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쾅 대승(大僧)
당년 44세인 쾅 승은 월남에서 가장 유능한 정치적 전략가 중의 한사람. 그는 월맹의 「쾅 빈」에서 출생, 「후에」시의 한 불교학교를 나온 후 「투 담」사(寺)에 입사(入寺)했다. 당시(1945년)에 수립된 호지명의 월맹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구성된 「불교도연맹」에 가담한 바 있고 1963년 5월부터 11월에 걸쳐 감행된 「디엠」정권 타도 「데모」를 지휘하다가 동년 8월 미국대사관에서 두달동안 피신했다. 1964년 1월 월남내 여러종파의 연합체인 「불교연맹」이 형성되자 그의 일파가 세력을 장악, 그는 동 여맹 최고회의 의장이 되었다.
현재 「사이공」의 「안 쾅」사(寺)가 공식적인 본부이지만 그의 정치적 지배지역은 「후에」시와 중부월남 일대이다. 그는 가장 반가톨릭적인 인물이면서도 「구테타」 등 위기에 부딪치면 사제복으로 가장하고 미국대사관에 뛰어든다고. 쾅 승의 동생 민은 공산월맹의 수도 「하노이」에 있는데 그의 신분은 분명치 않다. ]
△ 탐 차우 대승
1921년 월맹 「닌 빈」 지방에서 출생, 가톨릭이 가장 성한 「파트 디엠」 부근의 한 사원에 입사, 가톨릭 사제들과 친하다. 1952년 전국 「불교연맹」 부의장으로 「하노이」에 갔다가 1964년 「사이공」으로 탈출 극단론자로 알려진 그는 「재(在) 월남 월맹 불교도 연맹」의 의장이며 최근 불교도들의 「데모」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행동을 반대하여 「하노이」 방송과 「해방전선」(베트콩) 방송은 그를 미국의 주구(走狗)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 티엔 민 대승
1921년 월남 「쾅 트리」에서 출생, 지난 4월에 구성된 「불교투쟁위원회」의 위원장이다. 쾅 승(僧)과 같은 학교를 졸업, 꼭같은 사원에 입사한 그는 월맹의 호지명과 관련했다는 혐의로 불란서군에 체포된 바 있고 1951년 「후에」에서 중부월남 불교연맹의 부의장으로 피선, 1963년 「디엠」정권 타도시에는 서독(西獨) 여행중이었다.
△ 탐 지악 대승
당년 50세인 지악 승은 월남 종군승단(從軍僧團) 단장(중령)이며 「하노이」에서 출생, 195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꾜」 「와세다」대학에서 철학공부, 10년간 체류하는 동안 유도를 배워 1963년 귀국했다. 1965년 1월 반정부 활동을 이유로 직권을 정지당했다가 동5월에 복권(復權)된 바 있으며 현재 「사이공」에다 유도장을 마련, 지도한다고.
△ 호 치악 대승
월남 종군승단의 부단장(소령)인 그는 당년 36세로 반정부 「불교투쟁위원회」의 부의장 캄보디아 국경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캄보디아 태국 일본 및 세일론으로 여행, 그곳의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바 있으며 신문과 잡지에 글을 많이 쓰는 그는 군중의 앞에서 곧잘 열변을 토하는 정열가이다. 【사이공 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