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1) 蘭草(난초)와 채송화 ②
발행일1965-06-20 [제475호, 4면]
나는 살며시 그곳을 떠날까 하다가 값진화분들이 무참히 악살박살이 되어가는 극적장면을 좀더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에 끌리어 그대로 서서보고 있었다.
세단으로 나눠진 널판위에 즐비하게놓였던 수많은 화분은 처참하게도 그밑 「시맨」 바닥에 수라장을 이루고 말았다. 깨진 화분조각에 긁히어 「미스터」배의 바른손 등에는 피가 흘렀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고급화초들의 잔해(殘骸)를 잠시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 보았다. 온실안의 밝은 형광등은 그의 벌렁거리는 목젖을 비추고 있었다. 막상 깨고나니 그 자신도 좀 안된듯한 표정이 스쳤다. 그것은 나의 착각인지도 몰랐다. 그는 다시 아랫입술을 깨물고 깨진 화분 하나를 다시집어 산산조각이 나도록 메다꽂고 발을 굴리며 짓밟았다.
무언가하고 몇발자국 다가가서 보았더니 맨 먼저 동댕이치던 난초화분 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귀하게 여긴만큼 그는 잔인스럽게 짓밟고 일종의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반쯤 입을 벌리고 눈만 크게뜨고 숨이 목깃에 찬듯이 말을 못하고있던 어머니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애, 「미스」양이 왔다』
「미스터」배는 흘끗 나를 돌아보고도 면구스런 표정은 안했다.
그는 자기 한 일에 대해서 당당히 할만한 일을 했노라 하는 얼굴로 내 앞으로 오더니 산책이나 하자고, 나를 데리고 문 밖으로 나섰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나는 일부러 시침을 떼고 물었다.
『낮에 약속해 놓고 딴 소리를 하잖아?』
『아버지 말이에요』
『오늘 낮 현재까지 상무자리가 비어 있었거든, 근데 딴 논팽이를 갖다 앉혔지 뭐야! 남들은 다아 제 자식을 갔다가 부사장도 시키고 전무도 시키고 일부러 사장에 앉히는 수도 있단 말야』
『그만한 사정이 있으신거 아니야요?』
『나를 미워하는 사정 밖에 없어』
『친 아버지시죠?』
『물론이지』
『그럼, 미워하실 까닭이 없지않아요?』
『미워하지 않는다면 왜 그는 나를 중역에 앉히지 않고, 남을 앉히는거야?』
『「미스터」배는 아직 젊으니깐, 좀더 경험을 쌓으라는 뜻이 아닐까요?』
『아버지의 두 눈에는 나에 대한 미움이 가득차 있어!』
『……………………』
『…그가 나를 미워하면, 나도 그가 미울 뿐이야. 그러나 법률상 애비의 재산은, 자식이 상속하기로되어 있으니, 그것만은 어쩔수 없을꺼야. 설마 황천길에 사장자리와 재산을 짊어지고 가지는 못하겠지.』
「미스터」배는 최후의 승리는 자기에게 있다는듯이 일종의 쾌감이 서린 고소(苦笑)를 메마른 입술에 담고 있었다.
『「미스」양, 내가 사장될 날도 그리멀지 않았어. 그리니, 걱정하지 말어. 아버지는 혈압이 높거든 그만하면 알겠지? 내일이라도 당장 저세상 사람이 될지 모르는 거야.』
「미스터」배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희망에 찬 표정으로 말한다.
『그런 생각, 양심에 가책 안돼요?』
나는 뻔뻔스런 그에게, 나도 뻔뻔스럽게 물어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뭐, 양심으로 돈번줄알아? 양심이란건 쓰레기통에나 들어가는거야 모든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되는거야』
그는 거침없이 이렇게 말하며 담배 한대를 피어물고 푹 푹 연기를 뿜어댔다.
여드름자국이 몽키어 부스럼 치른 자국같이 울퉁불퉁한 그의 얼굴피부는 어딘지 불결감을 느끼게 했으나 막대한 재산의 상속권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는 어딘지 아직도 무시못할 존재로 보이니, 돈의 힘이란 위대했다.
(이녀석과 손을 딱 끊지 말고 적당히 구슬러 두었다가 상속하거든, 결혼해서 호강이나 해볼까?)
나는 나대로, 「미스터」배가 말한 소위 그 현실적인 사고를 남몰래 하고 있었다.
한 삼십분 쯤 거닐다가 그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니 열한시반이 가까 왔다.
양부는 무엇땜에 늦었느냐고 샅샅이 알고파 하는걸, 과외공부를 핑계하여 적당히 대답을 하고는 나는 아까의 그 꿍꿍이 속을 가슴에 품은채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돈에 현혹되지 않으리라는 얼마전까지의 나의 깊은 반성도 소용없이되고 다시 돈의 빛깔은 나의눈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인간적으로 「미스터」배를 존경할 수 없고 사랑도 전혀 느낄수 없다 하더라도, 막대한 재산이 그 모든 「마이나스」를 「카바」하고 남음이 있었다.
호강하고 싶은 욕망 그것은 인간에게 특히 여성에게 강한 유혹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진실이고 양심이고 그앞에는다 흐릿해진다.
그러한 어두운 생각을 남몰래 담아둘수 있는것도 인간의 가슴속임을 나는 깨달아본다.
그 후, 「미스터」배는 회사에 나왔으나 전보다 더 일에는 불성실하며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적이 많았다.
저녁에 퇴근 시간에는 대개 「데이트」를 청했다. 어떤 때는 과외공부 시간이 늦을것 같았으나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저녁식사도 같이 하였다.
그는 언제든지 고급 「레스또랑」으로 안내했다. 한번은 그가 들고 나은 고급 「카메라」를 파는것을 보았다.
눈치가, 있는 물건을 팔아서 용돈을 쓰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재산을 믿고 돈 아까운것을 몰랐다.
한 열흘쯤 지난 날 아침 「타이프」를 한참 치고 있을때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뜻밖에 진호였다.
아버지가 급성 폐렴으로 입원하셨다하여 어제 휴가를 얻어 집에 돌아왔는데, 경과가 좋아 오늘 저녁에는 부대로 다시돌아가니 퇴근 무렵에 어디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나는 난처했다. 요즘 퇴근 후 「미스터]배와 다방으로 식당으로 같이 다니는것이 거의 일과 같이 되어있었다.
기차시간을 물으니 저녁 일곱시반이라 하길래, 6시반경에 역에서 만나자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퇴근시간이되자 「미스터」배와는 차만 마시고, 집에 급한 일이 있다고 속이고, 서울역으로 택시를 타고 달렸다. 가는동안, 내가슴에 숨기고있는 검은 모퉁이와 양심이 갈등을 일으켰다. 진호에게 미안한 생각이 치밀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정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진호를 만나자 반갑게 대했다.
내가 도착한것은 일곱시 경이라, 이미 개찰이 시작되고 있었다.
진호는 아버지의 병의 경과가 좋은 것을 퍽 기뻐하며 자기대신 가끔 병원에 가봐달라는 부탁만 하고 총총히 홈으로 나가버렸다.
진호의 그 뒷모양에서 나는 아버지의 병환을 걱정하는 자식의 알뜰한 모습을 엿본듯 했다.
개찰구 앞을 떠나 표파는 옆을 지날때 막 기차표를 사가지고 돌아서는 「미스터」배의 아버지와 마주쳤다.
『「미스」양 아니야?』
그는 우울한 얼굴에 가냘픈 미소를 나에게 보냈다.
『어디 여행하세요?』
『음, 요새 내자식 여석과 자주만나나?』
『네에』
『그럼 우리집에 가거든 내가 여행갔다고 한마디 일러줘! 몸이 좀 나빠서 조용한데 가서 정양을 좀하려고 가는거야』
『선생님 댁 조용하시던데요?』
『우리집은 내병을 돋구는 지옥이야, 그눔 내자식놈은 내가 속히 죽기를 바라고 있지! 그눔 보거던 내가 죽더라도 단돈일진도 바라지말라고 일러둬! 나는 이미 유언장을 써놨어. 나의 재산은 전국 고아사업에 전부 기부하기로 했어』
「미스터」옹기는 그의 아들이 보이던 것과 비슷한 일종의 괘감이 서린 쓴 웃음을 입가에서 담고 개찰구로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