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般社會人(일반사회인)들의 敎會觀(교회관)을 보고
反省(반성)하고 고쳐야
발행일1965-06-20 [제475호, 4면]
■ 現實 參與 不足 / 白敏寬(가톨릭公用語審議委員會總務, 가톨릭大學神學部교수신부)
無氣力했던 韓國가톨릭 民族救援의 길잡이 돼야
迫害·現實忌避·指導者 養成 疎忽등으로 社會參與 要件不備, 모든 誤解 우리 責任
『나는 가톨릭을 이렇게 본다』는 제목 밑에 우리나라 각계 인사들을 거의 총망라하다시피하여 가톨릭이 아닌 지성인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나를 타진해 보려는 시도는 가톨릭시보사가 그만큼 발전해 나가려는 노력으로 보여져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 난을 읽고 소감을 써 달라는 「시보사」의 청탁을 받고 몇마디 아쉬운 생각을 적어 본다면 우선 대화하기 위하여 마련하였다는 이 난은 그 설문의 내용이나 답의 내용으로 보아 대화라기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자기 반성하기 위한 참고자료를 얻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난에 투고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거개가 다 말머리에 『나는 가톨릭을 모르니 이렇다 저렇다말 할 자격이 없다』고 전제했으니 가톨릭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는 것도 각자 개인적으로 겪은 특수 경우나 느낌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피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분은 가톨릭예식은 『아름답고 장엄하여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를 맛볼수 있다』고 했는가 하면 어떤 분은 『그 알아듣지 못할 형식주의가 싫다』고 했읍니다.
가톨릭 밖에 있는(이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회인사들의 말씀을 듣고 한가지 크게 반성되는 것은 날로 암담해 지기만하는 우리 사회의 구제역이되고 그 부패의 방부제가 되어 달라는 한결같은 기대의 소리였읍니다. 그리고 가톨릭이 이나라에 들어온지 근2세기가 되는 오늘날 우리나라 백성을 위하여 한것이 무엇이냐는 책망에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금치못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한국 가톨릭은 과거에 무기력하였던 자신의 능력을 솔직히 고백해야 할줄로 생각합니다. 요새 가톨릭안에서도 사회참여(社會參與) 문제가 많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사실 가톨릭이 우리나라에 심어지고 자라온 오늘날까지의 발자취를 돌이켜 오늘을 생각해보면 한국 가톨릭이 왜 사회활동에 뒤져 이처럼 약골이 되었나하는 이유를 알수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이 18세기말에 이땅에 들어와 싹트기가 무섭게 박해의 폭풍이 60년동안 휘몰아쳤고 교우들은 산간벽지에 쥐몰리듯 파묻히고 말았으며, 종교 신앙의 자유가 오는듯하니 일제의 식민치하에서 마치 서양인들의 침략도구처럼사갈시 당하면서 음성적인 박해를 받다가 기를 펴게된것이 겨우 엊그제의 일이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교회의 행정적 독립을 하기에는 너무나 어렸던 우리들이, 외국인선교사민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었고 외국인들은 일제 밑에서 그 처참한 피의 박해가 없는 것만을 다행으로 일체 사회정치에 무간섭주의로 나간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가톨릭은 일제에 아부아나면 적어도 묵인했다는 비난을 받고는 있지만 그때 실정으로 보아 외국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도 가는 일입니다.
한가지 우리가 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분들이 왜 인재를 양성해 주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모든 행정면에 독립을 하고 있는 이마당에 우리가 사회발전을 위하여 활동할 터전은 활짝 틔어있읍니다.
가톨릭이나 비가톨릭이나 이일은 네가 할일, 내가 할일 가리지 말고 다같이 뜻을모아 손잡고 나가야 할줄로 믿습니다. 진리가 어떤 개인의 것이 될수없듯이 가톨릭이란 종교도 또한 어떤 특징인이나 단체의 점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사회인사의 가톨릭에 대한 소견을 읽고 섭섭하게 생각되는 것을 몇가지 다음과 같이 적어 보겠읍니다.
①대부분의 지성인이 가톨릭을 이해하는 정도가 학창시절에 배운 문화사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애석한 일입니다. 이점은 물론 근본적으로 가톨릭자신이 책임져야 할일이요 지성인 이 생각하며 읽을수 있는 학문적인 저서가 긴요하게 느껴집니다. 가톨릭은 「독마틱」하다느니 형식주의니 하는 말, 그리고 이어령(李御寧) 선생님의 『성 베드루사원의 호화로운 주랑앞에 서서 소박한 어부 베드루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씀은 그 표현자체가 일본식이지만(사원) 우리가 중학시절에 일본선생님한테서 「대동아성전완수」(大東亞聖戰完遂)를 위한 설교로 늘 듣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반가톨릭인사가 「로마」를 구경하고 했다는 일화라더군요.
②대부분의 성생님들은 가톨릭을 종교로서 보아 주기에 앞서 사회활동단체로 보는점은 좀 섭섭합니다. 정만교 선생님의 말씀대로 『믿음은 자기완성의 길』 정도이라면 종교라는 말자체가 필요없지 않을까요. 가톨릭시보사에서 일부터 찾아가서 한말씀 써 주십사하고 청탁한데 대하여 친절하게 그러나 하고싶은 말을 숨김없이 해주셨는데 이런 말을하는 것은 예의가아닌 줄은 알지만, 『교황이니 추기경이니, 그런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한 함석헌(咸錫憲)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는(실례이지만) 무슨 깡패라도 얻어 만난것 같은 느낌이었읍니다.
가톨릭시보사는 이왕 길을 터 놓은것이니 정말 흉금을 터놓고 성의있게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 民族行列에의 不參 / 玄錫虎(前國會議員·現 서울新堂동본당 회장)
宣教置重·人材不足 過去 果敢한 社會參與 準備中
韓國發展의 先行條件은 精神的 基底確立에서
비가톨릭 각계 지성인의 다각도적 가톨릭관이 연재되었을때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읽어보았다. 가톨릭시보사는 현명하게도 그것들을 발췌(拔萃) 분류해서 몇가지 욧점에 대한 것을 가톨릭적 견지에서 재분석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서 과거의 한국가톨릭은 사회참여 특히 민족행렬에 참여치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였고 따라서 가톨릭은 마땅히 우리민족의 종교로 되어야한다고 역설한 부분이 인상깊게 쓰여 있었다. 필자는 이점에 대하여 논평하라는 위촉을 받았다.
나는 이 문제점을 「가톨릭의 사회참여」와 「가톨릭의 민족적종교화」의 두개의 논제로 나누어서 관찰해보려고 한다. 먼저 한국가톨릭이 과거에 있어서 사회참여가 미약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즉 가톨릭이 한국땅에 전교된 이래 180여년의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그리스도교의 기치하(旗幟下)에 백년이상이나 뒤늦게 선교된 프로테스탄교파에 비하여 사회참여 즉 정치·교육·문화면 등에 있어서 비견(比肩)할 수 없으리만큼 가톨릭은 소극적이었다고 자신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정압제시기의 정치면에 있어서는 한국가톨릭은 항일전선에서 두드러지게 노정(露呈)된 사실이 없는것 같다.(安重根 義士가 天主敎信者이었다는것은 一般的으로 잘모르는 事實이다.)
전기론자(前記論者)는 바로 이점을 들어 민족운동의 대표격인 3·1운동당시의 33인 가운데 불교·기독교(프로테스탄)계는 수명의 대표자가 주동역할을 하였는데도 유독 가톨릭은 한사람의 참가도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여 논거로 삼았다. 그리하여 가톨릭은 과거의 애국운동에 외면하였는 것처럼 평정(評定)하고 또 그것이 마치 가톨릭 자체의 교리에 연유된 듯이 추리하여 즉 가톨릭의 국제성에 기인하여 민족적 감정을 초월하고 따라 민족적 운동행렬에 불한 것처럼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런 견지에서 한국가톨릭은 모름지기 민족의 종교가 되어야한다는 결론까지 내렸다고 본다. 그러나 전기 논지에 대해서 구구한 변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표면적인 현실만은 그와같은 논평을 면할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톨릭인 까닭으로 그 교리내지 국제성에 기인해서 민족적 애국심이 부족하거나 민족행렬에 불참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진실에 어긋나는 오해가 아니면 곡해일 것이다. 다만 그 당시의 우리가톨릭은 오랜 동안의 정치적 박해아래서 천신만고로 명맥을 이어온 실정에 비추어 아직도 교세가 미약하고 특히 사회성 계층에 교우가 극히 희소했다는 사실이 사회참여내지 민족행렬에 소극적이었다는 유일한 이유이었다고 보는 바이다.
또 이외에 다른 사회참여 문제 즉 교육·문화·사회사업 등에 있어서도 프로테스탄 측에 비해서 열세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전교 선구역할을 해온 두 외국의 선교정책의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본다. 천주교를 가져온 블란서는 전교자체에 치중한 나머지 다른 부수 사업면에는 등한하였는데 반하여 프로테스탄을 포교한 미국은 선교와 병행하여 교육·문화·자선사업 등에 치중하였다는 사실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는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가톨릭자체의 기본적 자세에 있어서 사회복지문제에 대한 가톨릭참여가 극히 중요한 과제로 등장되어 역대 교황성하의 사회정책에 대한 회칙이 역설하고 있는바로서 전세계인류를 위한 또는 특정한 사회문제에 관한 교황의 교서가 빈발(頻發)되는것만 보아도 넉넉히 알수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한국가톨릭자체에도 정세는 일변되었다. 6·25사변을 계기로하여 교우수는 일증월가(日增月加)로 그야말로 요원의 불처럼 교세는 확대되고 더우기 신자중에는 사회각방면의 지성인·저명인사 등이 다수 입교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사회참여의 부면이 광범위(廣範圍)하게되고 또 집단화되는 경향이 현저하여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가톨릭의 정치·경제·문화등 각방면에의 사회참여는 괄목할만한것이 있을것이 기대된다.
끝으로 모두(冒頭)에 언급한바 한국가톨릭은 민족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하여는 나는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한다. 민족의 종교가 된다는 것은 민족적 종교화란어의로서 예시(例示)하면 우리나라의 소위 단군교(檀君敦)나 일본의 신도(神道)같은것을 연상케 한다. 나는 그와는 반대로 우리민족은 종교의 민족 즉 종교적 민족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올바른 신앙, 즉 종교를 갖지않는 나라나 민족은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서구제국의 선진민족들이 그 실제가 아니겠는가. 지면 관계로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룰 수 없으나 요는 우리민족이 오늘날 이와같이 고난중에 처한 이유가 백천가지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민족의 정신적 요소에 있다고 본다. 이 정신문제는 올바른 진리의 종교를 갖지않고서는 개혁발전시킬 수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한국민족의 영원한 장래발전을 위해서는 한국민족이 하루속히 진리의 종교인 가톨릭교화되는 길이 가장 기본적이고 영구적인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의 「가톨리시즘」화 즉 한국의 종교적, 민족화운동이야말로 진정하고 영원한 민족행렬에의 적극적 참여가 아니겠는가. 성직자, 수도자의 가일층의 분발은 물론이고 70만명 신도의 적극적 사도직활동이 절실히 요청되는 바이다.
■ 우리가 나서서 直接解明해야 한다 / 朴道植(신부, 가톨릭시보編輯 및 論說委員兼서울분실장)
잘 못 알려진 「가톨릭」 「免罪符·宗敎裁判·마리아敎」 등
들은 批評등 거울삼고 福音傳播 果敢히 하자
殉敎情神 바탕삼아 社會淨化 앞장서야
우리는 본지를 통해 일반사회 인사들의 솔직한 가톨릭 비판을 들었다. 그분들이 어떤 말을했던지를 묻지않고 우리에게는 유익한 글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제위 필진(諸位 筆陣)들에게 깊은 사의를 보내는 바이다. 뜻밖에도 독자들로부터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고 요청이 있었기에 순수 우리 가톨릭의 입장에서 우리가 이번 기회에 각성해야할 몇가지점과 동시에 가톨릭에 대한 일반사회인들의 불가항력적인 오해를 풀어주는 의미에서 몇가지 말을 해볼가 한다.
물론 좋은 글을 주신 그분들에게 어떤 도전적인 글을 쓴다든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고 다만 가톨릭과 비가톨릭과의 순수한 대화라는 입장에서 붓을 들었음을 밝혀둔다.
지면관계상 요약하겠다.
▲의식(儀式)이 복잡한 가톨릭-그래서 형식주의 가톨릭이란 말이 나왔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처음 가톨릭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첫마디가 언제나 이것이다. 형식이란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많다. 형식이란 눈에 보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나 보이지 않는 어떤 내용을 뜻한다. 그러므로 『형식은 보이지 않는 내용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지 않는가?
친구끼리 나누는 「악수」라는 형식을 생각해보자, 악수도 하나의 형식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눈에 보이지않는 뜨거운 우정이 흐르고 있다. 우정을 보지못하는 그들에게는 하나의 형식으로만 보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않는 내용이 클수록 형식적인 의식도 복잡하게 마련이다.
국가의 원수(元首)일수록 예포(禮砲)의 수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가톨릭의 복잡한 종교의식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경신의 큼을 나타내는 것이요. 또한 그것을 통해 받는 하나님의 은총이 풍부하다는 것을 뜻 한다. 종교적인 경신행위(敬神行爲)나 또는 천주님의 은총에 대한 개념이 없는 비가톨릭인들에게는 당연히 형식주의란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교조적(敎條的) 권위주의적 독재성의 가톨릭-진리는 하나이며,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는 없을줄 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는 인간자신에게 직접적 관계를 맺고있는 「구원(救援)의 진리」일 것이다.
2+2=4라는 수학적인 진리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하는 진리라면, 또한 인간의 본성, 본질 그 자체가 동서고금을 통해 변함이 없다면 인간 구원의 진리도 변함이 없어야할 것이다. 하나의 진리인 그리스도께서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실리없다면 그리스도의 진리를 찾는 그리스도인들의 교조는 시공을 초월해시 반석같은 확고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 한종교가 그것의 신조(信條)가 변할때 그것은 분열직전에 있는 것이며 분열이란 진리를 잃은 징조인 것이다. 왜냐하면 분열이란 그것의 신조가 다르다는 것이요. 신조가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구이언을 인정하고 2+2=5 혹은 6을 그대로 인정하는 결과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철학도 아니며, 신조는 어떤 수학적인 진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교직자들도 그때 그때 인간구미에 맞게끔 신조를 요리 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선남선녀들을 후려치는 사교(邪敎)가 될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여기에는 교직자들의 권위도 말살되고 만다.
가톨릭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 신조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 신앙이란 권위 위에 세워진 것이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다. 아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믿어야하는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며 그 이유란 자연과학적인 지식이 아니고 초자연의 진리를 가르쳐준 그리스도의 권위인 것이다. 교수가 권위가 있어야 학생이 그 교수의 가르침을 따라가듯이 영원한 구원문제란 방대한 과제를 앞에 놓고 그것을 위해 내 모든것을 바칠 수 있기 위해서는 신앙을 보장하고 그것의 진리를 믿을 수 있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베드루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주었고 그 권리가 잘못 이행되지않을 보장까지 해주셨다. 비가톨릭인들은 깜작놀랄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가톨릭은 베드루의 권위를 이어받아오는 교회요. 그 권위의 절대적인 보장을 받은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무류지권(無謬地權券)」을 지체없이 부르짖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은 교만하고 배타주의요. 독선적이요. 구원의 전매특허권을 가졌다는 비판을 듣는다. 그만큼 확고한 신조를 가진 가톨릭이기 때문에 사상조류에 바람을 타는 종교앞에서 우리는 가톨릭 신조외에 다른 어떤 아쉬움을 느끼지않고 언제나 자신을 갖는 종교임을 스스로 자부하고 있음을 밝히고 싶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역사의 거센 파도속에서도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식의 신앙을 배제하고 왔던 것이다.
이와같은 절대적인 신조와 권위에 바탕을 둔 가톨릭이기 때문에 흔히는 가톨릭을 독재적이라고 한다. 물론 가톨릭의 체제는 민주주의식이 아니고 군주주의 체제이다. 이것은 교회를 창설한 그리스도의 뜻이었다. 그러나 세계가톨릭을 지배하는 「바티깐」에는 원자탄도 수소탄도 없으며 현대무기로 무장된 병력도 없다. 그런데도 6억의 신도를 한결같이 다스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하나 가톨릭이 독재적이라고 오해를 받고 있는것은 가톨릭의 원수(元首)를 교황이라고 지칭하는데 있다. 「팟쇼」를 쓰는 황제같은 감을 준다.
그러나 교황이란 말은 동양에 와서만 이렇게 잘못 번역되었다. 그 본래의 뜻(PAPA·POPE)은 「아버지]란 뜻이다. 앞으로는 교황대신에 교종(敎宗)이라고 써야 옳은줄 안다. 독재란 일반적 개념으로 말해서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여 자유자재로 정치하는것을 말하는데 독재의 뒤에는 으례 무서운 무력의 힘이 도사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도 병력의 무력 이상으로 하나의 진리로 인도하고 있으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조가 흔들리고 권위가 떨어진 종교는 멸망직전에 있다. 인류역사상 많은 종교가 있었고 또 멸망했다. 그것은 그만큼 진리의 바탕이 없었다는 증거이다.
가톨릭은 절대적 신조와 권위를 확보하고 있기때문에 내세까지 전인류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종교이다.
아전인수격이요. 자화자찬하는 소리라고 아니꼽게 들릴지 모르겠으되 이와같은 신조에 의한 신앙이 아니라면 그는 아직도 참된 가톨릭인이 아니다.
그래서 한때는 가톨릭의 모든 종교를 이단시하고 지나치게 냉혹한 태도를 취했음을 우리는 인정하고 동시에 사과하는 바이다. 그래서 가톨릭을 폐쇠적(閉鎖的)이라고 했다. 절대적인 조건과 권위에만 몰두한 우리는 이러한 죄를 범했다. 그래서 오늘의 가톨릭은 과거의 인간적인 실책을 씻고 비가톨릭인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한 형제가 되고저 백방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름다운 순교사(殉敎史)를 가진 가톨릭-사회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가톨릭의 순교사를 격찬했다. 순교정신이야말로 참신앙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상 방방곡곡의 피의 역사는 가톨릭의 자랑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어찌하여 가톨릭의 순교정신이 사회를 정화하고 죄악과 싸우는데는 발휘되지 못하고 있느냐?하는 신랄한 비판에 대해서는 우리는 스스로 얼굴을 붉힌다. 모름지기 한국가톨릭은 선조들의 선지피로 물러받은 신앙을 순교정신에 입각해서 사회개혁의 선두에 나서야하겠다.
▲잘못 전해진 가톨릭-구도자(求道者)들이나 비가톨릭과의 대화에서 느끼는 것은 그들의 대분분이 가톨릭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종교개혁 당시의 「면죄부」라든지 「갈리레오사건」 「종교재판」 등 역사적인 문제와 조상숭배와 관련된 「제사문제」라든지 또는 교의문제(敎義問題)에 있어서 「마리아교」니 「우상숭배교」니 이렇게 지나친 왜곡을 품고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황이니 추기경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이것은 가톨릭을 오해했다는 문제보다 앞서 사상적인 문제인듯 하다.
『대통령이니 장관이니 하는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다』하는 식의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이요. 이것은 곧 무교회주의적인 사상이므로 종교계에 있어서 뿐아니라 사회적인면에 있어서도 위험한 사상인 듯하다. 또 하나 실례를 든다면 아직도 가톨릭교직자들을 승려라하고 가톨릭교회당을 「사찰」이라고 하니 말이다.
우리의 신앙대상인 하나님을 부처님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이 귀에 거슬리듯이 승려(BONZE)니 사찰이란말도 우리귀에는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이 한국에 잘못 전해진 것은 다른 의미에서 한국가톨릭은 그만큼 사회참여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래서 『전교하지않는 가톨릭』이라하고 성당에 가면 쌀쌀하고 냉정하다고 한다. 우리는 이점에 있어 고개숙여 사과해야할 일이요. 시정해야할 일이다. 독자들 중에서 혹시 가톨릭을 알고자 하는분이 계시면 언제라도 서신으로나 또는 필자의 우거를 방문해주시면 성의껏 모든 친절과 정성으로 환영할 것을 밝혀둔다.
▲가톨릭인의 반성-지상대화를 통해 느끼고 반성해야할 것이 있다. 종교는 현실부정의 것이 아니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를 박고 초자연계로 비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참여에 좀더 적극성을 보여야겠다.
교세상승과 사회악 증가라는 모순을 우리의 생활한 신앙으로 씻어야 되겠다. 한국가톨릭은 성직계를 중심으로 모든 신도들은 순교정신으로 재무장하여 사회정화에 기수가 되어야하겠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한국가톨릭은 모름지기 한국사회에 있어서 진리의 빛이 되어야겠고 사회를 정화하는 소금이 되어야 하겠다.
끝으로 필자의 당돌한 언사에 대해서는 용서를 빌고 다시한번 필진 제위께 사의를 표시하며 앞으로도 언제나 가톨릭과 거리낌없는 대화를 계속해주기를 빌면서 이만 붓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