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世界(전세계)의 牧者(목자) 바오로 6世(세) 敎皇(교황) 21日(일)은 登位(등위) 2周年(주년)
人類(인류) 審判(심판)치 않고 救援(구원)하시려는 그리스도의 착한 代理者(대리자)
世界平和(세계평화) 樹立(수립)에 全力(전력)·各階各層(각계각층)과의 對話(대화) 試圖(시도)
敎會刷新(교회쇄신)·公議會成功(공의회성공)·教會一致(교회일치) 促進(촉진)
두 先教皇(선교황) 美徳兼備(미덕겸비)
飛行機(비행기) 搭乘(탑승)·聖地巡禮(성지순례)-印度(인도) 訪問(방문)하고 「歷史的(역사적) 教皇(교황)으로」
【RNS 本社綜合】 6월 21일로써 교황 바오로 6세는 등위(登位) 만 2주년을 맞이한다. 이 동안에 교황은 어느 프로테스탄 평론가가 지적한 바와같이 그리스도교계에 있어 가장 힘든 과업을 수행하였다.
이 비교적 짧은 시기에 바오로 교황은-불란서 가톨릭지성인 모리스·슈만의 말과 같이 비오 12세의 지성적인 명석(明晳)과 요안 23세의 마음의 순박을 겸비하여 놀라울만큼 교황직에 새로운 깊이와 넓이를 부여하였다.
그는 교회를 해도(海圖)에도 표시돼 있지않는 「에꾸메니즘」이라는 해양(海洋)으로 이끌어가면서 프로테스탄 및 동방정교회와의 희망을 약속하는 접촉을 이룩하였고 비그리스도교인-심지어는 무신론자-들과의 대화의 기틀을 놓았으며 동시에 아직 제한된 것이기는 하나 공산정권(헝가리)과의 정교협정을 체결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동시에 당년 67세의 바오로 6세는 교황으로서는 사상(史上) 처음으로 비행기 혹은 「헬리콥터」 여행을 함으로써, 특히 성지순례와 인도를 방문함으로 교황은 언제나 「로마」에 머문다는 관념을 뒤엎고 세계의 교황이요 사목적 필요에 따라서는 어디든지 나아가는 세계를 위한 교황임을 증거하였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또한 그의 거듭한 세계평화호소, 교회 전례의 먼 장래에까지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혁신, 추기경수를 103명으로까지 증가시키고, 남녀평신도를 공의회방청자로 임명함으로 교회내의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한 것 등을 그의 업적으로 열거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오로 교황은 치교(沿敎) 벽두에 이미 선임 요안 23세가 지닌 두가지 원의 즉 교회의 현대화와 현대세계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의 확대를 수행함이 그의 의도임을 분명히 하였다.
전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요안 교황이 서거한 직후 당시 「밀라노」 대주교였던 몬띠니 추기경, 즉 현 교황은 조사(吊辭)를 통하여 『요안 23세는 별세했다. 그러나 죽음은 그가 이 세대에 불어넣은 정신을 질식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가 훌륭히 닦은 길에서 빗어날 수 있겠는가? 나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하였다.
그의 대관(戴冠) 미사에 있어 바오로 6세는 교황으로서 세계평화, 그리스도교일치, 「바티깐」 공의회의 성공적인 완결을 위해 헌신할 것을 서약하였다. 과연 그는 이 서약 그대로 충실히 살아왔다.
요안 23세는 물론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낳은 교황으로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요안 교황이 그린 교회현대화의 청사진(靑寫眞)을 실현하고 있는 이는 바오로 6세이다.
그리하여 공의회를 통해 세운 그의 업적중에 여러 중요한 율령들이 있음을 지적하지않을 수 없고 이미 말한 전례헌장외에 주교공동성을 밝힌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교회헌장을 비롯하여 교회일치의 원리원칙을 확연히 세운 일치율령, 동방교회율령 모두 내일의 그리스도교세계와 전인류를 위해 막대한 의의를 지닌 공의회 율령들이 그를 통하여 반포되었다.
성모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함으로 성모의 교회에 대한 위치와 역할을 더 뚜렷이 한것도 역시 바오로 교황이다.
교황은 또한 어느 정신적 지도자에 앞서 세계평화에 헌신하고 있다. 1964년 _월 첫 회칙 「그의 교회를 반포하였을때 국제분쟁의 조정을 위해 교회가 중개역할을 맡을 수 있음을 밝혔고 그 보다 1년전에 「모스코바」에서 미국·영국·소련간에 핵실험(核實驗) 제한협정이 체결됐을때 교황은 이를 『선의의 증거, 목의 표징, 보다 안정된 장래를 위한 약속』이라고 환영하였다. 또한 1964년 1월 성지순례시에는 세계 각국의 원수들과 국제적 지도자들에게 2백20통에 달하는 평화 「메시지」를 보냈다. 금년에 교황은 회칙 「멘세·마이요」등을 통해 거듭 평화호소를 발하였고 특히 월남과 도미니카공화 국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부르짖었다.
우리는 또한 교황이 「예루살렘」 순례때에 정교회 최고지도자인 아데나고라스 총주교와 형제적인 상봉을 가짐으로 교회일치를 위해 획기적인 친선을 양 교회간에 이룩하였음을 거듭 강조하지않을 수 없다. 이것을 계기로 가톨릭과 정교회간은 5백년 동안의 불화를 일소하고 하나의 교회를 향해 현저히 접근해가고 있다.
교황의 일치를 위한 손길은 정교회나 프로테스탄 형제들에게만 국한돼 있지 않다. 1964년 성신강림절에는 「비그리스도교 관계사무국」 설치를 발표함으로 유태교 모스템 불교 기타 제 종교와의 신의와 형제애를 토대로한 대화의 길을 틔웠다. 나아가 지난 4월에는 이 대화의 범위를 넓혀 무신론자 및 불신자들과의 상호이해를 촉진시킴으로 인류의 단결과 구원의 길을 보다 더 넓게 닦기 위해 불신자 사무국을 「바티깐」에 설치했다.
이것은 물론 무신론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교회의 판단에 변화가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1963년 9월에 이미 그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말하면서 『모든것을 감싸안는 교회의 사목적 배려는 사회안에 만연돼 있고 교회로부터 단죄된 오류 등에 대한 판단의 변경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회칙 「그의 교회」에서 천명되어 있는 바와 같이 누구도 스스로 구원의 진리를 거부하지 않는한 모든 이가 교회에 대하여 남일수 없음을 바오로 교황은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과연 선임 요안 23세와 같이 세계의 목자로서 세계를 위해 할수 있는 모든 일을 위해 자신을 바친 교황이다. 또한 그의 생활 이념은 세계를 심판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이 지상에 대리하는 목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