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爭(전쟁)은 敗殘兵(패잔병) 돌아보지 않는다
收容所(수용소)살이하는 歸順兵(귀순병), 避難民(피난민)의 오늘
그 어느 원수를 의식하고 오욕의 폐허에서 다시 돋아나기 보다는 차라리 생명의 불가피한 회복으로 전쟁의 상처는 겉으론 씻은듯 아물어져버렸다. 그러나 과연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서 그 쓰라린 기억은 한갓 흘러간 악몽에 불과한 것일까? 열다섯돌을 맞는 그 유월의 어느날, 이곳 행여자 수용소엔 격전이 휘몰아간 전장터에 흩어진 탄피(彈皮)처럼 버려진채 목숨이 바로 그 상처가 되어버린 전쟁의 생령(生靈)들이 끝없이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18세때 고향 평양시가에서 인민군으로 붙들려나온 33살난 김중복(도마)란 청년은 이젠 뼈만 남은 몸둥이를 조그맣게, 땅에 붙이고 누워 아직도 소년과 같은 크고 애틋한 눈길은 지난날의 이력을 되새길 기력도 의욕도 없다는듯 그것은 또한 깊은 체념속에 조용히 잠겨 있다.
싸움터에서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고 수용소에서, 이남으로 풀려나왔다.
그는 타향의 거리를 날품으로 연명하며 헤매다가 결국, 폐를 앓게 되었다.
그는 굶주림과 오한과 신열에 부대끼면서 근로자 합숙소에서 눈을뜨는 아침마다 오늘은 어디가면서 그곳을 쫓겨나지 않을 몇푼의 돈을 벌것인가하는 집념으로 어느때 고향의 부모를 한가히 그리며 슬퍼할 겨를조차없이 15년이란 세월을 병고속에 연명해 왔노라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영화회사의 70원짜리 「엑스트라」 모집에 응모하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갔으나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앞가슴을 벌려도 결국 그의 병고에 여윈체구와 파리한 몰골로는 딱지를 맞고 돌아설때의 절망과 설움을 잊지못하겠노라 했다.
▲여인은 동자없는 움푹꺼진 왼편눈과 희부영게 흐린한편 눈을 굴리면서 이즈러진 수줍은 웃음을 연신 웃고 있다. 1·4후퇴때 남하하다 어머니를 잃었을 때의 나이 17곱, 고향은 함흥이라 했다. 부산에와 남의 식모살이 할때는 그런대로 부지런히 일해 돈도 모으고 19살 나던해는 어떤 군인과 약혼까지 했더란다.
그런 어느날 심부름가던 길가에서 차에치어 한켠 눈이 먼데다가 반신불수가 되었다.
겨우 발자취를 떼어 놓을수 있을때 주인집에서 봇짐을 들고 정처없이 거리를 나섰다. 굶주림과, 노숙, 학대속에서 불구수용소를 전전하다 희미하게 보이던 한켠 눈마저 몇해전부터 영영 멀었다.
마치 안개처럼 한꺼번에 몰려드는 설움에 가슴이 막히는 듯 그녀는 앞이 답답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노라면서 자꾸만 고개를 내저었다. 『몸이 죽도록 아프고 세상이 이처럼 캄캄한데 손을 내어밀어도 잡히는 손길하나 없으니… 우리 엄마가 보고싶어, 죽고싶어 땅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고 싶다』는 그의 꺼진 자위에선 눈물이 비오듯 번져나고 있었다.
▲월남후 결혼하여 두 아들을 가진 62세난 미카엘씨는 우연히 심장병으로 눕게되어 젊은 아내의 날품팔이론 4식구 연명조차 어려웠다. 어느날 모 교회기관에서 주는 강낭죽을 얻으러 갔다가 거절당하고 그 기관장을 만나 애걸했더니 죽은 여분이 없어 못주지만 안받아도 될 사람들이 죽을 얻어가니 그런자를 찾아내어 알으켜주고 대신 얻어가라고 했다. 굶주림이 어떻다는걸 알 까닭이 없을 그 사람들, 가난하나 사람의 참 양심조차 알아주지 않는 그곳을 돌아나와 거리에서 현기증을 일으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길로 어느 순경의 도움으로 이 수용소에 온지 2년, 그 어린 처자에게로 돌아갈 길은 영영없을 것인지 그는 혼자말 처럼 중얼거린다.
▲괴뢰군 ×연대로 「로케트」포 부사수였다는 인민군 귀순병은 퍽 건장한 체격에다 어딘지 낙천적인 표정조차 띠고 있다.
지원했던 한국군에서도 제대한 후 그는 단신에다 적수공권이된 이제, 부패와 물질만능의 이 사회에서 진정한 인도주의와 양심만으로 산다면 어느정도의 가능성과 어떤 결과가 오는지 스스로 체험해 보리라고 결심했다.
당시 그도 한구석에 끼어 살고 있었던 피난민수용소 사람들은 거의가 철도에서 석탄이나 물자를 훔쳐내어 생계를 이어갔고 순경에게 들키면 돈으로 무마하고 다시 도둑질을 하는 것이어서 이런 부정의 연쇄작용은 이 사회에선 결국 상하를 막론코 그로선 대동소이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던 수용소가 화재로 전소된 후 그는 어느 산중에 들어가 이제는 사람이 먹지 않고 얼마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가 체험하기 위해 굶어죽은 인체의 실험대상으로 자기 몸을 기증한다는 통보를 모의과대학에 내고 37일간 굶었다.
그는 단식중에 구약 성경의 하박국선지의 신에 대한 질문, 즉 이세상은 왜착한자가 박해 받고 악인이 형통하며 인간이 어족(魚族)과 같이 악인의 그물(전쟁)에 휩쓸려 죽는가 하는 의문을 묵상했다는 것이다.(그는 프로테스탄이다) 어느날 형사 하나가 그 굴을 찾아와 자기는 가톨릭신자라면서 사람이 자기의 생명을 자의로 끊으면 죄가된다면서 그를 이 수용소에 실어다 놓고 가버렸다. 그는 이제 또다시 이 전쟁의 원혼과 가난의 질곡 속에 끼어 그가 가진 신의 섭리에 대한 회의를 어느정도까지 깨달았는지 알 수 없으되, 어쨌든 이제는 남의 구제의 대상이되어 차라리 낙천적으로 그러나 겸손되이 살아간다면서 허탈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전쟁이 빚어낸 무고한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이 어찌 이에서 그칠까? 수십만의 외롭고 불쌍한 목숨이 오늘도 어느 그늘진 곳에서 물을때없는 그 죄악의 고난을 스스로 감당하고 있으리라.(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