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감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분노의 정이다.
분노는 사랑과 대조가 되는 감정이다.
사랑을 「신에 대한 사랑」 「이상(理想)에 대한 사랑」 「육체에 대한 사랑」으로 나눈다면 분노도 역시 「신의 분노」 「명예심에서의 분노」 「기본적인(生理的) 분노)로 가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통일, 융합, 연속이요 분노는 분열, 독립 비연속성이라 하겠다.
분노는 미음(憎惡)의 정과는 다르다.
분노와 증오를 혼돈해서는 안된다. 모든 분노는 돌발적으로 그 성질도 순수하고 단순하며 자연성인 것이지만 증오는 습관적이요 연속적이요 정신적인데 있다.
우리는 노하기를 피하기 앞서 미움의 정을 멀리해야 한다.
사랑의 신은 인간에게 언제나 의로움이 짓밟혔을 때 천지 이변이 벌로써 대중앞에 분노의 신으로 나타낫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과 불의에 대해서 노할줄을 알아야 한다.
자녀의 잘못과 악에 대해서도 노할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미움이 없는 분노라야 한다.
『의인이란 분노를 아는 자』라 했다. 마치 신이 「아담」과 「노아」나 「소돔」에서 노하듯이… 그러나 십자가상 제물로 자기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듯이!
우리는 노할줄도 알고 분노를 누를 줄도 알아야 한다.
분노의 대부분은 정확힌 사리판단을 혼한시키는 기분적이요 생리적이며 신경성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원인(공복, 수면 부족 같은)을 피해야 한다.
작은 일로 생기는 것은 작은 일로 막을 수 있으나 작은 일도 일단 터지고 나면 생각이 미치지 못한 큰 화를 만들 수 있다.
또 분노를 진정시키는 최상의 수단은 시간이다. 순간적인 충격을 받을 때 호흡을 깊이 하고 시간을 늦추면 늦춰질수록 이런 생리적인 사건은 아주 약해지는 법이다.
오늘의 사회는 인간을 신경질로 만들고 말았다 이것이 또 상습화 되어 마침내는 본래의 성질을 잃고 분노와 초조가 혼합해서 분노와 증오의 구별을 애매하게 했다.
분노는 그 인간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 개인의 독립인격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독립 인격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순절의 막바자에 서서 신의 분노와 신의 사랑 속에서 축복을 받으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가지 더 말해둘 것은 인간은 남에게서 무시되었다고 느꼈을 때 가장 화를 내는 법이다.
여기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自信)을 갖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사실 자신을 갖는 사람일수록 온화하고 위엄을 지니고 있다. 가끔 우리는 상대방의 분노를 막기 위해서 자기의 우월성을 나타내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 하겠다.
尹空(兒童心理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