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23) 우리 숲속의 새들 ①
발행일1966-02-27 [제508호, 8면]
해는 아주 늦게야 떴다. 회복기(恢復期)의 창백하고 거만한 병인 모양으로 태양은 알아볼 수 없게된 그의 영지를 돌아보고 있었다. 10월이 그리고 지나갔고 갈색 누더기를 입은 죄수같은 나무들은 옷을 벗기우고 비에 종아리를 얻어맞고 바람에 뺨을 맞으며 11월의 수난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들은 도망을 갔거나 노래를 그쳤거나 했다.
드문 드문 남아 있는 나무잎들은 새까맣게 탄 벽지 조각들 모양으로 아직 바람에 떨고 있었다. 물렁물렁한 땅에 깔린 잎들은 이미 밟아도 바삭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지난 봄에 그 잎들을 뜸한 불로 금빛물을 들이고 지난 여름에 센 불로 구워 놓은 다음 태양은 더러운 하늘저쪽으로 물러갔었다.
오늘 아침 태양은 비장한 몸짓을 하는 헐벗은 나무들의 창백한 그림자를 따위에 던지고 있었는데, 그 나무들은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태양광선 한줄기가 교실 유리를 통해서 수업시간이 시작된 뒤로 줄곧 그것을 잡아 보려고 하던 「비로드」라는 도가 나의 손거울에 와서 부딪혔다. 살아있는 짐승 같은 광선이 바전체가 부러워하는 호리호리하고 멋있는 분필글씨를 선생이 쓰고 있는 철판 위를 왔다갔다 했다. 그 선생의 넓은 어깨의 움직이는 모양으로 보아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이 짐작되었다. 그는 홱 돌아섰다. 짐승같은 태양은 「인디안」같은 얼굴 위에서 미친듯이 날뛰며 「떼르느레」 전체가 「도마왁」(인디안의 전투용 도끼-역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그 사람의 까맣고 반들반들한 머리, 갑상연골(甲狀軟骨), 찌푸린눈, 매부리코를 차례로 비쳤다.
『도가나, 네 이론(理論)을 칠판에 와서 설명 좀 해봐!』하고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가나는 좀도둑같은 걸음, 비로드같은 걸음으로 교실을 지나갔다. 투박한 구두를 신었는데도 어떻게나 몸을 편하게 움직이는지 마치 포화(布靴)를 신은 것 같았고, 옷 입은 것이 어찌나 편해 보이는지 마치 언제나 실내복을 입은 것 같았다.
그가 책상 사이를 지나갈 적에 그의 「포켓」 속에서 거울과 하모니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지 않아 거울에 부딪친 태양의 반사(反射)가 여러가지 색갈의 분필로 그려진 각(角)과 선과 점선(点線)으로 나타났다.
『자, 봐라 도가나야, 네가 장난을 안했더라면 우리는 이런걸 모두 배우지 못했을가다. 아주 고맙다!…』
도마왁은 결론을 내렸다.
소년이 검붉은 비로드가 되어 가지고 제 걸상으로 돌아가는데, 도마왁은 눈매가 부드러워지며 조용한 웃음 속으로 잠겨들어갔다.
그것은 그의 독특한 식이었고 생도들은 기벽이 있는 데다가 인디안 두목같은 이 선생을 몹시 좋아했다.
『자, 이제는 받아쓰기다! … 다들 불란서말 공책을 내요! 셀레스땡, 너는 잠을 덜잤나, 이친구야?』
「붙잡혀온 공」은 그 큰 머리통을 이쪽 팔꿈치에서 저쪽 팔꿈치로 간신히 옮겨 놓으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만에요, 아주 실컷 잤읍니다!』
모두들 킬킬거렸다. 그러나 쎌레스땡은 그런 것은 조금도 아랑곳 없이 이내 꿈나라로 천천히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아 불러요!… 「우리 숲속의 새를」 이건 제목이야. 「우리 숲속의 새들은 초싹거리고 활발하다, 점. 정답고 야성적이고, 코머, 잘 싸우고 그러면서도 충실하고 코머, 능력이 있고…」 무엇이 「능력이 있단」말이냐, 알랭 로베르?』
『어… 우리 숲속의 새들이요!』
『그러니까 「능력이 있고」는 무슨 수(數)지 포르죠 마르끄?』
『複數(복수)요!』
『좋아. 「동무들에 대하여는 (물론 동무들이 여럿 있지!) 참된 헌신을 할 능력이 있고 적들에 대하여는 몹시 사나울 수가 있다. 코머, 우리 숲속의 새들은…』
『똑 똑 똑…』
무엇인가 유리를 두드렸다. 스무개의 머리, 우리 숲속의 새가 주둥이로 유리를 쫗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일제히 유리문 쪽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가 벗어지고, 코가 질룩하고 금니가 번쩍거리는) 뷔팔로가 손가락을 구부려 가지고 두드리는 것 뿐이었다.
『얘들아, 잠간만!』
소년들은 펜을 놓는다. 올라프만은 펜으로 혀에 개칠을 한다. 그는 씁슬하고 고상한 잉크 맛을 좋아한다…
소년들은 각기 제가 평소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알랭 로베르는 「싸인」(시럽병의 첩지(貼紙)에 있는 것처럼 흉내낼 수 없는 싸인) 연습을 하고, 올라프는 「로켓」에서 노끈을 꺼내 가지고 매듭을 이리 저리 궁리하고, 미셀은(지난 성탄에 온) 어머니의 편지를 다시 읽고, 쎌레스땡은 아주 잠이 들어버린다.
교사는 문지방 위에서 뷔팔로와 마주 섰다. 뷔팔로는 새로운 제의분을 그에게 알린다. 『2만 프랑!』 이것이 「떼르느테」에서 「비뒬」이라는 별명을 붙인 뒤팔로의 헌 털털이차를 사겠다고 물룅의 자동차공장 주인이 부르는 값이란다.
『그래, 자네 「비뒬」을 그 사람한테 파나?』
『어림엄헤(없네)!』
『허지만 그것 뭣에다 쓸텐가?』
『걱컹(정) 마라, 쓸데가 있겠지… 그렇지만 2만 흐랑이라니 말이 돼? …이따 만나세!』
뷔팔로는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간다. 그 자동차공장 주인이 거기 있었더라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도마왁이 웃으면서 「우리숲속의 새들」을 다시 시작하려는 참인데 그때 마침 『고와로는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안다. 노는 시간에 말해 줄거다. 돌려라!』는 말이 쓰인 착착접은 조그만 종이가 마르끄의 손에 들어왔다. (아이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마르끄는 그 쪽지를 다음 아이에게 넘겨 주려고 하다가, 갑자기 프랑쏘아즈 여대장과 애기를 가진 마미 생각을 한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머리칼을 호개 뒤로 젖히고는 고와도를 그 파란 눈으로 쏘아보고 그 종이 쪽지를 그에게 돌려보낸다. 『고와로에게 돌릴 것. 그 얘기를 어린 놈들한테 하면 5분도 안가서 아가리가 얻어터질 줄 알아라!』
『자 다시 시작한다.』
도마확이 그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알린다.
『우리 숲속의 새들은…』
열 네상 아싱 된 소년들을 가르치는 기계작업장에 가기전에 뷔팔로는 마르쎌 대장에게 가서 털털이차 사건을 이야기한다.
『「비뒬」을 2만 흐랑만 주겟다는거야 말이 돼?』
그러나 그는 「이빨」이 자기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한다는 것을 알아채린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마미를 못홨(봤)는데!』
『누워있어 걱정은 안돼, 그렇지만 그 사람 과로한단 말이야. 그래두 여섯달째니 몸을 좀 아껴야 할텐데… 그래 그 차 말일쎄… 2만 「프랑」은 물론 너무 적지! 그렇지만 사실…』
뷔팔로는 갑자기 주먹으로 자기 이마를 친다.
『「이빨」! 기막힌 생각이 있네… 「비뒬」 말이야 그걸 뒤두고 훈(분)해해서 애들한테 훈(준)단 알이야…』
『애들은 그걸 거꾸러 맞춰 놀걸!』
『열헌(번) 스무헌(번) 닷 시작하지! 근사하다! 그자식 2만 후(프)랑 도루 가지래…』
벌써 그는 견습생들에게 「근사한」 소식을 전하러 작업장으로 달려간다. 「이빨」은 멀리서 빙그레 웃으며 당자에게는 들리지도 않는 『뷔팔로, 자네 최고야!』하는 소리를 보낸다. 열시반 휴식시간에는 그 훌륭한 장난감을 주인이된 눈으로 살피려고 소년들이 꼬리잡이를 할 것이다. 그 장난감이란 어제까지만해도 「떼르느레」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더러운 털털이차다…
열한시. 「학생들」(열네살이 못된 소년들)이 다름박질로 교실을 나가면 「도마왁」은 마침내 장죽(長竹)을 피울 수 있다. 담배가 잔뜩 담긴채 교탁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긴담뱃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