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자 「타임」지는 검은 바탕의 표지(表紙)에 붉은 글씨로 「신은 죽었는가?」라는 표제를 게재(揭載)하고 있다. 「타임」지의 종교란(欄) 편집자 존 J. 엘손씨는 표지에 게재된 제목으로 6「페지」에 걸쳐 현대의 신관(神觀)들을 기술하였다. 엘손씨는 이같은 신이 죽었다는 개념은 이미 신의 존재를 모독적으로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이나 자유 사상가들의 것이 아니라 이제 신은 죽었기 때문에 신없는 종교를 제창하고 있는 신학자들의 신관(神觀)이라고 말한다.
「타임」지는 작년 10월 22일자호에서도 이러한 신학자들에 대한 논설을 취급한 바 있다. 그러나 엘손씨는 또한 인간의 모상(模像)으로된 신은 이미 인간에게 매력이 없는 것이니 현대 종교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 확립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그룹」의 신학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타임」지에 게재된 논설은 75명이나 되는 신학자들의 사상을 각각 한 두개의 문장으로 인용하여 어처구니 없이 압축시켜 너무 단순하게 취급하였다. 예를들면 신의 존재를 증언한 성 토마스의 말을 마지막의 각주(脚註) 정도로 덧붙였으니 오해를 유발시키기 쉬운 논설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동 논설은 이어 현대세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참된 신을 알기에는 지극히 곤난한 문제가 가로놓여있으며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철학과 신학 연구에 일생을 바친 신부들로서 우리는 세계에서도 가장 독자 수가 많은 잡지의 특집에다 막연하고 오해를 유발키 쉬운 논설들이 집중적으로 많이 실려지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플 뿐이다.
위대한 사상가의 저작들 중에서 한 두 구절을 인용해 낸 것을 보고 어떻게 그들의 사상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성 토마스로부터 칼 라너에 이르는 거물급 가톨릭 사상가들은 물론 칼 발트와 같은 훌륭한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논설에는 실제로 난처한 두가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문제는 신의 성격과 종교(비 가톨릭교)에 있어서의 신의 중요성에 관한 문제이다.
수년동안 프로테스탄 신학사상은 점점 약화되어 처음에는 삼위일체 교의(敎義)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게 되고 이제 와서는 신의 존재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같은 사상은 종교가 지닌 사회적인 면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집중시켰다. 전세계를 통해볼 때 내세(來世), 즉 천국에 대한 가치관이 흐려졋을 때까지 프로테스탄 교회가 좋은 일을 이룩한 것은 굉장하지만 그일을 추진시킨 원동력은 개인과 현세의 희망에 바탕을 둔 일이 허다함을 알 수 있다.
몇몇 과격한 프로테스탄 신학자들은 착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신을 망각하는 종교를 만들자고 제외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일치의 결과가 이같은 신학자들에게도 신에 대한 새로운 신앙과 희망이 제공될 것을 진정으로 기구드리는 바이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물론 프로테스탄 신학자들에게도 관계되는 둘째문제는 신에 대한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용어를 찾는 문제이다. 과도한 과학적 사고방식과 현대철학이 지닌 다양성 때문에 신학자들은 대부분의 인류에게 같은 뜻으로 통할 용어들을 마련하지 못했다. 진실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까지도 신인동형(神人同形)에 대한 개념을 설명할 때 결코 신학적인 설명에 근본바탕을 둔 용어를 쓴 적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쓰이는 철학용어를 그대로 사용해왔다. 백발노인이 하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지상(地上)을 내려다보고 있는 신을 그린 그림은 전능하신 성부를 대충 표현하려는 단순한 기도(企圖)에 불과하며 「하나」 「전능」 (全能) 「전지」(全知) 등등의 일반용어는 이제 일반적으로 봐서 철학적 바탕이 결여되어 있다.
가톨릭 대학에서까지도 철학과정이 개편돼가고 있으며 비가톨릭 대학에서는 철학을 역사적으로 개관(槪觀)하고 있다.
현대 지성인은 자기가 생각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광범한 여러가지 사실 중에서 하나를 찾아볼 수 있는 능력을 희생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들이 직면해 있는 실제적인 문제는 모든 진리들 중에서 가장 명백한 진리, 즉 신의 존재라는 진리를 가지고 현대인간에게 어떻게 접근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馬 요안 神父(西江大學長 哲學博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