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錄(록) (20) 유태인 학살한 곳
「나치스」죄악상 폭로하는 「닥하우」박물관은 붐비고
학살당한 영혼 위로하는 성당 · 반성의 집도 있어
발행일1966-03-27 [제512호, 3면]
수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곳이 있었다… 나는 일부러 돈을 새겨 「닥하우」란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뮨헨」에서 약 40분동안 기차를 타고 또 30분동안 버스로 가면 「닥하가」란 조그마한 마을이 있다.
『이곳이 제2차대전 말엽에 유태인을 수십만명 집단 학살한 곳입니다.』
『이런 곳이 또 딴데 있읍니까?』 나는 마치 영화에서 포로수용소 장면을 본때와 같은 가시철망의 마을을 보면서 의아스럽게 안내원에게 말을 건넸다.
『물론 전쟁중에는 여러군데 있었죠. 그렇지만 연합군이 진주하기 전에 모두 불태워 버렸는데 이곳만은…』 연합군의 기습작전으로 그대로 학살장소가 보존되어있는 유일한 장소란 것을 알았다. -높은 씨멘트 담장위에 철망이 걸려있고 뜸듬이 감시초가 있었다.
『저 철조망도 그냥 철망인줄 아슈?』
『아니 그럼 뭐란말이요?』
『고압선이죠. 유태인이 만일 탈출했다가는 감전이되어 즉사하게 되어 있는 장치죠』
『정말 잔인하군요』
『잔인요? 그정도 갖고 무슨 잔인입니까.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정문으로 들어가기전에 지붕도 없는 반월형의 돌건축들이 있었다. 현대적으로 설계된 이 건축이 억울하게 학살당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독일 사람들이 지어놓은 성당이라 했다. 미사드리는 제단이 있었고 미사 참례하는 사람들이 꿇을 수 있는 잔디가 곱게 깔려 있었다.
약30만명이 학살당했다는 이 고장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꿇는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있었다. 독일사람들도 이 행렬속에 많이 끼어있었다.
『박물관으로 되어있죠』
피로 물들인 이 고장을 박물관으로 삼아놓은 까닭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원 세상에! 독일 「나치스」의 죄악상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구경을 시키다니…』
나는 얼마 안가서 그들 자신의 죄악상을 스스로 반성하기 위한 「반성의 집」으로 삼는 의도를 알고 머리가 수루려졌다.
문안에 들어서니 수십평의 벌판 속에 단층으로 된 간이주택이 줄지어 서 있다.
이 집들은 모두 유태인을 죽이기 전에 일시 수용한 곳이었다 (지금은 동독에서 피난온 사람들의 수용소로 사용하고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피난민을 수용한 곳은 새로 칠을 하여 깨끗이 단장되어 있었지만 그중 몇채는 유태인이 수용되었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씨멘트벽은 온통 낙서 투성이었다. 이 낙서는 보통 흔히 보는 낙서와는 너무나 다른 낙서이며 일종의 유서에 속하는 낙서일 수 밖에 없었다.
손으로 썼다기 보다 온 생명을 쥐어 짜가지고 쓴 조각이며 그림이며 글이었다.
씨멘바닥을 손톱으로 긁어놓은 알아볼 수 없는 글씨 속에서 그들의 운명을 한탄하고 「나치스」를 저주하는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죽기전의 몸부림.
『이곳이 이른바 피의 골짜기란 곳입니다.』
지금은 잔디밭처럼 되어있는 곳인데 뚜껑안 덮은 큰 도랑같은 곳을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여기에 유태인을 세워놓고 총으로 쏘아죽였는데 나중엔 총알이 아깝다고 해서 한거번에 여러명을 내세워 집단 사격을 해서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까지도 파붇은 곳이어서 「피의 골짜기」란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였다.
마침내 총알을 함부로 낭비해선 안된다 하여 까스실에 집어넣어 한꺼번에 수십명씩을 주였다. 가스실 밑바닥에는 가스가 들어가는 구멍이 있었고 그들이 가스중독이 되어 몸부림치다 완전히 숨이 끊어지는 것을 감시하는 조그만한 들창이 있었다.
『원 이렇게 잔인하게 죽였어요?』
『사실은 이 「나치스」의 이같은 만행을 이고을 농민들도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수십만명을 학살한 것이란다.
그러나 일반 독일국민들도 구경거리로 삼을 곳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방으로 와 보세요』 천정은 대들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바닥에는 냉면집의 국수누르는 나무틀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설마 이들에게 한국의 냉면을 만들어 먹이지는 않았을테고…
『아니 저건 또 뭡니까?』
『저 나무틀들은 모두 목을 매어 죽이는 기구들이랍니다.』
한국의 한증막 같은 것도 눈의 띄었다.
『저 커다란 아궁이는 뭡니까?』 유태인을 산채로 화장을 시킨 아궁이란다. 벌렸던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그 다음방으로 가니 유태인들의 시체를 짜서 기름을 만들어 비누를 만들고 머리털로 섬유를 만들은 곳도 있다. 독일 사람들도 이 잔인무도한 「나치스」의 죄악상을 보면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있었다.
이 학살장소 마지막 코스에는 갖가지 학살장면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고 맨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독일어 · 영어 · 불란서어로 씌여있었다.
『독일 겨레에 앞으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고 또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