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변화를 좋아한다. 「빠름」을 좋아한다. 그리고 직접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불변의 진리, 보이지 않는 것, 영신적인 것, 초월적인 것, 더군다나 절대적인 것은 현대인에게 귀찮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와같이 예민한 감각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신(神)의 문제가 또 다시 심각해졌다. 법망(法網)이 귀찮은 방타아가 혼자서 「법」(法)을 말살해 버리고 제혼자 안심하듯이 현대인은 신을 죽이려 하는가? 백년전에 이미 신을 죽인 독일의 철학자 니이체가 과연 현대인의 구세주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주간지 「타임」지는 4월 8일자 호에서 「신은 죽었는가?」란 표지 제목을 내걸고 종교란에서 파격적인 장문으로 이 문제를 달리 취급하면서 이 문제는 현대에 있어서 신앙인이거나 무신론이거나를 막론하고 다 같이 애태우는 뼈저린 문제임을 서두로 하고 특히 초현대를 달리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이 문제로 해서 적지않게 고민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타임」지에서 들추어낸 문젯점은 지성위주로 서툴게 증명했던 재래식 신개념, 즉 신은 만물의 창조주요만물의 존재원인(存在原因)이라는 개념으로는 부조리하고 악이 세력이 너무나도 강한 현대를 설명하기에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무신론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뜨르의 정부로 세평있는 샤르트르 동조자인 프랑스의 여류 철학자 시몬 드 보봐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모순 덩어리의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창조주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기가 훨씬 더 쉽다』는 것이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의 인구를 통털어서 볼 때 두 사람 있으면 한 사람은 「종교가 아편」이라고 윽박아대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으며 세계인구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세아 및 남미의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정의하고 있는 신을 모르고 났다가 죽는 현실은 현대신학자 및 종교사상가들을 자못 괴롭히는 문제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같은 뜻에서 사신론(死神論)을 주장하는 몇몇 무신론학자들을 「타임」지는 소개하면서 오늘날의 종교 문제의 문젯점을 제시한다.
신(神) 문제가 현대신학의 근본문제로 등장하게된 오늘날 통이 큰 인간, 요안 23세의 정신과 더불어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가톨릭 교회의 일대 쇄신작업과 프로테스탄의 조직강화 등 현 종교계의 활발한 움직임을 하고 있음을 상기 시키고 오늘의 미국 종교계의 교회상태는 전성을 자랑하던 중세기의 프랑스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을 「타임」지는 강조한다.
폴스터 루 해리스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미국인구의 97%가 신을 믿고 있으며 1964년 미국교회 전국위원회이 집계에 의하면 1.5% 약(弱)의 인구 증가율에 비하면 신도 증가율은 2%이며 신자들의 44%가 주일예배를 보는 실천적인 신도라 하니 좋은 성적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연애해보지 못한 어린이가 사랑은 업사도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예수회의 머레이 신부는 미국 국민은 근본적으로 신을 존경하는 국민이라고 확신하면서 『나는 종교심이 없지만 애들한테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개탄했다고 하며 이들을 루터교 의사가 마르틴 마티는 「실천적인 무신론자」라고 통박한다. 이와같은 현상은 프로테스탄 신학자들이 자기 신자들에게서 느낀느 슬픈 현상으로 그 원인은 주로 왜곡된 신개념(神槪念)에 기인한다고 한다.
교회에서 지금까지 가르쳐온 신은 우리만물의 기묘한 창조주요 사람에게 상주기 보다는 벌주는데 더 관심을 가진 판관이라는 「이미지」를 주었고 세상은 눈물의 계곡이요 따라서 모든 쾌락은 죄스러운 것이라는 세계관을 가르쳐왔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이미지」의 신개념으로는 예수호 신학자 신부의 표현대로 「익명의 신 현존(現存)」을 체험하고 있는 현세계의 심각한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왜 살고 있느냐? 나는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등 절실한 삶의 심부(深部)에서 그리고 우리 마음 속 깊은 생활체험지대에서 생활한 신을 발견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상이 「타임」지에서 제기한 신에대한 현대의 문제점이다. 이 기사가 나오자 국내 저명 일간지 「동아일보」에서 재빨리 「신은 죽었는가?」란 「타임」지의 제목을 실리면서 「미국의 屍神운동」이란 부제를 붙여 본기사 내용의 본의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한 기사를 낸 것은 유감된 일이다.
뉘라서 신의 존재를 인간지성으로 완전히 증명하겠는가? 뉘라서 신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겠는가? 신의 존재는 인간의 삶이 절대적으로 요청하는 요청이요 세계가 뜻을 갖기 위한 절대적인 요청이다. 절대적 요청이기에 우리가 수학증명과 같이 일일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재 종교사상가들이 모색하는 것이 바로 이 절대적인 요청으로서의 신이요 「타임」지가 제시한 문젯점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기에 「타임」지는 토마스 아뀌나스의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면서 결론을 한다. 『우리는 신이 이러 저러한 분이 아님은 알 수 있지만 신이 어떤 분이라는 것은 알 수 없다.』
白敏寬 神父(가톨릭大學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