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0) 蘭草(난초)와 채송화 ①
발행일1965-06-13 [제474호, 4면]
이때 나는 내 자신의 가치를 좀더 인정하고 싶어졌다. 내 내부에서 그만한것이 솟아 오른것은 아니었다.
생각하던것 보다 「미스터」배가 행복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얇게만 보이던 나라는 존재가 좀더 두텁게 의식해도 좋으리라는 일종의 반사작용에서였다.
한편으로는 「미스터」배가 그 꼴인것을 보니 다소 실망도 되었다. 젊은 중역의 아내, 그리고 드디어는 막대한 아버지의 재산 전부를 상속할 남자의 아내! 은근한 내 꿈이 허물어진데 대한 섭섭함도 있었다.
「미스터」옹기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자가용을 타고 꽃이 화려하게 핀 넓은 정원을 등지고 성난 표정으로 어디론지 가버렸다. 떠날때 가족에게는 말도 없고 나에게만 가냘픈 억지 미소를 남겼을 뿐이었다.
이러한 일이 이 집안에서는 보통인지 병든 부인은 별로 내색하지 않고 식모를 시켜 마실것을 내오게 했다.
나는 목이 말랐으므로 내어온 「쥬스」를 마셨는데 「미스터」배는 손도 안대고 우울한 얼굴로 땅을 내려다보며 서있었다.
『너도 마셔라!』
그의 어머니는 창가에 한팔을 기대고 아들을 주시하며 말했다.
『기분 나빠서!』
「미스터」배는 아래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너의 아버지의 그런 꼴은 오늘이 처음이냐? 노상 그런걸?』
부인의 말투로 미루어 부인도 남편을 존경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약속조차 안지키니 사람 몸달아 죽겠네!』
「미스터」배는 침을 탁 뱉았다.
그는 내가 옆에 있는것도 거의 무시하고 있었다.
『밖에서는 남한테 잘하고, 약속도 깍듯이 지켜서 신용이 기가막히다는데 집안 사람한테는 이만 저만 변덕이 아니지!』
병든 어머니는 아들을 위로하듯이 말한다.
『결혼하면 재산도 한몫 떼어주겠다고 하지않았어요?』
『글쎄, 언젠가 그러더니, 생각이 또 달라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비위를 거슬리게는 하지말아! 재산을 얻기까지는 아뭏든 비위를 잘맞춰야 한다. 저래뵈두, 너의 아버지는 몹시 기분파다.
아까 모양 그런 소리 하는게 아니다!』
『…정말이지… 이대로 날 이꼴로 내버려 둔다면 집에 불이라도 지를 테야요…』
「미스터」배는 몸에 힘이 없어 창가에 겨우 몸을 기대고 있는 어머니를 흘겨보며 아버지 앞에서는 못하던 큰 소리를 내질렀다.
『네가 미쳤니? 그런 마음을 먹게!』 어머니는 겁을 집어먹고 부석한 눈이 반짝거렸다.
『사람을 이렇게 멸시하는데 아버지의 가치가 어디있느냐 말야!』
「미스터」배는 병든 어머니 앞에서 땅땅 울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보기에는 병든 어머니를 족치고 위협하고 있는 듯했다.
『전 가보아야 겠어요.』
나는 그 분위기에서 떠나고 싶었다.
『가지마아! 어딜가는거야!』
「미스터」배는 마치 내가 자기의 소유물로 확정된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아버지의 약을 사다드려야 해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좀 있다가요!』
「미스터」배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머니, 어떻게하면 좋아?』
「미스터」배는 초조한 듯이 이번에는 울상이돼서 말했다.
『아버지한테 사과해라』
『………』
「미스터」배는 잠잠했다.
『아까, 그 말씀은 제가 듣기에도 언짢았어요, 아버지의 기색이 좋지 않습니다.』
나도 이렇게 한마디 했다. 「미스터」옹기는 나의 양부에 비하면 몇갑절이나 좋아보였다.
나에게 그런 양부가 계셨으면 나는 언제나 화목하게 지낼수 있을것만 같았다.
『…따지고 보면 사과할건 없어요. 내가 잘못한게 뭐있어요』 「미스터」배는 항변을 한다.
『집에다 불을 지른다는 그런 소리야. 잘했다고 할수 없지 않느냐.』
병모(病母)는 아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게 부드럽게 말했다.
『사과라도 해야, 아버지의 비위가 풀릴것이고, 네가 원하는 중역자리도 내 줄게 아니냐!』
『……』
『전, 정말 가보아야 해요!』
나는 진호 생각이 물컥 나며, 이들의 대화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영화나 보러 갑시다!』 기분 전환으로!
『아버지는 지금, 내가 약 사오는걸 기다리고 계시는걸요?』
『이번에 좋은게 있어요…』
「미스터」배는 싱긋이 웃으며 내팔을 붙든다.
『오늘은 가 보아야 해요!』
나는 딱 잘라 말하고, 병든 그집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정원을 나섰다.
남의 사정은 전혀 이해하려고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미스터」배의 개성이 나는 싫었다.
이런 경우, 진호 같으면 얼핏 약부터 사서 전하라고 권할 것이다.
밖에 나와서 흘긋돌아보니 여러집들 중에서 「미스터」배의 집이 가장 눈에 뜨이며, 넓은 정원의 녹음은 푸르게 우거지고 울긋불긋한 화단도 보였다. 그 집에 들어설때와는 반대로 그것들은 그집 안의 행복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속에 불화와 갈등과 싸늘한 공기를 느꼈다.
「하이힐」 발끝에 성숙한 내 육체의 중량을 느끼며 그 중량 자체로서 하나의 행복을 나는 내 자신에게 느껴보았다.
동시에 내 앞에는 「미스터」배의 환영은 흐미해지고 신호의 눈동자가 한층 맑게 비쳤다.
그날밤 「미스터」배와의 「데이트」는 일체 끊어버릴 결심을 했다.
이튿날 「미스터」배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꼬마에게 알아보니 결근이라 한다.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약간의 궁금증이 있었으나 곧 관심밖으로 밀어버리고 하루일을 처리하다보니 저녁이 되었다.
갈려고 「타이프」 앞을 챙기고 있자니, 「미스터」꼬마가 와서, 전화가 왔으니 받으라고 한다. 「미스터」꼬마의 표정으로 미루어, 「미스터」배임을 알았다.
수화기를 받아쥐니, 과연 「미스터」배였다. 어제의 그 지하다방으로 곧 나오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과외공부 때문에 곧 돌아가야 하는데요』
나는 슬그머니 발뺌을 했다.
『「햇피 늬우스」가 있으니 잠깐 곧 나와요』
그는 몇번이나 다짐하므로 「버스」터러 가는 길이라, 예의 다방에 들렀더니 그의 얼굴은 어제와는 딴판으로 매우 밝았다.
『…아버지한테 사과하러갔었지, 그랬더니 여정이 풀리셨어, 기분 좋아 하시더군, 지금 상무자리가 비어있는데 그 자리를 주실듯이 말하였어, 그러니 이젠 그까짓 평사원으로 지금의 회사에 나갈 필요는 없어!』 「미스터] 배는 의기양양했다. 어제는 못나게 보이던 얼굴이 이상하게도 생기가 감돌았다.
『…아버지가 열시쯤 들어오실거야!』 「미스」양의 과외 공부도 그때는 끝나겠지, 가는 길에 우리집에 들려요!
그날 밤, 열시가 넘어서 과외를 마치고 무엇에 끌리는것 같은 걸음으로 「미스터」배 집으로 갔다. 미리 일러두었던 양, 문옆에 있는 방에서 정원사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현관 옆 온실앞에 이르니 「미스터」배가 난초화분을 들어 돌바닥에 내던지고, 한떨기 보라꽃이 핀 난초를 발로 짓밟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나에게 자랑하던, 한국에는 하나 밖에 없다는 귀한 그 화초였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그의 어머니가 유리 장지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딴 물건도 아닌 그것을… 네가 어쩌자고 그러니?』
병자는 말을 더듬으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상무자리 준다더니 남주었다는 그런 애비가 무슨 애비냐 말야!』 「미스터」배는 미친듯이 온실의 수많은 진기한 화분을 닥치는 대로 집어 돌바닥에 내던진다. 그는 내가 뒤에 서서 보고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