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憲章(교회헌장)이 가르치는 것] 第(제)5章(장) 聖性(성성)에의 普遍的(보편적) 召命(소명)
聖性(성성) 本質(본질)은 「愛德(애덕)」
平等(평등)한 恩寵(은총), 祈禱(기도) · 克己(극기) · 聖事(성사)는 手段(수단)
先行條件(선행조건)은 反省(반성) · 刷新(쇄신) · 聖書的(성서적) 生活(생활)
발행일1966-06-12 [제522호, 1면]
교회헌장 제5장은 제2 「바티깐」 공의회가 『모든 그리스도신자는 성성을 추구해 나가도록 부름을 받았고 따라서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성대하게 천명해준 것으로서 큰 의의가 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타락한 인간 본능과의 안일한 타협에 만족하려고 하는 현대 크리스챤들에게 그들의 높은 이상을 깨우쳐 주고, 교회의 쇄신과 신앙생활 쇄신의 요체를 재확인해 준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도 신자는 교회안에서 그리스도로 말이암아 의화되어 천주성에 참여하게 되었으므로 이미 거룩한 자가 되었다 이러한 본체론적인 성성은 마땅히 그리스도신자의 윤리생활에서도 보전(保全)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이 성성에의 의무는 천주께서 원하신 바로서 성경에 명시적으로 계시되어 있다.
『대저 천주의 원하시는 바는 너희들의 성성(成聖)이니라』(테 · 전서 4 · 3)
그러므로 성성의 의무는 교회안의 어떤 특수층에게만 지워진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신분 어떠한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지워진 것임이 명백하다고 공의회는 가리친다.
완전한 크리스챤 생활로서의 성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한 애덕」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 「교회헌장」은 애덕을 영적생활의 근본원리요 주임이요 완성으로서 제시하며, 애덕을 중심원리로 한 영적 생활의 체계를 잘 요약해 준다. 헌장 42항에 보면, 『각 신자는 자기 영혼안에 심겨진 좋은 씨인 애덕을 자라게 하고 결실케 하기 위해서, 천주의 말씀을 즐겨 듣고, 천주의 은총에 도움을 받아 천주의 뜻을 실행하며, 각가지 성사 특히 성체와 전례행위에 참여하고 기도와 극기, 형제들에 대한 봉사와 각가지 덕행실천을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하고, 곧 이어서 『대저 완덕의 맺음이요 율법의 완성인 애덕은 성성(成聖)의 모든 수단을 지배하고 살리고 그 목적에로 이끈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성성을 곧 완전한 애덕으로서 규정해 준 것은, 매일같이 미사참례를 하면서도 집에 돌아가서는 가족들을 괴롭히고 이웃과 싸우기를 예사로 하는 사이비 열심교우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그릇도니 것인지를 잘 나타내준다. 사실 우리 신자들 중에는 『미사참례 안했읍니다』 『첨례 궐했읍니다』 『조만과, 삼종 궐했읍니다』하고 고해를 하면서도 「애덕을 거스린 죄」에 대해서는 별로 고해거리로 생각치도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본다. 「교회헌장」은 애덕을 성성의 본질이요 목적으로, 그리고 기도나 극기나 성사참여와 천주의 말씀을 듣는 것을 그 수단으로서 제시한다.
천주를 사랑하고 그 때문에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애덕의 완성으로서의 성성은 오로지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하나인 성성이 각자의 신분이나 지위나 생활환경을 따라 여러가지로 다른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기 자기 신분에 따른 완덕을 추구하도록 부름을 받고 또한 그러한 의무를 진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 신분에 맞는 완덕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신자가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성성이 신분을 따라서 각각 다른 한혜까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성에 이르는 수단은 신분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제한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성성의 목표는 누구에게나 「무한히 완전하신 천주」이신 것이다.
우리가 수단과 목적을 혼돈하면, 어떠한 복음적 권고를 실천할 수 없는 신분에 처해있는 신자는 높은 성덕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복음적 권고는 반드시 모든 신자에게 다 가능한 것이 아니며, 이러한 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또 다른 많은 수단으로써 「완전한 애덕」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편 복음적 권고를 스스로 허원을 통해서 자신의 의무로 받아진 수도자는 거룩한 가정을 통해서 애덕을 실천할 기회와 수단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도 간과(看過)해서는 아니된다.
교회헌장 제5장은 비록 널리 부연시킬만한 자리를 주지는 못했지만 성성의 추구가 이 지상에서의 사회생활을 보다 인간다운 것으로 향상시키는데도 공헌하게된다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흔히 크리스챤의 영적생활을 현세 생활에서 유리시켜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천주께서 친히 창조하시고 당신 독생성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이 세상은 비록 사람들의 죄로써 일그러지고 추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천주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인 것이며 인류의 구원과 성성은 이 지상의 사회생활 자체를 또한 보다 더 인간답고 거룩한 것으로 변형시키게 되어야 한다.
이것은 신자 각자의 개인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과 직업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요,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생활 전체에 침투되어 직장생활 사회생활 문화생활 모두를 그리스도교적 애덕으로써 영위해 나가도록 해야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는 각기 자기 신분과 직업과 환경과 조건에 맞추어서 그리고 천주께로부터 받은 재능과 은총에 부응하여, 천주와 이웃을 더할 나위없이 사랑하는 완전한 애덕에로 간단없이 전진해나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이용하면서도 그안에 집착하지 않는 복음적 가난의 정신을 터득함도 요긴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