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3) 蘭草(난초)와 채송화 ④
발행일1965-07-04 [제477호, 4면]
『퇴근시간이야! 일어나!』
「미스터」배는 시계를 보더니 같이 나가자는 뜻으로 말했다. 나에게는 아직 일거리가 남아있었다.
『…이것들 마저찍어야 해요!』
나는 「타이프」서 손을 멈추지않고 옆에 놓인 원고들을 가리켰다.
『아니, 그걸 다찍어야 해? 내일 찍어!』
『그렇게 안돼요.』
『얼마나 시간 걸려?』
『한 삼십분가량 걸릴거야요!]
「미스터」배는 멋적은 듯이 묵묵히 맞은편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하나 둘 먼저 빠져나가고 한 십오분후에는 「미스터」배와 나와 단둘이가 남았었다 『「타이프」 끝나거던 나하고 「드라이브]나할까? 기분전환으로』 내가 잠시 「타이프] 친것을 추리는 동안 그는 가까이 와서 말한다.
『7시부터 아이들, 과외시간이 돼서 그럴짬이 없어요.』
『그까짓 과외공부 가르치는거 집어치워!』
『그럴수 없어요.』
나는 다시 부지런히 「타이프」를 계속했다.
찍는 동안에는 그도 가만히 있더니, 끝나기가 바쁘게 또 내옆으로 다가왔다.
『「드라이브」 안할테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도 생각해야 잖아요!』
『「미스」양, 오늘은 어쩐지 좀 냉정한데?』
그는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일부러 뿜어대며 말했다.
『내일 노는날이니까 내일 같으면 좋지만 오늘은 안돼요.』
『「미스」양은 나에게 돌아오는 재산이 한푼도 없는줄 아는 모양인데 전혀 빈털털이는 아니라는걸 알아야해! 먹고 살만한 돈은 법적으로 나에게 오게되어 있어!』
『그럼 좋으시겠네, 불평하실것도 없지 않아요?』
『나는 회사 사장이 되고 싶단 말야! 밥 먹기만 겨우 바래? 명예와 저위가 필요하단 말야!』
『먹지 못해 애쓰는 사람 생각해서 그거라도 고맙게 생각하시지!』
『마땅히 나한테 굴러들어올 7·8천만원의 재산이 옆으로 흘러버리는데, 배가 안 아플 까닭있어!』
반도 못핀 파고다를 내던지며 심술궂게 구두바닥으로 문댄다.
『…내일 몇시에 우리집에 올테야?』
『오전중에는 과외가 있으니깐 오후에 가지요!』
『한시쯤 와!』
그는 아직도 재산 생각에 머리속이 가득찬양, 미간을 찌푸리며, 내가 「타이프」 앞을 챙기는 동안 초조한 듯이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했다.
회사는 같이 나왔으며 명동에서 나는 그와 헤어졌다. 헤어질때 그는 불을 붙인지, 얼마 안된 긴 담배를 내던졌다. 그 앞을 너털 너털 걸어오던 늙수룩한 지겟군이 엎드려 그 버린 담배를 주었다. 지겟군은 거의 온거나 같은 그 담배를 소중한 듯이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동안 주은 담배를 고맙게 여기던 지겟군의 얼굴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지겟군이 가졌던 그러한 기쁜 표정을 「미스터」배의 얼굴에서는 일찌기 한번도 보지못한건만 같았다. 그의 집의 호화찬란하던 정원에서나 「호텔」 식당에서나, 자가용차에서나 늘 그의 얼굴에는 회색의 그늘이 끼어있었다.
당장 먹을 것이 아쉬운 지겟벌이하는 사람에게 비하면, 그는 먹는데는 걱정이없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복을 느끼지를 못했다. 먹고 살 걱정을 덜어준 친아버지에 대해서도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짐짓, 원한과 미움으로 속을 태우고 있을 뿐이었다.
이튿날 오전 열한시까지 과외공부를 마치고, 그길로 시장에 들러 과일을 좀 사가지고 진호의 아버지가 입원하고 있는 K외과 병원을 찾아갔다.
진호의 어머니는 내가 문병간 것을 무척 반가와 했다.
병자도 수술후 축 늘어진 창백한 얼굴 피부에 소박한 미소를 담고 나를 바라보았다.
병실은 독방이 아니고, 여러 환자의 침대가 두줄로 비좁게 늘어있는 공동 입원실이었다.
침대도 접었다 폈다하는 낡은 군용 「뱃드」였다.
병자의 베개 머리에는 분홍과 흰색과 자주색의 삼색 채송화가 핀 화분이 하나 놓인 것이 나의 눈을 끌었다. 채송화의 가련하게 핀 모습은 침침한 병실안에 애틋한 활기를 띠워주는 듯 했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인 환자들은 서로 다정히 얘기도 주고받고 있었다.
진호 어머니는 채송화 화분옆에 세워두었던 편지 봉투를 집더니 웃으며 나에게 보인다.
『진호한테서 인편으로 보내온 편지야요』
펴보니 맹장염쯤 큰 병이 아니니 안심이되지만 혹시하는 생각에 염려도 된다는 진호다운 자랑스런 심정이 쓰여있고 부대에서 자기가 가꾼 채송화 몇 송이를 후방에가는 친구편에 보낸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편지 봉투를 받아 소중스러이 먼저 자리에 세워놓고는 자식의 마음이나 보는듯이 만족스런 얼굴로 채송화에 눈을 준다. 환자도 고개를 돌려 화분을 바라본다.
내 눈에도 그 채송화는 다소곳이 생명의 불을 켜고 약동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한 삼십분 쯤 앉아 있다가, 병실을 나온 나는 「미스터」배네 집으로 향했다.
육중한 철문을 들어서니 넓은 정원의 녹음은 시원해보이고 울긋 불긋 핀 꽃들은 아름다왔다. 약속시간 보다 좀 일찌기갔으므로 「미스터」배는 잠깐 나가고 없고 그의 어머니만 전날과 같이 창문을 열고 부자유한 반신을 창가에 의지하며 내다보았다.
나는 전날 수라장을 이루던 온실을 들여다보았다. 전에 꽉찼던 화분들은 삼분의 일도 못되었으며 휑하니 빈곳이 많았다. 남은 화분도 어떤것은 깨져있고, 대부분의 화초는 물기가 없어 시들거리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이 아끼고 자랑하던 난초는,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화초가 모두 말랐어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뒤에가서 식모에게 물주게 있는데를 물어서 물을 담아가지고 왔다. 메마른 화초들에게 막 물을 주고 있을때 「미스터」배가 돌아왔다.
『언제 왔어?』
『지금요.』
『그까짓것은 내버려 두고 이리좀와…』
그는 물주게를 내손에서 뺏아놓고, 자기 어머니가 있는 창가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어머니, 지금 내가 아버지 비서한테 알보았더니, 내일은 온천장에서 돌아온데요!』
『돌아오셔도 집에는 안들어오시기 쉬운거니 「미스」양을 시켜서 집에 좀 곧 오시도록 연락해라!』
『「미스」양, 들었지! 어머니가 좀할말이 있으시다고 아버지를 꼭데리고 오란말야!』
『전화 거시지 그러세요!』
『소용없어, 아버지를 데리고 올 사람은 「미스」양 밖에 없어』
나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다시 온실에 돌아와서 물이 그리운 화초들에게 물을 주었다.
화초들은 겨우 생기가 난듯하였으나 어쩐지 누추한 병실에서 본 채송화에 비하면, 모든 화초가 검은 회색에 잠겨 있는 듯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