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26) 쉬지 않는 집
발행일1966-06-12 [제522호, 3면]
한주일에도 여러번 쉬는 스위스이지만 쉬지 않는 곳이 있다.
응급치료병원이다. 나는 독일에서 수술한 팔을 뒷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꿰맨자리에 가끔 통증을 느끼게 되니 병원이 쉬기만 했다간 큰일날 형편이었다. 대구교구 출신의 안 신부님의 안내를 받고 응급치료병원엘 갔다. 환자들이 들끓는다.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할 바쁜 몸인데 언제까지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하고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신부님! 이거 어디 바로 치료받을 수 있겠어요?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글쎄요! 나도 처음 와보니… 어디 알아봅시다』
신부님은 접수처에 다가갔다. 불란서 말로 몇마디 하시더니 날 가까이 오라하신다.
『저 종업원이 묻는대로 대답해야겠는데요』
이름은? 주소는
『저 여행자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여권번호는 어떻게 되지요. 국적은요?』하고 단단히 붇더니 그자리에서 「타이프」로 진찰권을 만들어 준다.
『28호실로 가보세요』
우리는 28호실로 향해갔다. 이상스럽게도 그 방에는 한 사람의 환자밖에 없었다. 들어서자 단일분간도 지체할 새 없이 간호원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팔을 내밀었다. 간호원은 붕대를 한국에서처럼 조심스럽게 풀어 헤치는 것이 아니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헤치는 것이었다. 그러는동안 나보다도 먼저왔던 환자는 치료를 마치고 나가고 의사가 나한테 가까이 오더니 치료를 해주는 것이었다. 한 3분도 안걸리는 치료였다.
『내일 또 와야합니다.』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조직적인 환자처리였다.
나는 암만 생각해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일까 의아스럽기만 했다. 나는 어쩌다 팔수술로 인해 세계각국의 병원을 골고루 순방할 수 있었고 환자다루는 법과 「서비스」하는 모습 등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이 응급치료병원은 환자를 다루는데 있어 환자위주의 행정조직이 능률적으로 잘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 다음날 갔다.
『누구시죠』
『신도마스입니다』
그 당장에 내 이름이 적힌 「카드」가 나온다. 물론 우리나라 벼우언에서도 환자의 병력서를 확인해두고 「카드」로 보관해두기는 하고 있다. 그러나 진찰권을 안가져왓다고 시비를 거는 일도 없다. 「카드」를 보면 알 수도 있지만 서로 믿는마음이 앞서서 인간관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요며칠 서울 모 종합병원엘 간 적이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진찰권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여사무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왜 안가져왔어요? 저 접수구에 가서 다시 진찰권을 재발행해 오세요!』
톡 쏘아붙이는 여사무원은 한가롭게 대중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사람들이 붐비는 진찰권 발부처로 가서 여사무원 지시대로 재발행을 해달라고 순서를 기달고 있었다. 10여분만에 돌아온 할머니는 그 여사무원한테
『진찰권을 재발행해달랬더니 이렇게 종이 쪽지에 주소하고 이름만 써주는군요』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럼 됐어요, 이리 주세요』
여사무원은 「메모」 종이에 적힌 할머니 이름만 보고 할머니의 병력서를 바로 찾아주며 ○○호실로 가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름 하나 적는거라면 여기서 좀 써가지고 바로 해줄일이지 여기서 벌써 한시간 이상 시간을 보냈는데 또 진찰받으려해도 3·40분 기다려야 하겠지?』 하며 불평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호나자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그리고 빨리 진찰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주는 환자위주의 「즈네브」의 병원이 부럽기만 했다.
물론 환자들이 지키지 못하는 공중도덕의 결핍 때문에 생기는 우울한 일도 많다.
그리고 의사 한사람이 환자를 보는 숫자가 우리나라는 너무 많기 때문에 더디게 되는 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능률적인 면에서 검토된 합리적인 행정을 꽤하는 환자위주의 「서비스」 정신의 결핍이 더욱 큰 것 같기만 했다.
관청에서 민원서류를 내놓았을 때 『거 구비서류의 양식이 틀렸으니 다시 써오시오!』하고 툇자를 맞는수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관리는 민중에 대한 「서비스」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타이프」를 쳐주면서 틀린부분을 고쳐주는 것이다.
이렇게 손님위주의 「서비스」와 자기위주의 「서비스」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즈네브」에 묵고있는 동안 매일처럼 이 병원엘 출근했다. 물론 치료도 간단할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의 능률적인 환자처리가 유기적이고 친절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나는 8·15 광복절을 맞았다.
왼쪽팔을 붕대로 목에 짊어지고 한국공관에서 마련한 「파티」에 참석했다. 화씨 69도를 넘나드는 여름철이라고는 하지만 서늘하긴만 한 것이 한결 나의 불편한 건강을 위해선 다행한 일이었다.
파란 「즈네브」 호수를 굽어보면서 조국의 광복을 회상하는 모임에는 불란서에서 여행온 유학생들까지 끼어 외교관 4·50명이나 되었다. 오래간만에 한국 사람의 언굴을 보게된 것만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들 체취속에서 고추장 냄새는 맡아지진 앟았지만 역시 조국의 성장을 멀리서 기원하는 표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고추장에 다소 구더기가 끼었다 하더라도 조금 찍어먹었으면』 싶은 때가 향수처럼 생기는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랫더니 어떤 유학생은 『아름답기만한 스위스라곤 하지만 사실 이들은 세계에서 유명한 「치즈」가 있는데 그 고랑내는 고추장따위는 문제도 아니고 거기다 구더기까지 득시글 하단 말야, 그건 걸러서 먹는단말야』하면서 익살을 부리며 고추장 변호를 하고 있었다.