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32) 녹음 속의 오솔길 ⑤
발행일1966-05-01 [제517호, 4면]
『무슨 일이야?』
하고 알랭 로베르가 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는 소년의 눈길과 그의 거무튀튀한 얼굴에 나타난 늙은이 같은 주름살을 보고 말을 계속했다.
『이봐, 버섯 따러 가는데 사람이 무슨 필요아, 진짜야! 높까지가서… 자, 가자!』
그들이 철창문을 막 나가려고 하는 참인데 멀리 뒤에서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알랭 로베르! …어! 알랭 로베르, 면회다!…』
소년은 그 자리에 오뚝 발을 멈추고 얼굴이 하이얘졌다. 그 시간이 결국 이르렀다. 「그들이」 온 것이다. …우체부가 처음으로 화보를 가져왔던 날도 이 모양으로 그를 불렀었다. 그 때부터 꼭 한달이 지난 오늘 그의 부모들이 온 것이다…….
『올라프, 잘있어.』 하고 말을 시작했으나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올라프, 잘있어, 네 생각은 잊어 버리지 않을께…』
그는 올라프를 돌아보지도 않고 돌아섰다 꼬마는 아직 잠간 기다렸다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혼자 남아 있기를 기다린 것이다. 왜냐하면 울면 얼굴이 온통 보기 흉하게 되어 남들이 웃기 때문이다.
알랭 로베르는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대로 많이 돌아서 잔디밭으로 향해 갔다. 일종의 공포가 그를 엄습하여 한 발자욱 떼어놓을 때마다 커갔다. 그리고 그는 구역질이 나는 것인지 혹은… 마려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배를 달래기 위하여 그의 부모들이 곁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미국제 자동차며 새 「트렁크」며 그들이 제일 처음으로 한 말을 생각했다….
프랑쏘아즈 여대장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여대장을 자기 어머니와 혼동했고 그 여자를 떠냐야 되리라고 실감한 적은 없었던 까닭이다.
배만 빼놓고 그는 자기 생의 완전한 기쁨의 첫순간을 맛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수난을 더 연장하기 위하여 숲속으로 또 한바탕 돌아서 걸었다… 그는 성난 짐승처럼 문을 마구 두드리는 심장을 달래기 위하여 멈추어서서 가슴 가득히 공기를 들여마셔야 했다. 그는 숨을 내쉬고 마지막 나무가지를 헤치고- 그의 양부모 드루 내외와 마주 서게 되었다.
그들은 검은 옷에 흰 「샤쓰」를 입고 얼굴이 벌개서, 거북살스럽고 어리둥절 하고 동정을 자아내는듯한 태도로 거기 서 있었다. 많은 후회, 약간의 가책이 그들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한 것이었으니, 이 계획은 백번이나 깊이 생각하고 스무번이나 미루고 미리 어떠리라고 상상해 본 적이었다.
남편은 끈으로 동여 매듭 투성이가 된 「트렁크」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소년의 눈에 익은 것이었고, 부인은 작은 꾸러미가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알랭 로베르는 몸이 텅 빈 것 같이 느꼈다. 벌떡 자빠질 것만 같았다.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웃고 있었다.
『꼬마야, 잘 있었니?』
『뭐하러 여기 왔어요?』
(목구멍을 지나오면서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 쉰 목소리의 나머지를 어디서 찾아냈던 것인가?)
『이 근처에 올 일이 있었다. 그래서 꼬마를 가서 안아주어야겠다고들 말한거다! 아무려면, 너는…』
노인은 신이 나서 석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꼬마」가 깜짝 놀라고 기뻐서 얼굴이 납덩어리처럼 된 줄로 알고 있었다.
『가요! 뵈기 싫어요!』
『뭐라구?』
그들은 -둘이 합해서 백 다섯살- 그들의 생활이라는 침묵과 고생과 공포의 세계를 지닌채 명절차림을 하고 손에는 며칠전부터 준비해온 선물을 가득히 들고 거기 서있었고 그 앞에는 그들에게 그렇게도 못살게 굴고 그들을 일찌기 사랑한 적이 없는 그 고약한 열한살짜리, 애비없는 자식, 갈보의 아이가 서있었다.
『보기 싫어요!』
눈을 똑바로 뜨고 머리를 곤두세운 바로 증오의 얼굴이었다!…
『갑시다!』
농부는 늙은 아내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이걸 모두 도루 가져가는 건 아니겠지요?』하는 듯이 꾸러미들을 가리켰다)
『거기다 모두 쏟아놓고 돌아갑시다!… 자아!』
그 여자는 망설이고 있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그 져아에게서 바구니를 빼앗아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을 차디찬 풀 위에 흩어놓았다.
그의 얼굴은 아주 하얗게 되어 있었다. 검은 콧수염이 달린 그의 얼굴은 부고장 같았다. 분노로 하얗게 된 것인가? 아니다. 슬퍼서 그런 것이었다. 아내는 자기 남편을 잘 알고 있었다. 산양 「치이즈」 사과, 꿀병 따위 선물이 땅에 흩어지는 동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고 조그맣게 뇌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1937년 박람회때 이래 처음하는 여행, 열차 안에서 눈을 서로 꿈쩍이던 일,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서 짓던 웃음 -이것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이다… 발을 돌이키기에 앞서 머리를 다시 쳐들었을 때는 꼬마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조심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원, 더 두 늙은이들!』
차를 운전하던 두블레씨(소년심판원검사대리)는 사실 자동인형 모양으로 걸어가던 농부와 그 아내를 겨우 피했다. 그러나 라미씨는 반지 두개가 끼여있는 흰 손을 펴고 몸을 돌려 뒷쪽 유리를 통해 그들의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늙진 않았오, 두볼레, 늙은이들이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 뭐란 말씀인가요? 판사님.』
라미씨는 지었던 미소가 사라지면 깊은 주름살이 남는 얼굴을 그에게로 돌렸다.
『차를 멈추고 그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건데 그랬어.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자아, 일요일인데 좀 뉘셔야지요!』
검사께서는 매정하게 말했다.
검사대리는 기분은 좋으나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금발에다가 산속의 호수만치나 푸르고 차거운 시선을 거의 주홍빛 속눈석이 지키고 있었다. 티없는 양심과 규칙적인 습관과 호가신으로 보호되어 오래도록 늙지않을 얼굴이었다. 그에게 비하면 라미씨는 나이보다 십년은 더 늙어 보였다.
라미씨는 다시 돌아다 보았다. 두개의 검은 그림자가 겨울 속을 벌써 저만큼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게 그 「유명한 탈출로」 아닙니까?』
두블레씨니는 화제를 바꾸려고 물었다. 그는 『두블레씨, 당신은 적어도 그애들을 보내는데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고는 그애들에게 대해서 요구를 할 수 없단 알이요』하는 판사의 말을 들어 소년 「센타」에 같이 가기로 했던 것이다.
『좋습니다.』
그러나 몹시도 편견에 사로잡히고, 그렇게도 자신이 없고 시간 관념도 없고 법관직에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이 사람이 농부들의 비극을 가지고 자기의 일요일을 망쳐놓아도 좋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것이 저 「유명한 탈출로」 아닙니까?『3
『지금은 거의 탈출로가 아니지! 나는 옛날식의 「떼르느레」 창 창살문은 자물쇠로 잠그고 하던 「떼르느레」를 알았오. 사실 그때는 매해 4분의 1이나 되는 소년이 도망했어요. 지금은 창살문이 언제든지 열려 있는데, 도망가는 소년은 백에 하나꼴도 안된단 말이요…』
『거의 정상적인 소년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겠이요. 그러나 타락한 소년들은….』
『두블레 그 단어는 절대로 쓰지 말아요! 「타락된」이라고 말해요.』
『그렇다고 하십시아. 그렇지만 어떤 애들은 아예부터 희망이 없다는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라미씨느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만 한가지 중대한 징조는 인간적인 열이 없는 소년, 동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 즉 주기도 받기도 원치 않는 아이요… 사람이 얼굴에 미소를 보낸 일이 없는 아이…』
그가 어떻게 깊은 한숨을 쉬었던지 검사대리가 「백미터」로 그를 살펴볼 정도였다. 그는 판사의 얼굴이 세로 파여있는 것을 보았다.
『직업상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저런 지경에까지 갈 수가 있을까?』
하고 그는 진심으로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