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9) 自我의 價値 ⑤
발행일1965-06-06 [제473호, 4면]
「미스터」배의 안색은 매우 우울했다. 옹기씨는 아들의 표정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나하고만 이야기를 하였다. 화제는 은근히 아들에게 화살을 견주고 있었다.
『…자력으로 자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다듬어지고 자기의 가치가 이룩되는 거지 타력(他力)에 의존해서 한다름으로 꽃방석에 올라 앉아 볼려는 것은 틀린일이야. 인생은 제힘으로 애쓰는데 가치가 있지…』
이런 의미의 말을 한참 하더니 창황히 시계를 보고 일어선다.
『여덟시반에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나가 보아야겠어!』
옹기씨는 자리를 일어섰다. 일어선 키는 예상보다 더 작았으며, 목하나는 나보다 내려다 보였다.
몸집은 뚱뚱 하지만 「카운타」로 가는 걸음거리는 짐짓 민첩했다.
「호텔」을 나와 길목에서 헤어질때 옹기씨는 웃는 얼굴로 자기집에 놀라오라고 하였다.
아들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명동쪽으로 걸어서 사라졌다.
『다방에나 갑시다』 하고 「미스터」배는 비교적 명랑한 표정으로 가까운 어느 지하다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일요일 오전중은 대개 아버지가 집에 계시니, 이번주일에 오시구려. 아버지는 괴팍한 사람인데 「미스」양만은 맘에 든 모양이야!』
「미스터」배의 기색은 희망에 서린 밝은빛이 돌았다. 그러나 나는 이들 부자간의 분위기에 대해서 의아스러웠다.
외아들이라고 하면서 사랑도 정도 안보였었다.
(외아들이라하여 더 엄하게 키우려고 하는것이 아닐까?)
혼자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다방에 한시간쯤 앉아있는 동안 「미스터」배는 이런 부탁을 거듭한다.
『한 삼년간 지금 회사에 평사원으로 더 있으라고 하는데 이제는 일도 능하니 아버지회사에 데려다가 중역자리를 주도록 권하세요』
자기 힘으로하고 남의 힘에 기대지말라고 하던 옹기씨의 말이 귀속에서 뒤엉킨다.
사흘 후 일요일 오전 열시쯤 나는 「미스터」배의 집을 방문했다.
「미스터」배네 집의 정원은 대문께서 약 삼십도 가량 경사가 지고 군데군데 호양목으로 칸을지어 한쪽은 장미, 다른쪽은 일년생 화초! 또 구석편은 국화, 온실 시설도 있어 수백종의 진기하고 귀한 화초들이 가득히 있었다.
옹기씨는 허름한 남방샤쓰를 입고 장미밭 옆에 있는 연못가에 서서 물속의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스터」배를 따라 내가 그앞에 갈때까지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우두머니 서 있었다.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기도 했다.
『아버지 「미스」양이 왔어요.』
「미스터」배가 이렇게 말하자 옹기씨는 무슨 소린지 잘 못들었는지,
『뭐? 뭐 말이야?』 툭명스럽게 돌아보았다.
『미스양이 왔어요.』
그제서야, 옹기씨는 저만큼 떨어져 섰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고 「미스」양 왔군! 어서와!』
옹기씨의 얼굴은 밝게 펴진다.
연못가에 하늘색 「펜키」칠을 깨끗이 한 「벤취」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더니, 곧 오라고 하며, 이리저리 정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화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온실에서는 조그마한 난초 포기 하나를 두고 그것의 원산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꽃의 향기가 얼마나 기가막히다는것, 한국서는 이런 난초를 가진 사람이 자기하나 뿐일거라는것, 그리고 그 값이 얼마나 비싸다는 것 등을 거침없이 신나게 얘기를 하였다.
나는 화초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으므로 그의 얘기에 큰 흥미는 없었으나 흥미가 있는 듯이 귀를 기울였다. 장래 시아버님이 될지도 모르는 어른에 대한 예절보다는 하도 열심히 내 얼굴을 보며 설명을 하므로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난초는 대만이 원산지지요, 대만서도 귀한거죠?』
아들도 이렇게 말하며 한 몫 끼어 보았으나, 옹기씨는 상대도 안했다.
이 때, 온실 옆 흰 「레스」 「카텐」을 친 유리창문이 열리더니, 얼굴이 바싹 여원 초로의 부인이 내다보았다. 「미스터」배는 그 앞으로 가더니
『제가 말하던 「미스」양이 야요…』하며 나를 소개했다.
부인은 고통에 시달린 표정에 겨울날 저녁햇살 같은 흐미한 미소로 나를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편찮으신가요.』
『네, 벌써 삼년째 중풍으로 누워 계셔요… 동맥 경화로 바른쪽 수족을 못쓰기 때문에 노상 누워 계시죠.』
「미스터」배는 남의 일 같이 태연히 말 한다.
부인은 분명치 못한 발음으로 몇가지 나에게 묻더니… 담배에 불을 댕기고 섰는 남편을 흘긋 보며, 바스락 거리더니, 반지 「케스」를 꺼낸다.
부인은 자기 손으로 못열고, 아들보고 열라고 했다. 「미스터」배가 여니 조그마한 「다이야」가 놓인 백금반지였다. 「미스터」배는 내손을 붙들더니 멀거니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아첨하는 웃음을 던지며 끼어준다. 반지의 「사이즈」는 내 손가락에 비해서 좀 작았다.
『은방에 가서 손에 맞도록 해달래면 된다.』
『그건 웬 반지야?』
「미스터」 옹기는 담배 연기를 뻑뻑 내밀며 가까이 왔다.
『벌써 해 둔 거야요. 끼어 줄 손이 이제야 나타났군요…』
부인은 혼잣말 비슷이 대답했다.
『약혼 반지란 말인가?』
옹기씨의 말은 무뚝뚝했다.
『「미스」양은 당신의 마음에도 들었으니, 끄을것 없지않소?』
부인은 남편을 보지 않고 말했다.
옹기씨는 담배를 갈아 피며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더니, 저편 등나무 밑 그늘로 가버린다.
무언지 석연치 않은 그늘이 이 집안에 감돌고 있음을 나는 직각했다.
부자간에 서먹할뿐아니라 부부간에도 화목하지는 않은것 같았다.
『아버지를 좀 오시라고 그래라』
부인은 말했다. 아들은 총총걸음으로 등나무께로 가서 한동안 옥신 거리는듯이 보이더니 옹기씨를 데리고 왔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빨리 짝을지어 줍시다』
부인은 남편에게 시선을 견주고 말했다.
『…남의 회사에 고용을 시키지 말고 아버지 회사가 버젓한데 중역자리 왜 안 시키세요? 재산 두었다 무엇해요? 자식 호강이나 시켜줍시다』
『…결혼하는건 좋아 그러나 애비회사에 올 생각은 말아, 셋방이라도 얻어서 자력으로 일어날 궁리를 해라! 애비 주머니로 호강할 생각은 꿈에도 말아라』
옹기씨는 딱잘라 말하고 더 이상 댓구를 피하듯이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모자는 다 같이 불평에 가득찬 시선으로 「미스터」옹기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비러먹을꺼, 집에 불이라도 질러 버릴까보다.』
「미스터」배는 침을 탁 뱉으며 아버지 귀에 들릴만큼 말했다.
옹기씨는 못들은 척하고 저만큼 가더니 되돌아와서, 아들의 뺨을 쳤다.
『그따위 말을 할때는 내속이 아직 썩어있는 거다 나가! 나가서 네 힘으로 네가 원하는것을 구해 보란 말야, 부모는 자식을 키울 의무는 있어도 보양할 의무는 없다』
옹기씨는 시선을 돌려 부드러운 말로 나에게 말했다.
『서로 진정 사랑하면 오막살이라도 좋은거야! 제 힘으로 건설 하지 않고는 돈의 가치도 모르는거야! 내말이 틀렸나?』
그의 말은 화살 끝이 내 마음 복판에 와서 찌르는 힘이 있었다.
아버지의 돈에서 떨어진 「미스터」배는 아무가치 없는 남자였다. 내가 바란것도 그의 아버지의 재산과 위세였음을 나는 스스로 깊이 깨달았다. 나는 내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