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 되면 영국 사람들은 수선화(水仙花)와 갓난 새끼양과 달걀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가 그린 부활절 「카드」를 이웃에 보낸다. 이런 것을 본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건지 아니면 다만 봄맞이(迎春)만을 즐기고 있는건지 라고-.
부활절도 성탄절처럼 일종의 이교도(異敎徒)의 축제가 되어버려 다만 새옷을 입고 「초코렛」 빛나는 장식용의 달걀을 만드는 구실로 저락(低落)된 사실은 슬픈 현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봄맞이 관습(慣習)도 그리스도교 신자에겐 영적(靈的)인 의의(意義)를 지니고 있다. 새옷은 부활의 신비에 몰입(沒入)된 『새로운 인간』에 대한 외적(外的) 표현이며 양의 새끼는 하느님의 고양(羔羊) 즉 『땅에 떨어져 썩은 씨앗』만이 꽃피우는 생명의 꽃들임을 상기(想起)시키고 수선화의 황금빛 나팔은 마지막 날에 『나팔소리가 들리고 죽은 자들이 육신(肉身)을 취하여 영생으로 부활하리라』(코린토전서 15·52 참조)는 성경말씀을 회상케 한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는 죽음과 지옥(임보)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덤을 깨치고 부활하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수난시계(時季)의 모든 음악 감상실과 라디오의 「프로그램」은 온통 헨델의 「메시아」가 넘쳐흐름으로써 영국사람 중에서 가장 이교적(異敎的)인 사람조차 성금요일과 부활절이 지닌 진정한 의의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이같은 사실을 확신하기에 앞서 나 자신 『나는 나의 구세주가 살아계심을 알고 있다』라는 저 유명한 「소프라노」 「아리아」의 활기찬 사락을 타고 그 황홀경에 몇번이나 도취되었던가.
종교개혁을 즈음하여 가톨릭의 여러가지 훌륭한 관습(慣習)들이 많이 소멸되고 말았으나 성목요일에 영국 여왕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戒命)」을 기념하여 의연품(義捐品)을 베푸는 관례와 성금요일에 십자가 형상을 넣은 빵을 굽는 풍속은 아직도 남아있다.
영국의 성금요일엔 은행도 쉰다. 그날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일터에 나가지 않고 자유로이 기구해야 된다고 그들은 믿고있다.
많은 교회 특히 대부분의 성공회의 교회에서는 주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가지의 마지막 말씀에 대한 강론을 틈틈히 들어가면서 낮12시부터 오후3시까지 3시간에 걸쳐 기구를 드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또다시 일터로 나가는 토요일이 지나고 마침내 부활주일 날이 밝아오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빼앗겨 버린듯한 일종의 허탈감과 공허감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이 고조(高潮)됨에 따라 타락한 많은 사람들까지도 어느듯 교회로 나와 「알렐루야」를 함께 노래함으로써, 그들의 맘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희미한 신앙의 빛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또한 많은 교회와 가정, 특히 성공회의 교회와 가정에서는 성탄절의 말구유와 꼭같은 「부활절 동산」을 만든다. 부활절동산은 세계의 십자가를 꽂아놓은 「갈바리아의 산」과 그 주위에 조그마한 화단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산기슧에는 입구의 돌을 옆으로 굴러낸 하나의 무덤을 파놓고 그 안에서 빛이 흘러나오도록 장치해둔다. 그러나 천신들의 상(像)이나 부활한 그리스도의 성상(聖像)은 설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 축소판(縮小版) 「갈바리아」산은 무덤자체와 그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신앙은 저 비어있는 무덤에 대한 확고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수산나 양거(大邱가톨릭 技術學院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