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33) 녹음 속의 오솔길 ⑥
발행일1966-05-08 [제518호, 4면]
『어떤 아이들은 출두할 적에 보기 흉한 표정을 지니고 있읍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 표정이 그 애들을 미리부터 판단하는 겁니다!』
『「얌전한 표정」은 말이요.』
라미씨는 격한 투로 말했다.
『아주 일찍 생기거나 영영 생기지 않거나 하는거요!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거요. 허지만 남의 이소를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년은…』
『아암,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판사님은 그애들을 전부 어려운 처지에서 구해내기를 바라실 수는 없읍니다. 판사님,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세요! 저 나무들을 보십시요.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는 약한 가지들을 잘라줍니다…. 판사님의 「센터」에서도 그렇게 해야됩니다. 』
『「우리」 「센터」에서는』
하고 조용히 정정하고 나서 판사는 말을 이었다.
『소년들에 대해서 우리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어요! 당신이 직접 교육자들에게 물어봐요… 와줘서 고맙소.』
하고 판사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검사대리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제가 뭘 구경하게 되려는지 미리부터 알고있읍니다. 「샤워」, 공기가 잘 통하는 방, 이다음에는 그애들이 다시는 먹어보지 못할 것 같은 식사! 판사님에는 거기서 아이들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습관을 길러주고 있는 겁니다… 저는 반대예요!』
『「샤워」를 해버릇한 소년은 설겆이통 위에 있는 수도 꼭지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씻게 될거고 하얀 침실이 그리워서 해마다 제 방을 새로 칠할거요, 그리고 축구에 열중하면 무엇하러 주일날을 대폿집에 틀어 박혀 지내겠오?… 난 지금 아주 평범한 대답을 하고 있군』
판사는 머리를 바른 어깨쪽으로 기울이고 눈을 감으며 계속했다.
『아주 평범하기도 하고 우리에게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대답이지, 움막집, 실업, 굶어 죽기 알맞은 급료가 언제까지나 남아 있어야 한다는 걸 전제하는 것 같으니 말이요!』
『그건 판사님이 상관하실게 아닙니다!』
두블레씨는 퉁명스럽게 말을 막았다.
『각자가 할일이 따로 있읍니다! 저희들의 할일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재판을 하는 것이지,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할일은 그런 개혁을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요!… 우리가 할 일은 또 법정에서는 그들을 「죄인」이라고 부르더라도 희생자들을 벌하는 것을 용인치 않는 거요! 그 소년들을 구해서 사람을 만드는 것,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거기서 나갈 자격이 있는 아이들을 구해 주는것, 그것뿐입니다!』
『당신이 천주성부가 돼서 그렇다는거요, 두볼레?』
『그렇지만…』
『간수 두명 사이에 끼어 무서워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소년을 한번 쓱 보기만 하거나 일건서류를 한번 주욱 훑어보고서 선인과 악인을 구별할 줄 안단 말이요?』
『그 소년들 때문에 걱정을 마세요.』
검사대리는 건방진 투로 말을 이었다.
『그애들은 썩 잘 거짓말 하고 꼬아바치고 꾀를 부리고 할 줄 안답니다.』
『사실 그애들은 순경들과 첫번 접촉할 때부터 좋은 스승을 만난 셈이지!』
『그 아이들은 평생을 두고 저희들이 말하듯이 「자기방어」를 할 줄 알겁니다!』
『그게 누구의 탓이요?…』
라미씨는 검사대리의 팔소매에 손을 올려 놓고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뿐 아니라, 당신은 잘못 알고 있는거요… 우리가 지나가는 이 숲을 보시요…』
『아까시아지요.』
『아까시아의 같은 나무요, 두블레, 이 나무들은 무방비상태에 있는 동안만 가시가 있는거요…』
검사 대리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눈꺼풀을 반쯤 내리깔고 그 노란 속눈섭 사이로 행길을 내다보는데 그의 얼굴 전체가 모멸적이고 무뚝뚝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는 침묵 속에서도 그대로 계속 되는 이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판사를 알지 못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편안하고 존경 받고 건드릴 수 없는 직업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도로 다니는데 자기는 인도로 다닌다는 인상을 늘 주는 직업… 언권을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하는 직업, 자기가 들어가면 거기 있는 사람이 모두 일어나는 직업, 법관과 교수의 잇점과 명예를 겸하는 직업. 신부의 직책과 비슷하면서도 거기 딸린 희생은 하지 앟아도 되는 직책! 천주의 권능을 맡아가지고 있고 사람의 목숨과 자유의 주인이면서도 아무런 위험도 없는 직책! 큰 휴가와 성탄과 부활절에 또 휴가를 가져, 천주 성부와 소학생을 동시에 겸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 어마나 좋은 병합인가! 회중시계를 꺼내서 앞에 놓을 수 있는(시간의 함정에 빠져 들지 않기 위해서) 직업중의 하나. 손톱이 깨끗하고 손짓이 명확하고 날짜가 꽉 짜여있는 직업, 언제나 유리한 쪽에 있을 것이 틀림없는 직업, 강자의 편에, 인사를 받는 쪽에 있을 것이 확실한 직업,
두블레씨들이(법관직의 유일한 불편을 보상해주는) 조그마한 가산과 재판소에서 두발자국밖에 안되는 「쌩미셀로대」의 「아빠르뜨망」과 함께 대대로의 아들에게 넘져주는 것이 이것이다. 지구가 돌아도 아무 상관 없었으니 가장 중요한 것이 까딱 없는 까닭이었다. 경죄부 검사대리인 그에게는 날과 공판과 해가 똑 같이 즐겁게만 지나가는 것이었다. 자전거 도둑은 석달, 구타와 상해는 5만 「프랑」, 재버은 배로! 그리고는 서류 석장에 서명을 하고 약명을 써넣고…. 세상의 모든 소년들이 그러듯이 두블레씨는 반찬가게 놀이를 했고(『그러니까 3십 「프랑」입니다! 다음은 어떤분 차례지요?』), 조그만 초와 커다란 책을 가지고 시부 놀이도 했고 서명을 하고 바늘못을 끼우고 도장을 찍고 하면서 우체국 직원 놀이도 했었다.
그런데 이 세가지 놀이가 매력있고 경건하고 복종하는 환경속에서 동시에 계속되는 것이었다… 피의자, 증인, 방청인- 모두 면도도 잘 안하고 눈이 번들번들하며 살아가는 중에 만나지 않았으면 좋을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제복을 입은 간수들과 목책이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의 입을 틀어막으면,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가버리고 다시는 그들을 보지 않게되는 것이었다! …인생이 이와같이 취임에서 정년퇴직으로, 경의에서 영직으로 조용한 강물처럼 한단 한단 아주 규칙적으로 올라가는 계단모양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매정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심을 시키는 시계탑이 있는 재판소의 계단과 같은 계단 모양으로 흘러갈 수 있었을 것이다 .왜 두블레씨를 의논의 여지가 있는 재판권이고 또 가장 확실한 원칙을 다시 문제삼게하는 소년심판원 검사대리로 임명해서 이 강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것인가? 그것도 하필이면 사법 풍자화(諷刺化)의 사도요 주창자인 라미씨 곁에 말이다… 이건 참말이지 너무하다! 부들레씨는 라미 판사를 생전 알지못했으면 좋을걸 그랬다고 생각했가. …그러나 지금은 자기의 평가를 잃게 되리라는 전망이 그에게는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라미씨의 논거에 말로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이 눈길, 그의 미소, 그의 침묵까지도 옳은 것이었다. 그래서 검사대리는 처음으로, 그들이- 그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늘 그렇게도 행복스럽게 살아온 그 논리와 문귀의 세계, 그 서류의 도시가 어마어마한 눈속임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묻게 되었다. 이제는 그 세계에서 행복스럽게 사는 것으로는 만족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옳은 말을 한다고는 자신만만하지마는 진리를 말하는지는 도무지 자신이 없이 갑자기 말을 다시 꺼냈다.
『요컨대, 거짓말장이고, 도망군이고, 도둑놈이고 심지어 살인자이기도 한 저 소년들이 모두 「떼르느레」에서는 정상적인 아이들보다도 더 즐거운 생활조건을 누리고 있는 것이군요! 이건 범죄장려금입니다!』
『당신 말이 옳소』
라미씨가 말했다.
『그애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요!…가장 중요한 조그만 것 한가지만 빼놓고는 말이요. 바닷 속에도 우리가 살기에 필요한 것이 다 있는 모양이요. 불행히도 공기가 없을 뿐이지!』
『그래 「떼르느레」에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무엇이 없는 겁니까?』
『「떼르느레」와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 모든 「센타」에 없는 것은 그들 가정의 사랑이요.』
『매, 모욕, 방관, 학대 따위 말씀이지요!』
『그렇소』
라미씨는 일종의 자애를 가지고 말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그애들은 그것이 모든 가정의 몫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는거요… 이런 것은, 대조적으로, 조금만 관심과 좀더 부드러운 눈길과 한줄기 미소만 얻어만 나도 기뻐서 펄펄 뛰게 만든단 말이요… 사랑… 그애들에게 다른 것은 다 안 주어도 괜찮아요』
출입문을 보며 라미씨가 덧붙였다.
『허지만 유일한 「죄」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사랑 전부를 가지지 않고 「떼르느레」에 들어가는 것일거요…』
『판사님은 사랑을 두 사람 몫이나 가지고 계십니다』
두블레씨가 괴상한 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