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國(조국) 언제나 나의 祖國(조국) - 南美行(남미행) 가톨릭移民國(이민국) 航海記(항해기) ⑧
가톨릭은 어디에서나 한 兄弟(형제)
旅路(여로)서 歡待(환대)받고 鄕愁(향수)에 젖어
亞洲(아주) 籠球大會(농구대회)에 복바쳤고
발행일1966-03-13 [제510호, 4면]
【11월 30일】 오늘은 성 안드레아 첨례날이다.
부두에 기항하는 선박 교우를 위해 계신 베르그만스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드렸다. 2등 식당에서 145명 교우 전체가 정성껏 참례했다. 신부님은 온화한 음성, 인자하신 모습 그대로 진정 인자하신 분이었다. 집을 떠난 오랫만에 우리는 조용히 갈아 앉은 마음으로 고향에서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맛보았다.
다시금 눈에 어리는 고향의 모습, 두고온 부모형제에의 그리움, 정다웠던 친구, 모두에게 정성껏 참으로 정성껏 은혜를 빌었다. 미사가 끝났을 때 신부님의 흰 수단은 땀에 떠 있었다. 각 세대를 위해 묵주 두개씩을 주시고 상본도 주셨다. 오후에 다시 성탄때 쓸 구유와 촛대 등 여러가지 선물을 가져오셨다.
「쇼핑」을 하고 돌아온 아낙네들의 목덜미와 팔이 빨갛게 타있었다. 10원에 그림엽서 다섯장이라는데 여덟장을 받아온 사람, 열장을 받아온 사람, 열두장을 받아온 사람, 모두 서로 비굘르 해보고 잘못산 사람은 잠시 울상이 되었다. 두사람의 좌석이 옆에 __자전거를 타고온 사람들이 싱글벙글 재이있었다고 얘기한다.
「스콜(열대지방의 소낙비)이 올때가 되었는데. 오후에 「동아일보」가 배부되었다. 선박 회사의 「서비스」라고 한다. 11월 28일 전후의 신문들이 나누어 지자 환성을 올리며 서로 뺏아 보았다. 노늘은 하루종일 고향생각이 떠나질 않는구나.
【12월 1일】 이곳에 일간신문이 돌려졌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아주(亞洲) 농구대회가 「쿠아라 룸푸」에서 개막되었는데 한국이 말레지아와 겨루어 어청난 「스코아」 차이로 대승한 것이다. 파죽지세라고 한국 「팀」을 형용했다. 모두들 축제기분이다.
내일 도착할 「스웨텐 함」 항구에서 25「마일」 떨어진 곳인데 내일 떠나지 않으면 모두 응원을 가겠다고 한다.
오늘 이곳 대사관에서는 53세대에 각 1명 꼴로 관광을 위한 초대를 베풀었다. 버스가 직접 부두까지 나와 10시에 출발하였다. 처음 간 곳은 「타이거 베움」으로서 한 2천평 되는 산지가 온통 조각으로 뒤덮여있다. 별로 높지는 않는 산이나, 바위가 다 조각이요 동굴에 부처로 조각해 놓고 심지어 층대까지 그냥 돌이 아니요 연꽃 고기등 여러가지가 조각되어 있다.
이곳은 옛날 중국사람 호문호라는 사람이 아편밀수와 위조지펴 등 부정한 축재를 하다가 만년에 그 일생을 영광되지 못하게 느껴 그 돈을 희사하여 이런 곳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작년까지 이곳에 오는 사람에겐 누구나 차대접을 했다고 한다. 두번째 간 곳은 식물원인데 가지가지 열대식물이 우람하게 드리워있는데 원숭이들이 개방되어 길러지고 있는게 특징이나 와서 장난도하고 어린애들이 귀찮게 굴면 때리기도 한다. 그다음 수족관을 방문했다.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물뱀도 있고 30여개의 유리관이 진열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은 펄펄끓는 더위 때문에 다시 나오고 싶지 않는 기분이다.
오후6시30분경 「스웨텐 함」으로 출항, 신부님과 우연히 길에서 만나 따라간 우리 일행중 한가족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교포 한사람이 부두를 따라 오며 전송했다. 태극부채를 흔드는 교포는 울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리랑」을 불러주었다. 『잘있어요』 신부님의 흰 옷이 자꾸가도 보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