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歐(재구)神父(신부)들이 硏究(연구) 討論(토론)한 本堂(본당)과 司牧(사목) (9) 平信徒(평신도)의 槪念(개념) - 歷史的(역사적) 考察(고찰)
발행일1966-05-29 [제520호, 6면]
근래에 와서 평신도란 말이 적극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며 그 활동분야도 대단히 넓다. 그래서 무슨 뜻에서 어느운동이 참으로 평신도사도직인지 연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며 평신도 운동의 구체적 양식을 논하기에 앞서 평신자에 대한 성경말씀과 역사적 고찰, 그리고 평신자와 세속과의 관계 등을 기반으로 삼아 평신도이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 소고해 보는 것이 좋을듯 하다.
▲구약 말씀에서 「신도」라 할때는 어느 겨레가 선택을 받은 사실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손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아 이루어진 신민(神民)이었다. (출애 19 · 16, 이사야 43 · 20 이하)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주위의 세계에서 동떨어져 다른 민족들과 대립적 상태에 있음을 뜻하고 대내적으로는 선택받은 겨레내에서,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계약을 제사로 맺도록 선택받은 성직자와 일반 교도와의 구별을 뜻하였다.
▲신약에서 「신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도 주로 선택을 받고 성화를 받은 겨레라는 적극적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즉 성서의 말씀대로 『산(生) 돌같이 신령한 집이 건설되고 하느님이 기꺼이 받으실 시령한 제사를 드릴』(베 · 전 2 · 5) 「하느님의 성전」 (코 · 전 3 · 16이하)이 되었다는 뜻이다. (코 · 후 6 · 16, 에페 2 · 10-22, 테쌀 10 · 21)
신약에서 신도란 말을 처음 사용할 때 성직자와 구별한 뜻이 아니라 성직을 포함한 모든 선택된 백성을 「백성아닌」 사람들과 구별하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물론 구약과는 달리 신민(信民)으로서의 선택이 어느종족이나 혈통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따르는 만민을 신도라고 하였다.
물론 시약의 교회내에도 목자와 양의 구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묵 20 · 28-31, 베 전 5 · 3) 3세기까지 「성직자」와 구별해서 말하는 「평신도」란 말이 많이 쓰이지 않았다.
3세기 이후 「평신도」란 말이 쓰이게 되었는데 그 유래가 그리스도께서 12종도와 다른 교도들을 구별해서 말씀하신데 근원을 둔 것인 만큼 이 구별은 신권적인 구별이다.
▲초대교회에는 교회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뜻이 강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니고 다른 영구한 세상에로 다시 태어날 사람이라는 뜻이 었다.
▲이러다가 꼰스딴띠누스가 집권하게 되자 신권국가제도하에 교회와 그리고 세속이라고 보아 오던 바깥사회가 차차 공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종래의 대외적 구별이 사라지게 되고 성무에 봉사하는 자들과 평신도와의 차이가 두렷이 나타나 복장 · 독신생활 · 특권 · 교양 등으로 구별이 두드러졌다.
더구나 6세기에 이르러 평민이 「라띤」어를 쓰지 않게 되자 학문과 예전의 유일한 용어였던 「라띤」어가 성직자들의 고유한 지식이 되어 더욱 큰 계급분열을 초래했다. 하물며 6세기 후로는 평신도를 문맹인 또는 백치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동시에 신자의 가치판단기주도 육신 · 결혼생활 및 물질소유를 얼마나 멀리하느냐에 기준을 두고 단단하는 경향이 생겨 수도생활을 영신적 생활이라 하고, 세속생활을 육체적 생활이라고 했었다. 결혼생활도 소위 색정치료제로 생각하여 완전한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것으로 여겼다.
▲ 「르네상스」의 결과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성경에서 이르는 세속이라는 것을 교회밖의 사회에서나 수도생활이 아닌 생활에서 찾을 것이 아니고 각자 자기속에서 찾을 것이라는 것, 반면에 『당신 스스로를 위해 계신 하느님』이 동시에 『세상을 위해 계신 하느님』이시고 『우리를 구하고 우리 구속을 위하여』인류역사에 참여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성직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중계를 위해 교회내에 필요한 직책이고 일반신도는 이 구속의 부르심에 자진 응답하는 교회이다. 참된 평신자는 이 지상에서 하느님께 봉사하는 사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