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와 現代思潮(현대사조) - 墺地利(오지리) 쾌니히 樞機卿(추기경) 講演抄(강연초) (3)
하나의 世界指向(세계지향)
발행일1966-02-27 [제508호, 2면]
(承前) 이제 우리는 공의회에 서 이 큰 교회회의의 소망과 현대사조가 어떻게 서로 만나게 되는지 밝히기 위해 제기되었던 현대정신사조의 적극적인 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 하나의 世界化
①오늘날에는 전세계 여러 지역이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접근해가고 날로 더욱 하나의 세계화(世界化) 돼가고 있다. 이미 공의회 자체가 이같은 하나의 세계와 더욱 발전해가는 교류(交流)의 증표를 지니고 있었다.
인류는 그 잠재의식 속에 이같이 하나의 세계의 진행으로써 국가관과 문화권 간에 개재돼 있는 분쟁의 요소와 알역이 점차로 제거돼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의 다양성은 사라져가고 있으며 하나의 통일된 세계문명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있다. 비행사들이 기상(機上)에서 보내는 무전(無電)은 이미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과 서구(西歐) 세계의 문명은 「텔레비」, 영화, 화보 등을 통하여 더욱 더 널리 유포되어 외면적으로 나마 세계문명은 균등화 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의 발전은 다양성에서 단일화(單一化)로 세계를 강박하고 있다.
■ 多樣性 안의 一致
공의회는 이같은 단일화를 깊이 인식하고 또한 환영하였다. 또 이런 급진적 세계발전이 공의회 안에 있어서도 여러면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공의회는 동시에 다행스럽게도 「다양성 안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환언하면 다양성을 다양성대로 살리면서 그 모든 다양한 것이 내적으로 일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공의회에서 체험한 것 중 가장 큰 것의 하나는 교부들이 공의회 교회헌장에 공적으로 언명된 주교공동성에 의거하여 서로 깊이 알게된 것이다.
■ 主敎들과 神學者들의 共同作業
이와 동시에 공의회 종결에 있어 특히 지적해야 할 일은 주교들과 지도급의 저명한 신학자들이 공의회중에 함께 성장하고 풍부한 결실을 낳는 일치안에 서로 만나게 돼있는 사실이다. 과거 어느때에도 이번 공의회에서 만큼 많은 주교들과 전문가들 및 저명한 신학자들이 강연회와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자리를 같이 해본 일은 없었다. 이와 같은 풍성한 결실을 가져온 공동작업 -어떤 의미로 주교들과 신학자들의 생활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장래에 풍요한 축복을 가져오리라고 나는 확고히 믿어마지 않는다.
■ 神學敎理와 司牧의 融合
공의회에선느 또한 사목과 교리가 일체(一體)가 되었다. 지금가지의 사목은 반드시 신학교리로 침투돼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활력을 얻고 있었다 할 수 있으며 신학 역시 사목적인 면을 충분히 참작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번 공의회에서는 신학과 사목이 훌륭한 생활 및 활동공동체로 합치되었다고 확신한다. 이같은 조화는 무엇보다도 공의회 교리와 소망이 사목적인 배려에 의해 표명됨으로써 동시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 교수들이 공의회 전문위원으로서 서로 만나게 됨으로써 성취되었다.
■ 平和 渴望에 敎會 積極 參與
②오늘의 세계의 또 하나의 적극적인 정신세력은 보편적 평화갈망이다. 여러민족간의 상호의존성(相互依存性)과 연루(連累)가 증대되면 될 수록 또한 평화위협이 가공(可恐)스러워질수록 지상의 모든 민족의 평화갈망도 그만큼 증대돼가고 있다.
교회는 공의회에서 이같은 염원에 전적으로 또 진심으로 공명하고 이에 차여하였다. 제13의안 마지막 2개 장(章)에서 또한 「교회헌장」에서 교회는 이 평화염원과 평화유지의 필요성에 관하여 강력히 논술하였다. 공의회는 또한 하느님과의 화해(和解)가 인간상호간의 평화의 전제임을 천명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올바른 남김없는 인인애(隣人愛)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교종 성하(聖下)께서 공의회 정신 아래 깊은 겸손과 다른 민족의 문화와 그 전통에 대한 지대한 존경심을 지니고 행한 여행이 국제적인 큰 반향을 불러을이킨 것은 교종이 이같은 여행을 지배욕에서 하지 않았다는 그 이유만에서가 아니고 보다 더 오늘의 인류세계를 돕고 이에 봉사하기 위해 하였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국제연합에서 행한 그의 연설은 다른 어떤 정치가의 그것보다 더 큰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교종은 그 연설에서 전세계의 평화갈망을 여실히 표명했으며 세계평화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교종이 제시한 세계평화의 길은 하늘에 계신 모든 인간의 공동의 아버지께 대한 흠숭과 사랑이며 이것이 곧 민족상호간이 존경의 전제이요 바탕이며 동시에 인간정신 안에 평화질서를 확고부동하게 세우는 원리인 것이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돈도 새로운 기구(機構)의 조직도 필요치 않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선의(善意) 즉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인간마음이다.
■ 敎會一致와 世界平和
③갈라진 그리스도교 신자들간의 일치 노력은 오늘의 세계의 일치와 평화갈망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일치운동은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보다 공의회를 통하여 강력히 촉진되었다.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당신 이름 아래 공의회를 열게하신 성신의 역사하심의 뚜렷한 증거라 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교의 분열상은 특히 포교지방에 있어 하나의 큰 「스캔달」로 의식되고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교를 배격하고 무신론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하나의 논거가 되어있다.
이는 특히 무신론적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들에 있어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가고 있다. 누가 4년전에 그같은 분위기의 변화가 단시일내에 조성되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이 시간에 「콘스탄티노풀」의 정교회 아데나고라스 총주교를 비롯하여 공의회에 참석하였던 여러 그리스도교 교회의 「옵서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환언하면 공의회 기회에 그들과 나누었던 형제적 대화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고 불란서 「떼제」의 프로테스탄 수도원의 풍성한 축복의활동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모스코바」에 있는 로서아 정교회 총주교좌 기관지의 공의회에 대한 적극적인 보도, 희랍정교회 잡지 「사도(使徒) 안드레아」에 실렸던 그 참으로 아름다운 말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갈라진 그리스도교회가 점차로 하나로 접근해 가는데 필요한 좋은 계기(契機)들, 사회자선사업 및 비슷한 국제적 조직에 있어서의 각 교회간의 공동노력과 협조, 이 모든 것은 희망에 가득찬 장래를 기약해주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같이 짧은 시기에 교회일치운동에 있어 이렇듯이 큰 발전을 기록할 수 있게된 데에 대하여 하느님의 섭리의 오묘한 인도로 무신론이 간접적인 이바지를 주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에서 악의 세력도 -보다 높은 차원(차원)의 빛속에서- 선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세력들은 악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원치않는 선을 행하게 되었다.
■ 聖神의 役事하심
공의회 일치율령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교량건축의 외적 표적이다.
이것은 바로 성신의 역사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실례로써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가득한 신뢰로써 올바른 의도와 아낌없이 하느님의 뜻에 바치는 희생정신으로 착수할 때 해결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려운 사명을 수행해야 할 모든 이가 여기서부터 힘과 용기를 얻게되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있어서 불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KNA 特信】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