譯苦餘恨(역고여한)
「教皇(교황)」 「教宗(교종)」의 語源(어원)·語意的(어의적) 概念差(개념차)가 一般大衆(일반대중)에 주는 가톨릭敎會觀(교회관)의 差異(차이)
발행일1965-07-04 [제477호, 4면]
「言」이 不正하면 「意」가 不順하고 意不順하면 事不成이라는 말은 특히 飜譯에도 該當한다. 「言」이란 WORD, 「意」란 CONCEPTION, 그러니까 譯語가 不正하면 「事」가 즉 全繡의 文章이 不成 즉 完成될수 없다. 사실 어느 外國語 의 單語 한字의 正譯이 나오기까지, 거의 끝이 난 原稿를 묵히는 동안이란 豫想한 稿料 때문에도 정말로 괴롭다. 더구나 詩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苦譯이 活字化가 되고 나면 다시는 뜯어 고칠수도 없으니 남느니 餘恨이다.
자기 자신도 誤譯투성이면서도 남의 誤譯이 눈에띄일때도 자기가 저질은것처럼 괴로운 것이 특히 번역업자의 心情이다. 그러나 그럼 괴로움은 어느 私席에서 한번 放談하면 吐하는 紫煙과 함께 사라지고말 따름, 다시 자기 자신의 괴로움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꼭 풀어야할 한가지 餘恨이 이번에 풀리기 시작했다. 「敎皇」이냐? 「宗敎」이냐?는 單語가 그것이다. 「교황」이라고, 要理問答에서 배운대로만 해석하면 그만이나, 制限될지언정 全廢될수없는 漢字로 「敎皇」이라고 쓸 때는 POPE의 原語가 PAPA인데 何必이면「皇」으로 번역된 것이 어찌된 일인가 再考아니 할 수 없다. 公用되는 우리나라의 工課朋에는 틀림없이 「교종」이 「교황」과 함께 倂用되어 있으며 日本서는 「敎皇」만이, 中國서는 「敎宗」만이 專用되고 있다.
先敎宗 요안 23世께서는 당신이 代表하시는 聖敎會를 全人類의 「慈母兼 恩師」 MATERET MAGISTRA로서 自稱하셨고, 「地上의 平和」는 당신의 우리 바깥까지 包含하여 全人類에게 보내신 사랑의 편지였다. 그 사랑의 편지를 받은 人類(勿論 온갖 非가톨릭까지 包含해서)가 그 發信人의 직함이 何必이면 「敎皇」으로 나타나는 地域은 아마 우리나라와 日本밖에 없을 것이다. 日本의 社會서는 「天皇」과 同等으로 尊待할 必要上 「皇」字가 미상불 長点이 있을 것이나 우리나라의 社會서는 果然 그러할까?
「敎皇」을 英語로 強譯하면 RELIGIOUS EMPEROR이 될는지? 옛날 敎宗의 境地가 하나의 國家領土에 못지않았을 時節, 그 國境內에는 地上的인 「皇」字도 當然했을 것이다. 그러나 POPE의 永世不變의 本質은 아닐 것 같다. 現代야말로 POPE의 本質이 開明되어야할 時機다. 가톨릭의 積極的 社會參與가 內外兩面으로 要求되고 있는 우리나라서 特히 그렇다.
「宗」字는 「宗統」 「宗孫」 「宗家」, 時間, 空間 兩方으로 中心을 뜻한다. 「皇」字는 「帝」 「王」 「君」 「皇帝」 「天皇」 등등을 想起케 한다. 그뿐이랴? 人類歷史上에서 庶民의 사랑의 對象이 될만한 「皇」이 몇이나 되는가? 그렇다면 各國에서 「거룩하신 아버지」 즉 HOLY FATHER라고 敬愛를 받는 POPE가 何必이면 우리나라의 社會에서만 가톨릭敎의 皇帝 즉 「敎皇」으로 敬畏를 받아야할 것인가? 漢字에 特有한 CONCEPTION과 NUANCE를 認識할 때 「敎皇」은 아직도 漢字社會인 우리나라에서 敎而遠之의 對象이다. 그 반면, 「教宗」은 宗家를 中心으로 尊重하는 家族社會인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敎宗」이 親而近之의 對象이 되지않을까?
「敎宗」이라는 呼稱이 POPE의 威信을 格下시킨다고 力說하는 先輩의 그心情이야 나도 反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威信이 俗世的인가? 靈性的인가? 世俗이 本質인가? 靈性이 本質인가? 必然的으로 隨伴하는 世俗的인 面을 輕視하거나 排除하자는 것이 아니라, 本質的인것을 먼저 생각 하자는데 不過하다.
入敎月淺한 나의 身邊에서 日常 접촉중인 未信者들에게 나는 언제나 가톨릭大辭典을 引用해서의 本質을 說明할 때, 「皇」字가 빚어낸 誤解가 풀리는 것을 보고 있다. 번역자로서 나의 除恨을 풀어주신 朴道植 神父께 감사하면서 총총 이만 擱筆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