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聖召=VOCATION)는 진정 신분(身分)에 관한 문제이지, 결코 어느 사람의 직업(職業)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선택에 의하여 교사나 변호사는 될 수 있으나 제 자유로 사제나 수도자는 될 수 없다. 군인이던 남성이 성소를 받아 신부가 되고 여의사이던 여성이 수녀가 된 사실은 성소의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성소(聖召)라 함은 천주님에 의한 일정한 목적에의 고위한 「부르심」인 동시에 「봉헌」이며 「초대」이며 그리고 자유로운 「선물」이다. 성소는 지상과 영원에 있어서의 특별한 목적에 이끄는 각자에 대한 천주님의 의지 표시(意志表示)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고로 인간은 어느 신분 -사제, 수도자, 부부생활-독신자-을 선택할 적엔 천주님의 뜻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이리하여 인간은 지상에서의 순조로운 생활을 통하여 영혼이 구원의 도착점까지 무난히 「꼴인」하게 된다. 이는 성소를 넓은 의미로 고찰한 것이다.
좁은 의미로서 일상 통용되는 성소란 엄밀히 말해서 「사제」 성소와 「수도」성소를 일컫는다. 『너희는 세속에 속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희를 세속에서 간선하였노라』(요왕 15 · 19)하신 주님의 부르심은 어느 초자연적이고도 색다른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소에 있어 대표자격인 성 바오로 사도는 『나를 견고케 하여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나니 대저 나를 당신 「일군」으로 가릴때 나를 충실한 자로 여겨주셨음이니라』(티모테오전 1 · 12)고 갈파하며 자기 성소에 대하여 송구럽고도 고마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과연, 성직(사제 또는 수도생활)에의 성소의 은혜가 그토록 숭고한 특은이며 존귀한 최상의 선물이란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더 말할 나위없이 영원한 최고인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몸소 천주 성부로부터 받으신 성소의 한 몫을 인간에게 분여(分與)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이 성소의 은혜보다 더 큰 선물이 있었다면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리라.
당신의 직속 대리자이며 당신의 왕국의 일군으로 삼으려고 하시는 자들에게 최상의 보배를 하사하심이 어찌 당연지사가 아니랴. 주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항시 어느 청년 남녀들을 부르신다. 「와서 나를 따르라」고. 신앙심이 두텁고 타인에 대한 봉사의 정신이 왕성한 자는 「예」 하며 선뜻 나서게 된다.
성소는 초자연적인 견지에서 고찰하기는 하되 그 본질(本質)엔 두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으니, 즉 천주님이 성신의 내적 자극에 의하여 직접 부르시는 것일까, 혹은 성소는 단지 교회 장상(長上)에 의한 외적 소명(VOCATIOEXTERNA SIVECANONICA)에 불과한 것인가 -전자는 성소를 소위 성신의 인력(=ATTRAIT)에 직접 의존한다고 주장하는데 비하여 후자는 이를 부언하며 필요한 개인적인 성격만 갖춘다면 교회 장상의 부르심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오늘의 교회의 태도는 후자를 지지하고 있다. 즉 성소는 결코 「개인의 일정한 영감(靈感), 또는 사제가 되라는 성신의 초대」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사제는 혹은 수도생활에의 감정적 경향은 필요없는 것이고, 오직 올바른 의향과 적응성(適應性=ADAPTATION)만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도대체 「적응성」이란 무엇일까. 이는 성직의 요구를 알뜰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에 관한 역대 교종의 훈령과 교회의 정신을 보면 사제직에의 경향은, 양심의 내적 초대나 감각적 매력이 있는가를 보는 것보다 차라리 사제직 지원자에게 그 신분에 적합한 온갖 신체적 정신적 소질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바꿔 더 자상히 말하면, 오로지 천주님께 대한 봉사와 영혼의 구원에 대한 열망을 갖고, 사제직을 동경하는 동시에 확고한 신앙심과, 시련을 극복하고 난 정결과, 충분한 학식을 습득한 자는 분명히 천주님으로부터 사제 성소를 받은 자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제직의 성소가 없다는 징조는 무엇일까. 의향이 올바르지 못한 부모의 권장에 못이겨, 현세적 이익과 출세를 목적으로 성직을 택하는 자, 신심생활을 싫어하고 학문을 게을리하고 구령에 대한 열성이 없고 습관적으로 순명과 규칙을 범하는 자, 특별히 육욕에 기울어져 오랜 경험으로 이를 극복할 수가 없는 자, 정규의 과정을 만족하게 마칠만 한 두뇌가 부족한 자 등은 분명히 성소가 없는 자이다.
이런 자는 신학교에서 빨리 퇴거하지 않으면 훗날 더욱 곤란과 불행-자기 구령에도 큰 위협을 당하게 되며, 신학교 지도자들은 이들을 잘 식별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제직이나 수도생활에 적합한 모든 조건을 갖춘 자라 하더라도, 교회 장상의 부르심에 응할 의무가 있지만, 이에 응하지 않더라도 죄까지 범하는 것은 아니다. 성소는 어디까지나 초대이며 권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허나 이에 응하지 않고 거부하는데 있어, 도덕적으로 가치가 없는 비열한 동기로 거부할 경우에는 그 결과로서 성총을 상실하고 자기 구령에도 위험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끝으로 가정환경은 성소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어 진실한 그리스도교적 가정생활, 다소 엄격한 분위기 기도생활에 젖은 가정에서 대다수의 사제나 수도성소의 은혜를 받게됨을 말해두며 앞으로 우리 나라에도 「세라」회원들의 활약이 크게 요구된다.
金正鎭 神父(聖神中學校 副校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