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錄(록) (19) 독일인의 생활주변
빈부차 없는 독일
멸치젓 · 육회가 있는 곳
도로변에 빨래널면 경찰행
파출소는 눈안띄는 뒷골목
발행일1966-03-20 [제511호, 3면]
내가 하숙하고 있던 「아파트」 주인 할머니는 전쟁 미망인이었다.
제2차대전때 남편과 자식을 잃은 비극의 주인공같은 과부 할머니였다.
나는 그 할머니의 시중을 받아가며 독일생활 주변을 뒤져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연금으로만 사는 그야말로 가난한 독일 할머니였다.
그러나 그들에겐 빈부의 차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가난한 살림 속에도 냉장고가 있고 세탁기가 있다.
미국에서도 느낀 일이지만 백만장자의 식생활이나 가난한 농부 또는 연금만으로 사는 전쟁미망인 집의 식생활이 똑같다.
아침이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커피」와 「토스트」 정도의 가벼운 식사들을 한다.
독일사람들의 식사는 점심이나 저녁때도 검소하다. 아마 구라파 여러나라 중에서 가장 형편없이 검소하게 먹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까지 든다.
자기의 비극적인 운명을 신앙적인데에 의지하고 사는 이 과부 할머니는 저녁때마다 내일 아침 몇시에 일어나 식사를 들겠느냐고 묻는다.
『좀 고단해서 8시15분경에 들겠어요.』
그 할머니는 그이튿날 정밀한 시계처럼 정각 8시15분에 방문을 두드린다.
『네 들어오세요』
할머니는 우렁찬 목소리로 『굿모닝… 토마스』하며 악수를 청한다. 약간 「악센트」가 독일식으로 강렬하긴 하지만 나처럼 서툰 영어를 곧잘한다.
악수도 얼마나 힘있게 하는지 약간 내 손에 아픈기까지 느낄 정도다.
시간 잘지키는 독일사람, 정렬적인 악수를 하는 독일사람 이 사람들은 조국의 재건을 위해 검소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
「뮨헨」은 맥주로도 유명하지만 「쏘세이지」로도 유명하다. 수10종의 「쏘세이지」가 있다.
점심때가 되면 「쏘세이지」집에 들어가 빵과 「쏘세이지」를 사가지고 먹는다.
그집에서 그냥 앉고 먹는 이들도 있지만 시간을 아끼느라고 사들고 나와 길가면서 먹는 사람도 어지간히 있다.
이태리 사람들처럼 다식(多食)하지도 않고 불란서 사람들처럼 미식(美食)할줄도 모르는 그들이었다.
이 독일땅에 와서 멸치젖 통조림을 발견한 것과, 식당에서 쇠고기 날회(육회)를 (양념은 없이 오리부기름에 버부렸기 때문에 제맛은 나지 않았지만) 발견한 것은 큰 위안거리였다.
그들은 도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두 습관적으로 열쇠생활을 하고 있ㄷ.
자기 「아파트」를 일단 나와 문을 닫으면 자동적으로 잠기게 되고 다시 바로 들어갈려도 열쇠를 사용한다.
『두드리라 열리니…』한 성경말씀에 기인되는 것일까.
노력없이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데서 온 생활풍속일지는 모를 일이었다.
한국 유학생인 송창진씨(현재 한국은행 본점근무=김명학 박사의 사위)는 독일의 「아파트」생활의 일면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새로 유학온 어떤 아가씨가 말이죠. 글쎄 「아파트」 3층에서 창문을 열고 손수건의 먼지를 털다가 혼난 적이 있어요.』
그 아가씬느 손수건을 턴 다음엔 양복도 털 생각이었는데 맞은쪽 「아파트」 사람이 주의를 주는 사람에 중지를 했다는 것이다.
공중도덕도 이정도면 공동생활하는데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빨래도 함부로 창밖에 널지 못한다.
도로변이 아닌 곳에서만 헝요된다. 만일에 도로변쪽 창문밖으로 빨래를 널었다가는 경찰취제대상이 된다.
길을 걸어다니면서 이상스럽게 느껴진 것은 경찰파출소가 눈에 잘 안띄는 일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뒷골목에 눈에 안띄게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도시미관을 위해 빨래를 널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이라던지 평화도시의 인상때문에 경찰서나 파출소의 건물을 눈에 안띄게 해 놓은 조치같은 것도 색다른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