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4) 蘭草(난초)와 채송화 ⑤
발행일1965-07-11 [제478호, 4면]
이튿날 퇴근 무렵에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온천장에서 막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좀 만날수 있겠는가 물었더니 배사장은 좀 생각하더니 좋다고 말했다.
여섯시쯤 식사나 같이 하자면서 전날 한번 간일이 있던 R「호텔」의 식당으로 오라고 한다.
전화 속의 목소리는 꽤 컷으므로 내 옆에 지켜 서있던 「미스터」배의 귀에 들렸다.
『R「호텔」식당으로 오라는 거지?』
그의 찌푸렸던 얼굴에는 한가닥 희망의 빛이 돌았다.
『만나서 그말만 전하면 되지요?』
『될수 있으면 같이 집으로 모시고 오란말야』
『아버지와 화해하실 작정이시죠?』
『표면상?』
『음, 속으로는 화해할 수 없어, 나는 아버지가 미워!』
『진심으로 화해야지. 재산상속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청하는 화해는 무의미해요. 아버지는 곧 눈치 채실거야요.』
『진심? 흥…』
그는 코웃음을 쳤다.
『…진심이고 가짜고 화해를 하면 되는거야… 나는 아버지를 존경할 수가 없어…』
그는 원한을 되씹는 듯한 표정을 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얻는 이유를 나는 알것같애. 「미스터」배 자신이 아버지를 공경 안하니 아버지도 자식에게 정이 없는거 아냐요?』
『그건 반대야,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고 가정에 대한 화목이 없기때문에 나도 자식된 입장에 무관심 한거야』
『내가 보기에는 「미스터」배가 잘못인것 같애요?』
『내가? …천만에 이것만은 우리 집안의 하나의 비밀과 같은 일이라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얘기하지, 아버지는 20여년간 어머니와 이야기를 안한다면 그만이지…』
『왜요?』
『결혼 삼년후의 일인데 아버지는 그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거야! 어머니는 아버지의 수입이 괜찮기에 가구점에서 세간을 하나 들여놓고 비취반지를 하나 맞췄데, 그리고 돈은 아버지 회사로 받으러 보냈다는 거야… 그 사건이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는 서로 말안하는 벙어리가 된거야… 그때 아버지는 지금돈으로 치면 약5백만원 가량은 벌었단 말야! 그만한 돈을 벌었으면 장농하나 반지하나쯤 해주지 못할게 뭐란말야… 자기의 승락없이 그런것 했다고 반지와 세간값도 내놓지 않아서, 결국 세간조차도 다시 실어가고 말았어?』
『그일로 이때까지 서로 말을 안하나요?』
『음, 어머니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계셔… 그때만 하더라도 아버지는 값진 화초를 사들였어, 화분 하나에 지금 돈으로 만원가량은 되는 것을 사 놓았어… 자기는 그런 사치를 하면서 어머니에게 반지 하나 못사줄게 뭐란말야, 장농 하나 사들이게 못하는 까닭이 뭐냐 말야…』
『아버지는 이상한 기질이시군요…』
『보통이 아니지… 철저한 이기주의자지…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해서도 나는 아버지가 밉단 말이야… 어머니와 나는 벌어먹어도 그만이란 말인가? 죽은 뒤에도 재산을 우리에게 남겨주기가 아까와 고아원인지 뭔지에 다바치겠다고 하니, 정신이상인지도 모르지! 그러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공경하고 사랑을 느끼라면 「미스」양은 느끼겠어?』
『……』
나는 생각했다. 미처 몰랐던 하나의 사실이었다. 거칠고 지성이없 는 인간으로 보였던 「미스터」배에 대한 나의 지금까지의 인식은 조금 달라지며 그도 그의 입장이 있었다는것을 생각케 한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에 잠겨있던 그의 어머니의 얼굴이 단순히 병때문만은 아닌것도 알았다.
「미스터」배가 그의 아버지의 「코렉숀」인 온실의 화초들을 마구 깨뜨릴적에도 묵묵히 보고만있던 그 얼굴이 생각난다. 그리고 보면 그 병든 어머니는 깨지는 화분을 보고 일종의 복수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상한 부부 이상한 결혼도 있다!』
나는 혼자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같이 혼자 이런 감상을 짓씹었다.
거리에서 보는 젊은 부부들의 짝지어다니는 모습에도 결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더니 여기서는 어둠만이 가득차 있었다.
『…「미스」양 이따 아버지 만나거든 나한테 그런말 들었다는 내색은 하지말어! 화분을 깬것을 몹시 뉘우치고 있다는 듯이 말을 잘해! 어머니와 나를 오늘날까지 어둡게 살게한 댓가로서 돈이라도 받아야겠어. 그 돈으로 어머니와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한데서 받은 고초를 풀어야겠어!』
『………』
나는 「미스터」배의 입장에 전과 달리 깊은 통정을 느끼며 시간이 돼 R「호텔」로 혼자 갔다.
명동까지 따라오면서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애끼던 난초는 새로 화분을 사다가 살려놓았어! 그 얘기 잊지말구!』
식당에 들어서니 배사장은 와 있지 않았다.
수중에 돈이 없었으므로 혼자 음식을 시켜먹고 나올수도 없고 불안한 가운데 한 오분쯤 앉아있으니까 배사장이 들어왔다.
조금 허탈한 사람같이 그는 웃지도 않고 내 맞은편 「테불」에 앉더니 음식을 시키고는 한동안 창가의 흰 「레스·카덴」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몸이 아직 불편하세요?』
나는 물었다.
『미스」양은 자기 의사로 나를 만나자고 한거야, 누가 시켜서 온거야?』
『저 혼자 의사 야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말고 딴얘기만 해 응!』
『저는 아저씨와 아저씨 가정에 대한 일이 제마음에 아파서 오늘 만나 뵐려고 한거였어요…』
『………』
『아저씨가 소중히 여기시던 난초화분은 다시 온실에 잘 살려놨어요. 제 눈으로 보았어요. 지난날 일은 잊어버리시고 집으로 돌아가시지 않겠어요. 아드님도 이젠 자기 한일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어요!』
『믿을 수 없어! 그놈은 지금까지 내 뼈에 사모치도록 나에게 반항해온 놈이야!』
『이젠 안 그래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한테 미안하다고 그는 말했어요.』
『…흥 그놈이 생각해 보니 재산이 필요한거지?』
『재산은 일없대요. 아버지와 화해만되면 행복하데요』
『…………』
배사장은 창가의 나풀거리는 「레스 카텐」에 시선을 견준채 잠시 생각에 잠긴 그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나는 이세상은 돈이 제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돈도 소용없어, 돈없는 사람에게는 돈이 큰 매력이지만 막상 돈을 손에 쥐고 보니 그다지 만족한 물건도 아니고 거기서 행복이란 샘이 솟아나지도 않았어! 「미스」양 돈 돈 하지말어…돈? 흥, 돈이 인간에게 행복을 준다기보다 행복을 앗아가는 수가 더많지 않을까?』
배사장의 끝의 말은 나에게 들으라는 것보다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타이르는 말 같았다. 그는 다시 한동안 침묵에 잠긴다.
음식이 왔는데도 손도 안된다. 나도 먹고 싶었으나 그가 안먹기 때문에 소리 안나게 군침만 살짝 삼키며 그의 입에서 나올듯한 음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