감아 주시죠』하고 난 벙어리처럼 손짓말을 하면서 구라파의 이발과정을 철저히 감정하였다.
그는 곧 『씨』(네) 하면서 거울 앞에 있는 세면대에 엎드리라 한다.
이발한 그 의자에서 엎드렸더니 얼굴이나 목덜미에는 물 한방울 비누물 하나 묻지 않는 기술을 발휘하며 머리를 감아준다. 물론 세숫물을 따로 주지는 않는다.
기름도 발라 달란말 안하면 안발라주는 것쯤은 아는 터였다.
반대로 통하지 않는 이태리 말로 이발사가 『기름 바를가요?』 『세발할가요?』 할 때 멋도 모르고 『네』 『네』 하다가는 큰 바가지를 쓰게된다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
『기름도 발라주세요.』 나는 또 이발사가 좋아할 요구를 했다.
그는 치약처럼 생긴 「츄부」를 꾹 눌러 「부럿시」(솔)에다 바르고 난뒤 머리에 문지르고 나서 빗질을 해주는 것이었다.
머리털 질이 뻣뻣한 한국에서 흔히 보는 「포마드」가 그리 눈에도 안띄고 애용되지도 않는상 싶었다. 물기름 아니면 좀 된물기름을 사용한다. 더구나 머리 기름에 진한 냄새가 없는 것도 구라파나 미국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것 중의 하나다.
한국 사람들처럼 진한 향내를 머리에서 풍기는 「멋」(?)을 이해못하는 은은한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구라파의 이발 풍속을 익히느라고 엉뚱하게 아껴쓰던 「달라」를 그만 낭비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