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國(조국) 언제나 나의 祖國(조국) - 南美行(남미행) 가톨릭移民國(이민국) 航海記(항해기) ⑥
船上(선상)에서 브라질語(어) 강습
航海(항해)하며 배안서 水泳(수영)도
初雪(초설) 내릴 11月(월)에 땀띠 돋아
발행일1966-02-27 [제508호, 8면]
【11월 26일】 오늘부터 브라질어 강습이 시작되었다.
연구반 성인반(지도 金三龍) 청년반(吳得俊) 중등반, 아동반(吳有光) 5개반으로 나누어 단 두시간씩 공부한다. 아이들은 A·B·C 「아 · 베 · 세」를 노래로 부르며 다니고 청소년들은 그들대로 「그룹」을 지어 녹음기를 틀어놓고 공부에 열중한다. 중국인 일본인도 끼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어른들이 모인 반은 제일 진도가 느리다.
「알파벳」과 네가지 발음 법칙 등을 예를 들어 실컷 설명하고 나면 웹 사람이 끝에가서 점잖은 목소리로 왈-『거 글자 옆에 톨르 달아 주소 구래』. 공부시간엔 이층 「홀」이 쩌렁쩌렁 울린다. 일하던 중국인들도 걸음이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11월 27일】 이제는 완전히 한 여름이다. 남자들은 반바지를 갈아입고 어린것들은 벌거벗었다. 상층 갑판 「풀」에 바닷물을 끌허넣었다. 그러나 남자애들 세상이다. 여자대들은 「샤워」실 한모둥이로 몰려들었다.
그쪽엔 욕탕이 있는데 바닷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어 그 물을 끌어붓고 노는 것이다.
아기들은 땀띠가 돋기 시작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서울은 지금쯤 첫눈이 왔을까?
오후에 침소한쪽에서 떠득썩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한 사람이 「페인트」를 얻으려고 중국선원을 만나 손짓 시늉으로 부탁을 했다. 그러자 이 중국인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 끄덕하더니 그를 데리고 긴 복도를 쭉 따라가 어떤 방앞에 이르자 거기 있는 「벤치」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래 친절에 감사하면서 앉아있었더니 조금있다 문이 조금 열리고 다른 중국인 하나가 나왔다.
먼저 사람이 그를 보고 무어라고 하자 그는 어서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 그 뒤를 따라 들어서자 점잖게 생긴 외국인이 앉았다가 청진기를 대고 다짜고짜로 진찰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가 나는 「페인트」를 얻으로 왔지 환자가 아닙니다.』고 펄쩍 뛰었더니 의사는 기가 막히는지 껄껄 웃으며 『당신이 이상이 아니라면 내가 돌았소』라고 했다. 이 양반이 미안해서 얼떨김에 『아니죠, 제가 돌았읍니다.』하고 나오려니까 의사 대답이 『고맙소』하더란 것이다.
이젠 선내생활에 익숙해져서 제법 재미있는 일이 만하졌다. 아이들이 물을 달라고 쫓아가면 「찬 무이」 「찬 무이」하고 대답한다. 아기를 가진 어머니가 그릇을 들고 가면 「쭉(죽) 쭉』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일본영화를 상영햇는데 별로 좋은지 모르겠다. 모두 시시하다고 도중에 내려왔다. 한국영화가 그립다. 이런 기회에 합격점 이상의 한국영화를 상영해줄 수 없을까? 한국문화가 소개하는 좋은 기횐데.
【11월 28일】 주일예배를 9시에 보았다. 10시께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다림질이 몰리고 이발이 바쁘다. 오늘은 두곳서 다림질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발은 선내서도 할 수 있으나 150원이나 받기 때문에 우리 단원중 이발기술을 배워온 사람에게로 간다. 기술도 괜찮고 돈은 굳이 받지 않겠단다. 갑판 맨뒤에 선내 세탁소가 있는데 그 뒤에 앉아 깍으면 머리카락이 바다로 알나가기 때문 시원하고 사람도 없는데서 안성마춤이다.
별칭 「이발사」 왈 『지금이 세번째 사람입니다.』라고. 한쪽에선 숫돌에 면도기를 간다. 신나는 일이다. 멀리 「싱가포르」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홍콩」과는 달리 푸른 열매 식물 사이에 희끗희끗 보이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조용하고 한산한 주택가를 연상시킨다.
10시 입항. 토인같은 사람들이 새까맣게 올라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짐들을 챙겼다.
갑판으로 올라온 이들은 물건을 벌려놓았다. 타고온 배들이 돼지새끼모양 배밑에 붙어있었다. 물건은 너절한데 비싸게 부르기 때문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우머치』 다음엔 『비싸다 비싸』하고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갑판에서의 영어는 『하우머치』 『US달라?』 『싱가포르 달라?』 뿐이다.
이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눈이 높은지 모르는가 보다. 더러 외출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